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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학포럼 “‘게임이용장애’ 근거부족…과잉 의료화 지양해야”

  • 서소문=정우준 기자 coz@khplus.kr
  • 입력 2019.04.29 17:46
  • 수정 2019.04.2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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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세계보건기구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추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이와 관련해 게임과학포럼은 4월 2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소회의장에서 ‘제2회 태그톡(T.A.G talk) - Gaming Disorder, 원인인가 결과인가’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게임과학포럼 공동대표를 맡은 이경민 서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장을 비롯해 크리스토퍼 J. 퍼거슨 미국 스텟슨대 심리학과 교수, 윤태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영상홍보전공 교수 등 실제 강연자들이 직접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사진=경향게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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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연단에 오른 퍼거슨 교수는 게임 과몰입군에게 다양한 치료 옵션을 제공한다는 WHO의 취지는 좋을 수 있으나, 현장에서 의료진의 오진단이나 고가의 치료법 제안, 게임이용자에 대한 낙인효과 등 잠재적인 문제점을 우려했다. 
특히 그는 “게임 과몰입군은 1~3% 정도이며, 아시아 국가가 미국이나 유럽보다 높지만 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학업 스트레스나 부모와의 관계 문제 등 기저요인으로 인한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게임을 이용하는 사례가 대다수이며, 운동이나 일·음식·쇼핑·댄스·낚시 등 다른 과잉행동과의 차이점도 발견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사진=경향게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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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퍼거슨 교수는 ‘게임이용장애’ 연구에 대한 몇 가지 권고사항을 제안했다. 첫 번째로 사전에 계획을 발표하고 결과에 유리한 데이터 조작을 막아, 투명하고 수준 높은 연구결과를 얻어야한다. 더불어 일상적인 즐거움에서도 도파민이 분비되는 만큼, 더 이상 게임 과몰입을 물질 오남용과 같은 선상에서 놓지 않아야 한다. 정책 입안자 역시 다양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게임 과몰입이라는 증상 해결보다 본질적인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야 한다. 다만 그는 “도박 매커니즘을 활용하는 ‘루트박스’는 규제가 필요하며, 관련 데이터를 수집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경향게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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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1,500편 이상의 국내외 관련 논문을 분석한 윤태진 교수는 해당 데이터를 바탕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우선 그의 연구에 따르면 게임중독에 대한 정의가 합의된 바 없어, 다양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 중독 진단도구와 척도가 상이함에 따라, 유병률이 크게 차이나고 타당도에 대한 확신도 부족하다. 아울러 특정 게임이나 장르를 지목하지 않은 연구가 대부분이기에, 어떤 게임 장르를 플레이할 때 어느 정도의 효과가 나타나는지 확인할 수 없다.
 

사진=경향게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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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바탕으로 윤 교수는 “미국 정신의학회(APA)가 2013년 DSM-5 개정과 함께 ‘게임이용장애’ 연구를 5년 동안 지켜보자고 했으나, 여전히 합의할 만한 구체적 증거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는 WHO의 결정을 근거로 연구가 진행되는 의료화의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특히 게임중독을 동의하는 연구자 사이에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부정적 인식이 지배적인 담론 및 정치·사회적 맥락과 겹치면서 경쟁에서 배제되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게임 연구의 한계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게임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의 결과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경향게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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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적 측면을 살펴본 정지훈 교수는 과거 모리 아키오 교수가 만들어낸 ‘스폰지뇌 괴담’ 을 부정확한 실험 데이터와 미디어의 영향력이 합쳐지면서 게임과 뇌의 부정적인 상관관계가 확산된 사례로 지목했다. 당시 모리 아키오 교수가 고안한 간이 뇌파계를 사용했고, 그가 지적한 청소년 뇌파의 움직임이 게임이나 약물뿐만 아니라 낭독이나 SNS 이용에서도 발견되는 등 다수의 오류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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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정 교수는 게임의 순기능에 대한 연구사례를 통해, 특정한 게임이 인지능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015년 강동화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게임(RTS) 장르를 오랫동안 플레이한 유저는 시지각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했으며, 뇌를 촬영한 영상에서도 전두엽과 후두엽의 시냅스 연결이 일반인보다 많은 것을 확인했다. 또한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는 과거 열렬한 게임광이자 유능한 게임 개발자로, 뇌과학 분야 중 단기기억 메카니즘을 연구하던 과정에서 강화학습을 활용한 알파고’를 개발할 수 있었다.
정지훈 교수는 “게임은 우리 생활 곳곳으로 확대되는 일종의 미디어”라며, “미래에는 게임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갭이 엄청나게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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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게임과학포럼을 이끄는 이경민 교수는 ‘게임이용장애’의 저변에 숨겨진 과잉 의료화 문제를 지적했다. 현대 사회는 의료 기술의 발달과 전문가의 독점 및 의존 경향, 문제 해결의 상품 서비스화를 통해 ‘의료화’가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열이 나면 가정에서 간단한 치료를 할 수 있지만, 곧바로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는 식이다. 다만 이 교수는 “의료화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건강불안증을 야기하고 과잉치료를 통해 경제적 자원 배분을 왜곡하는 ‘과잉 의료화’를 지양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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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와 관련해, 이 교수는 “게임중독을 체계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어 분류를 해야 한다는 목적일 뿐, 그 자체가 ‘게임중독’을 원인으로 확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게임이용장애’ 등재 이후 보호자에게 적당하고 의료인에게 편리한 진단으로 오용될 수 있으며, 비보험 치료 수가라는 금전적인 인센티브로 인해 목적 자체가 완전히 잘못된 남용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경민 교수는 “뇌 발달과정 중 다양한 경험 속에서 향상되는 자기통제능력은 게임을 통해 획득할 수 있다”며, “게임 과용 현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본질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경향게임스=정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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