최근 실시된 ‘스타크래프트2’의 미디어 데이를 통해 여러 정보가 쏟아지고 있다. 비주얼이란 것은 좀 더 좋아지거나 조금 나빠질 뿐이다. 획기적으로 모조리 뒤엎었다면 출시 소문조차 돌지 않을 것이고.그런데 이번에 ‘스타크래프트2’를 체험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박’을 노래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뭔가 어색하고 불안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 아타리사의 빛과 그림자 (1) “유타주립대학에 재학하던 시절에 친구와 포커를 하다가 수업료 전액을 잃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솔트레이크시티의 어떤 유원지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이 이야기는 노런 부시넬의 젊은 날의 에피소드입니다. 그는 이때부터 게임을 비즈니스로 삼는 공상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페이스 워’를 거리에 갖고
뱀파이어의 시초는 어디서부터였을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상상 또는 미신을 토대로 탄생한 기이한 존재에 대한 의문은 점점 깊어졌다. 남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흡혈귀, 즉 뱀파이어에 대한 스토리는 전설과 구전으로만 전해 내려오다 문학으로 그 모습을 구체화시키게 된다.1800년대에 모든 흡혈귀들의 시초격인 루벤스 경이 소설에 최초로 등장한 이후 지금의 다
지금까지 여러 게임을 즐겨 오면서 단 한 번도 느긋한 마음을 갖고 플레이를 한 적이 없다. 성격 탓도 있겠으나 플랫폼을 막론하고 유저를 자극하기 위한 목적을 띄고 있는 그들이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간혹 상상을 초월하는 비행시뮬레이션, 도시 건설, 육성 등 고독과 사색을 즐기는 유저들에게 적합한 게임이 등장하곤 했지만 역시 엔터테인먼트의
- 게임 비즈니스를 만든 사람들 여명기의 게임이라는 것은 인텔리, 그것도 ‘초’가 붙을 정도의 인테리들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국립연구소의 박사나 미국에서도 톱 클래스의 공과대학생들로, 그런 직함을 가진 과학자가 게임의 제작자였습니다. 시대로 말하자면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후반까지입니다. 게임은 과학자들의 실험적인 창작물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이
요즘 들어 극장가에 자그마한 유행바람이 불고 있다. 다름 아닌 오리진, 비기닝 등으로 시작하는 시리즈물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간 영화가 다수 개봉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한 해 최고 흥행기록을 세우며 블록버스터의 진가를 되새겨 준 ‘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를 비롯해 주로 시리즈물의 탄생에 초점을 맞춘 이른바 ‘비기닝’ 영화의 유행은 올해도 계속되고
개인적으로는 I·P에 대해 계속 의구심을 품어 왔었다. 과연 온라인으로 만들기만 하면 그 이름값만으로도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인지 무척 궁금했는데 이제는 서서히 답을 얻어 가는 중이다.몇 년 전에는, 어쩌면 지금도 유명 만화나 영화, 드라마 등을 소재로 게임으로 만들면 시너지 효과가 창출돼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는 논리가 사람들을 지배했다. 더불어 대
- 학생들의 공유 재산 1960 년대가 되자, 게임의 개발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MIT) 미디어 연구실이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이 연구소에 모인 학생들이 두 번째 게임 제작의 주역이었습니다.당시의 MIT 학생들과 같은 프로그램의 달인들은 ‘해커’ 라고 불리었다. 50년대까지의 해커란 ‘힘으로 물건을 움직이게 하는 도구실’ 이라는 의미로, 80년대 이후의
저명한 철학자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다. ‘지구가 멸망한다면’ 이라는 가정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현실과 닮은 영화 속에서라면 충분히 실현가능성이 있는 소재가 된다. 숫자로 인류의 멸망을 예언하고 그것을 풀어가는 영화 ‘노잉(Knowing)’은 인류가 재앙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지
온라인게임의 거대한 축은 누가 뭐라 해도 역시 MMORPG 일 것이다. MMORPG는 온라인에 대한 모든 경험과 노하우, 기술, 마인드가 압축된 예술이며 미래를 예단할 수 있는 힘마저 지녔다고 생각한다.최근 온라인게임의 추세를 보면 이러한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든다. 경계가 뚜렷한 스포츠를 제외하고는 MMORPG 범주에 약간이라도 겹쳐지는 그림들을 보게 되는
- 게임을 만든 아버지의 위대한 공적 맨하탄 계획에 참여했던 윌리 비긴보섬 박사는 과학을 평화에 이용하는 일환으로 게임 개발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1958 년 세계 최초의 게임이 탄생되었습니다.박사의 전문지식은 전자공학 외에 물리학, 방사선학 등 다방면에 이릅니다. 하지만 그는 그중에서 과감하게 게임을 연구대상으로 선택하고 또 완성 시켰습니다. 우리처
온라인게임의 중요한 지표 가운데 하나인 동시접속자수를 높이기 위한 방안은 게임을 접어 버리는 유저보다 새롭게 시작하는 유저를 가능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면 동접이 상승한다. 성공한 게임들의 공통점이라면 바로 이것이다. 게임을 그만두고 바이바이하는 유저보다 들어오는 유저가 훨씬 더 많다는 것.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왜 꺼내느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대부
- 원자폭탄과 게임 “게임은 처음에는 비즈니스의 대상이 아니었다. (중략) 게임이 생겨났을 때 돈을 생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헌신적인 과학자가 한 명 있었을 뿐이다.”1945 년 8 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과 오늘날의 게임은 기묘한 역사의 끈에 의해 연결되어 있습니다.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 ‘맨하탄 계획’에 참여했던 과학자
얼마 전 발매된 ‘스트리트 파이터 4’의 인기가 뜨겁다. 국내에서는 비디오게임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주목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이는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이름의 가치가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게임에 아무리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스트리트 파이터’ 라는 게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업계에 몸담아 오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가운데 하나라면 바로 이거다. ‘그래서 어떤 게임이에요?’누가 만들고 어디서 제작하고 장르는 무엇이며, 비슷한 게임에 대해 줄줄이 썰을 풀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혹은 마지막 즈음 상대방이 묻는 간단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물어 보는 당사자도 의식하지 않는 말이지만 몇 조각되지도 않는 저 문장이 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