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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대중화 ‘사회·문화적’ 현상에 주목 ]게임업계에 부는 ‘정치적 올바름’ 운동에 찬반대립 점화

‘배틀필드5’ 페이스페인팅, 의수 등 고증 논란 제기 … 배틀필드 디렉터 ‘역사적으로 올바른 일’ 다양성 추구해야
유저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PC)’ 때와 장소 가려야 … 학계 ‘문화계 주요 콘텐츠’로서 사회적 합의 단계 일환

  • 안일범 기자 nant@khplus.kr
  • 입력 2018.06.04 13:33
  • 수정 2018.06.0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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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에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 논쟁이 뜨겁다. 정치적 올바름 운동은 인종이나, 성별, 종교 등에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차별’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내용을 근간으로 한다. 영화나 TV시리즈 등 일부 매체를 위주로 집중되던 이 운동은 최근 게임분야로 영역을 넓혀 전개된다. 누구나 평등한 세상을 살아야 할 권리가 있고 이는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나아가 특정 게임들을 대상으로 한 불평등 지적과 수정 요청이 줄을 잇는다. 이를 반영하는 움직임도 함께 일어나는 분위기다. 
반면, 이러한 현상이 ‘과민한 반응’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저 취미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차별주의자’낙인을 찍는 것과 개발자들의 창작물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양 측 주장이 격렬하게 대립하면서 제작사들을 상대로 찬성과 반대 의견을 보내는 운동을 진행하는가 하면 게임 불매 운동으로 까지 번지는 추세다.
이에 대해 한 문화계 인사는 “두 진영 모두 합당한 이의 제기와 반론이기에 쉽게 결론을 내기 어려운 문제”라며 그는 “문화는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으로 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합의점에 가까운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시작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 ‘배틀필드5’ 이미지 (사진=EA)

지난 5월 23일 EA는 배틀필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시리즈 최신라인업 ‘배틀필드5’ 영상을 최초 공개한다. ‘배틀필드’시리즈는 매 시리즈가 공개될 때 마다 수백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는 글로벌 스테디셀러 FPS게임으로 가상의 전장에 투입된 유저들이 총기나 탈것을 타고 전투를 치르는 게임이다. 신작 영상이 공개된 당일 100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1주일이 지난 현재까지 900만 조회수를 돌파하면서 관심이 고조된다. 그런데 영상을 본 유저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영상 추천수는 29만이지만 반대수가 36만에 달한다. 매 시리즈마다 ‘열렬한지지’를 보내던 유저들이 돌아서기 시작했다. 이들은 제작사가 ‘과도한 PC 정책’으로 게임 고유의 분위기를 헤치고 있다는 주장을 내놓으며 ‘#notmybattlefield(나의 배틀필드에는 과도한 PC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운동에 나섰다. 

시리즈 정통성을 존중하라
‘배틀필드’시리즈는 엄격한 고증을 통해 전쟁을 그린 시리즈로 명성이 자자하다. 총을 맞고 쓰러진 아군을 포격(교전) 지역에서 끌고나와 치료하는 것과 같은 디테일한 설정들이 이시리즈 매력포인트다. 게임을 즐기는 팬들은 더하다. 영상에 삽입됐던 모스 부호를 해석해 다음 시리즈 공개일을 예측하는 수준이다. 만드는 사람도 팬들도 마니아들이다.
 

▲ 유저들이 상상하는 배틀필드는 정통 밀리터리물이다
▲ 유저들이 상상하는 배틀필드는 정통 밀리터리물이다

그런 팬덤들이 이번 영상에는 심각한 고증 문제를 내걸었다. 영상에서 가장 큰 논란을 일으켰던 부분은 여성 캐릭터다. 이 여성캐릭터는 철모를 벗어던졌고, 얼굴에 파란색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왼손에 의수를 찬 캐릭터다. 저격 라이플을 들고 뛰어다니다가 후반에는 철사를 감은 크리켓 배트로 적들을 후려친다. 유저들은 이 캐릭터를 보고 논문을 쓸 기세다. 적은 수지만 전방에서 여성들이 활약하는 사례들이 분명히 있었고, 의수를 들고 총을 쏘는 사람들도 존재했고, 총알이 빗발치는데 철모를 벗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고, 크리켓 배트를 쓰는 경우가 가끔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이 불과 몇분 되지도 않는 트레일러에서 단 한사람이 했다는 점에 유저들은 충격에 빠졌다. 

개발자 “역사적으로 옳다” 선언
유저들의 지적에 대해 EA 다이스 소속 알란 커츠 디렉터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성명을 내놓았다. 그는 “여성 캐릭터를 ‘배틀필드’에 넣었을 때 ‘싸움’이 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딸이 있고, 딸이 ‘왜 나처럼 생긴 캐릭터를 만들지 못해요?’라는 말에 ‘너는 여자라서 그래’라고 답하기 싫어서(개발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외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이 일이 역사적으로 올바른 일을 하는 것으로 본다”면서 “과거 있었던 차별들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눈을 뜨게 됐으며 차별이 없는 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도 선언했다.
 

▲ 개발자들은 ‘배틀필드5’ 커스터마이징 요소를 홍보하기 위해 영상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 개발자들은 ‘배틀필드5’ 커스터마이징 요소를 홍보하기 위해 영상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알란 커츠와 같이 정치적 올바름을 위한 행보를 보인 사례들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매스이팩트3:안드로메다’에서는 모션캡쳐로 쓰인 실제 모델에서 여성 캐릭터의 외모를 변형시켜 다양성을 반영했고, ‘오버워치’에 등장하는 캐릭터 ‘트레이서’의 신체 부위를 수정한 사례도 명성을 떨친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게임 속 캐릭터인 ‘바루스’를 동성애자로 변경해 출시하기도 했다. 국내 게임에서는 ‘소울워커’가 자사 작품에 참여한 일러스트레이터 중 일부가 차별 언행을 한다고 판단해 해고하는 사례도 있었다.

팬들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에 반기
#notmybattlefield 운동에 동참하는 유저들은 이들의 행동이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SJW(Social Justice Warrior)에 의해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고 싶은 이들을 ‘차별주의자’로 낙인을 찍어 나쁜일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며, 그것이 게임 문화에 영향을 미치면서 작품에 영향을 주면서 몰입감을 헤친다는 지적이다.
 

▲ 배틀필드 만큼은 PC에 물들지 않기를 원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배틀필드 만큼은 PC에 물들지 않기를 원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례로 한 트위터리안이 ‘배틀필드’ 선임 개발자에게 ‘고증적으로 부정확한 부분을 숨길 수 있는 옵션을 만들 수 있느냐’고 질문하자 이 개발자가 ‘모든 캐릭터를 백인으로 만들기 옵션을 넣으면 되겠냐’고 답변해 논란에 기름을 붓기도 했다. 게임성을 논하는 질문에 PC를 주장하는 답을 받은 유저들은 폭발했다. 공식적으로 개발진들로부터 ‘차별주의자’낙인을 받은 셈이다.
한 네티즌은 “‘포트나이트’와 같은 게임이라면 문제가 없고 실제로도 즐기지만 ‘배틀필드’에서는 납득할 수 없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배틀필드’커뮤니티에서 200회가 넘는 추천을 받아 공감을 사기도 했다. 

변화와 소통 밸런스가 중요
예술은 시대를 대변하는 거울이라고 했다. 사회적, 문화적 현상과 시대상을 함축해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술로서의 게임역시 주류 문화로서 책임감이 요구되는 시대다. 개발자들 역시 책임이 있음에는 동의한다.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일례로 평범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해 세상을 구원하는 ‘호라이즌 제로 던’과 같은 게임은 지난해 최고 게임상을 수상했고 유저들의 반응도 뜨겁다. 앞서 ‘배틀필드4’나 ‘배틀필드 리마스터’에서도 여성 캐릭터는 등장했고 유저들은 환영했다. 또,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우에도 이미 유저들은 ‘타릭’ 캐릭터를 ‘게이왕자(?)’라 표현키도 한다.
 

▲ 화살로 적을 꿰뚫는 암살자에서 성소수자 챔피언으로 설정이 변경됐다
▲ 화살로 적을 꿰뚫는 암살자에서 성소수자 챔피언으로 설정이 변경됐다

유독 ‘배틀필드5’나 ‘리그 오브 레전드’에 등장하는 바루스(동성캐릭터로 전환)와 같은 캐릭터들은 논란의 대상이 됐다. 전문가들은 ‘개연성’이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이야기한다. 충분한 설명(시나리오)이나 전조 없이 존재하던 캐릭터나 게임을 변화시키면 캐릭터와 설정 등에 애착을 가진 유저들의 반발이 일어난다는 분석이다.
게임학회 소속 한 교수는 “게임을 하는 유저들은 변화에 민감하며 자신들이 추구하는 재미와 설정 등을 유지하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며 “유저들이 분개하는 것은 젠더 논란이나 취향 논란이 아니라 자신들이 즐겨온 재미가 변하는 것에 분개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정치적 올바름에 따라 평등한 시나리오와 캐릭터를 동원하는 것은 환영해야할 부분”이라면서도 “과격한 변화 보다는 점진적인 변화와 발전을 꾀하면서 반발을 줄여 나가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경향게임스=안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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