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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중독 질병화 논란, 업계 대응 본격화] 정부·기업 ‘공동전선’ 구축 “과학적 데이터로 맞불”

WHO, 내년 5월 총회서 정식 등재 ‘예고’ … 협회 일원화 및 정부‘연구 계획’구체화
부정적 인식, 규제 강화‘성장 위축’우려 … 긍정적 기능 조명·부처 간 협력 ‘과제’

  • 정우준 기자 coz@khplus.kr
  • 입력 2018.09.03 16:40
  • 수정 2018.09.03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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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게임업계가 글로벌 게임산업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게임과몰입’ 질병화 논란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 움직임에 나섰다.
이와 관련해 업계를 대표하는 한국게임산업협회 외에도 게임산업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국내외 전문가들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대응방안 마련에 집중한다. 이를 통해 현재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 11차(ICD-11)’에 포함한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의 진단기준이 가진 모호성이나 체계적이고 과학적 검증이 가능한 데이터 부족 등에 관한 반론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게임이용장애’ 정식 등재 움직임에 대한 업계의 우려는 명확하다. 성급한 진단기준 등재로 인해 게임산업 전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현재보다 다양한 규제가 도입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게임콘텐츠 수입국 입장에서도 보수적인 자세를 견지할 경우, 국내 게임산업에 심대한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협회와 정부 외에도 각 개별 게임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서야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한 관계자는 “공동연구를 통해 게임이용장애 등재의 부정적 효과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효용성을 알리는 작업 역시 동반돼야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사진=경향게임스
사진=경향게임스

지난 6월 18일 WHO가 발표한 ICD-11에 ‘게임이용장애’가 등재된 사실이 알려지며, 글로벌 게임업계가 혼란에 빠졌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중독 행동에 따른 장애의 하위분류에 포함된 ‘게임이용장애’는 플레이 시간 통제 불가·게임과 일상의 우선순위 전환·게임에 의한 부정적 결과 무시·12개월 이상 증상 지속 등의 진단기준을 담고 있다.
특히 올해 4월 WHO가 ‘게임이용장애’ 등재를 유예한 상황에서 ICD-11 정식버전에 여전히 남아있는 만큼, 전문가들은 내년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릴 WHO 총회에서 정식 등재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체계적 대응체계 ‘첫 걸음’
이와 같은 상황 변화에 직접적인 참여자인 게임업계가 가장 먼저 대응 행보를 시작했다. 특히 ‘게임이용장애’가 전 세계 게임산업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이슈인 만큼, 업계는 각 게임사의 개별적인 대응 대신 업계를 대표하는 한국게임산업협회를 통해 일괄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에 앞서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지난 2월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한국어뮤즈먼트산업협회, 한국게임개발자협회, 한국모바일게임협회, 문화연대, 게임개발자연대,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 등과 함께 ‘게임이용장애’ 등재 철회에 관한 공동 성명서를 낸 데 이어, 미국게임산업협회(ESA)를 비롯한 각국의 게임 관련 협·단체들과 WHO의 계획에 반대하는 국제 공동 대응 전선에 합류하기도 했다.
 

▲ 내년 5월 WHO 총회에 ‘게임이용장애’의 ICD-11 정식 등재 안건이 상정됨에 따라, 게임업계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본격적인 대응 행보에 나섰다
▲ 내년 5월 WHO 총회에 ‘게임이용장애’의 ICD-11 정식 등재 안건이 상정됨에 따라, 게임업계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본격적인 대응 행보에 나섰다

올해 6월 ICD-11 정식버전이 공개된 후에도 한국게임산업협회는 WHO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게임이용장애’에 관한 공동연구를 진행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WHO 측이 확실한 답변을 주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오랜 기간 게임중독과 관련한 연구 데이터를 확보한 ESA를 중심으로 한 국제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의학계 및 국내외 게임 협·단체와 게임과몰입에 관한 객관적인 기준과 과학적인 검증 데이터 확보를 위한 공동연구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게임산업 주무부처인 문체부에서도 WHO의 ‘게임이용장애’ 등재 대응책으로 ‘게임과몰입 질병코드화 대응사업’에 3년 간 총 8억 5천만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해당 사업은 이른바 ‘3N’으로 불리는 엔씨소프트, 넷마블, 넥슨 등 국내 대형게임사들이 4억 5천만 원을 출자, 게임업계와 정부 간 공동 대응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문체부는 미국·호주·영국 등 해외 연구진과 공동으로 게임과몰입 진단기준 마련을 위한 공동연구 및 심포지엄을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 7월 4일 해당 연구 책임자로 게임이 뇌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전문가인 페리 렌쇼 유타대 의대 교수를 위촉했으며, 올 4분기 미국에서 구체적인 연구 계획을 공개한 이후 2020년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최종 연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사회 전반적 논란 ‘불안감’
이처럼 게임업계와 정부가 적극적인 대응 행보에 나선 배경에는 ‘게임이용장애’의 정식 등재로 인해 다양한 개인적·사회적 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현재 의학계 내부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게임이용장애’의 진단기준이 가진 모호성의 문제다. 옥스퍼드 대학교, 존스홉킨스 대학교, 시드니 대학교 등 정신건강 전문가 및 사회 과학자 등 36명이 ‘게임이용장애’ 항목 신설 반대 논문에서 “명확한 과학적 기준이 없고, 기존 근거들이 빈약하며 지지층도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덕현 중앙대 교수 역시 “우울증이나 ADHD와 같은 공존질환과의 구분이 어렵고 수년 간 추적한 종적 연구 데이터가 부족한 만큼, 의사가 진단 근거로 활용하기에는 다소 모호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다소 모호한 진단기준이 등재될 경우, 개인들의 입장에서는 일반적인 게임 이용자와 게임과몰입 이용자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더불어 ‘게임이용장애’로 진단을 받을 경우, 상담 치료 외의 약물 처방이 가능해지고 병적 기록이 평생 남기 때문에 일종의 ‘낙인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 ‘게임이용장애’ 정식 등재로 인해 다양한 논란 야기가 우려된다. 이를 통해 게임 이용자에 대한 낙인 효과나 부정적 인식 확산, 콘텐츠 수출 타격 등이 발생할 수 있다
▲ ‘게임이용장애’ 정식 등재로 인해 다양한 논란 야기가 우려된다. 이를 통해 게임 이용자에 대한 낙인 효과나 부정적 인식 확산, 콘텐츠 수출 타격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게임산업 측면에서는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촉매제가 될 전망이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내년 5월 정식 등재 이후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하고 게임사로부터 치료기금을 걷는 법안이 등장할 수도 있고, 게임업계 종사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증가와 셧다운제·온라인게임 결제한도 등 현재 진행 중인 규제혁신 대신 업계에서도 예상치 못한 다양한 규제 도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외에도 게임이 국내 콘텐츠 수출의 5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게임이용장애’ 등재는 국내 게임사들의 해외 진출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높다. 특히 세계 최대 게임 시장인 중국이 미성년자들의 게임 사용시간을 제한하는 등 청소년 건강 보호와 사상 통제 기조를 강화하는 만큼, 국산 게임의 중국 진출이 재개될 확률이 지금보다 현저히 낮아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업계 참여, 정부 이견 조율 ‘관건’
WHO의 ‘게임이용장애’ 등재 가능성이 높은 상황임에도 국내 게임업계와 정부의 본격적인 대응 행보에 대한 관계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등재로 인한 막대한 피해 우려에도 지금까지는 체계적인 연구 착수나 정부와의 협력 등 대응방안 마련에 다소 미온적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게임이용장애’ 등재 대응 드라이브에서 업계가 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에 나서야한다고 지적했다. 게임에 관한 부정적 인식 제고를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불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세를 통해 게임산업 전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만 게임과몰입 질병화 논란에 대응하는 업계의 목소리에 힘이 더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게임이용장애’ 등재의 부정적 효과와 함께 게임이 가진 긍정적인 효용성을 일반 시민들에게 알리는 작업이 병행돼야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즉, 단순히 콘텐츠 수출 금액 1위와 같은 산업적인 내용보다 이미 대중문화콘텐츠로 자리 잡은 게임의 위상이나 학부모들을 설득할 만한 교육적 효과 연구를 바탕으로 사회적 인식 전환을 도모하는 편이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게임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해온 단체에서는 꾸준한 관련 연구를 통해 데이터를 확보해온 반면, 게임업계나 문체부에서는 해당 분야에 대한 연구가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며, “향후 국내 게임업계가 정보 공개에 대한 우려에서 벗어나, 게임의 긍정적인 효과를 알리기 위한 공동 연구나 협업에 나서야할 시기다”라고 조언했다.
 

▲ 단순히 ‘게임이용장애’ 등재로 인한 부정적 결과에만 집중하기보다, 게임이 가진 문화적·교육적 효용성을 강조하는 연구가 뒷받침돼야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 단순히 ‘게임이용장애’ 등재로 인한 부정적 결과에만 집중하기보다, 게임이 가진 문화적·교육적 효용성을 강조하는 연구가 뒷받침돼야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외에도 ‘게임이용장애’에 관한 각 정부부처 간 이견 조율 역시 향후 대응방안 마련의 걸림돌로 대두된다. 실제로 최근 문체부 게임콘텐츠산업과와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가 WHO 방침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으나, 게임산업 진흥과 게임과몰입 치료라는 서로 간의 입장차만을 확인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한 전문가는 “내년 총회까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관련 부처 간 정책 기조가 충돌할 경우, 정부의 효과적인 지원사격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필요하다면 다양한 분야 전문가와 국민들의 입장을 수렴하는 공개토론회를 진행해야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문체부 역시 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게임이용장애’ 등재에 우호적인 부처를 포함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병무청 등 10여개 업무 유관부처 관계자들과 정책 토론회를 진행할 예정이며, 향후 공감대 형성을 통해 부처 간 협의회를 구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각종 규제와 글로벌 경쟁 심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게임산업에게 내년 5월 ‘게임이용장애’등재 이슈는 그간의 어려움보다 강력한 난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에 ‘게임강국 재도약’을 목표로 내건 업계와 정부가 힘을 합쳐, 산업 성장과 대중문화 보호를 위한 효과적인 대응책 마련에 성공하기를 바라본다.

[경향게임스=정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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