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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들도 손사래친 실패작 '검은 장미의 발키리'

  • 안일범 기자 nant@khplus.kr
  • 입력 2019.05.16 13:15
  • 수정 2019.05.1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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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직업 특성상 한 게임을 잡으면 평균 1주일에서 2주일사이 엔딩을 본다. 공략이 늦으면 기사화도 늦어지고, 역시 관심도 떠나기 마련이다. 속도를 위해 시나리오를 스킵하면 내용이 부실하고, 어려운 보스 몬스터를 꼼수로 잡으면 공감을 얻기 힘들다. 잠을 줄이고, 미친듯이 로딩과 세이브를 반복해 나가면서 게임을 클리어 한다. 그런데 게임 시작부터 클리어까지 1년 걸린 게임이 있다.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고, 손에 잡았더라도 몇번은 그만두고 싶어지는 게임을 5월 15일 클리어했다. 그 주인공인 '검은 장미 발키리'는 공략 시작부터 엔딩까지 1년이 걸린 게임이다. 지난 15일밤 드디어 엔딩을 보고, 1년동안 끌어온 기사에 마침표를 찍어 본다.

지난 2016년 12월 출시된 이 게임은 현재까지 전체 유저 중 단 15%만 엔딩을 봤다. 기자는 플레이타임 약 60시간만에 하드 난이도 엔딩을 봤다. 물론 실제 클리어타임은 1년이 걸렸지만 이는 논외로 하고 순수 플레이타임만으로 나온 결과다. 전체 플레이타임은 평이한 수준. 게임 난이도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유저들을 이탈하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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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도전과제로 분석해보면 유저들은 시작하자마자 약 4%가 이탈했다. 튜토리얼을 마치고 첫 전투에서 클리어할 수 있는 도전과제에서 약 40%가 이탈했다. 게임 시작 후 약 2시간이면 달성할 수 있는 몬스터 누적 사냥 갯수 100회 도전과제는 45%가 클리어(55%가 이탈)했다. 게임 핵심 콘텐츠 중 하나인 파츠 개발은 전체 40%만 클리어(60%가 이탈)했다. 모두 극 초반부에서 달성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쉽게 말해 시작하자마자 2시간이면 게임을 그만두는 유저들이 태반이고, 그 이후에 이 게임을 거들더 보지도 않는다. 게임 클리어까지 1년이 걸린 이유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때문에 이 게임을 구매하고, 플레이하려는 유저들은 그 만한 각오가 필요하다. 

본격적으로 게임을 설명하기에 앞서 제작사 이야기를 먼저 해야할 필요가 있다. 컴파일하트는 일본 게임 개발기업 아이디어 팩토리 자회사다. 아이디어 팩토리는 그 유명한 명작 제조기업 데이터 이스트에서 분사한 이들이 설립한 게임 개발사다. B급게임을 개발하는 기업을 목표로 특정 취향을 만족하는 프로젝트(일명 갈라파고스 프로젝트)들을 대거 공개해 화제에 올랐다. 이른바 서브 컬쳐 계얼에서는 뚝심있는 메이저급 개발사에 가깝다. 그렇다보니 적잖은 마니아층들이 이들의 게임을 구매하고, 심지어 콘솔 약소국이라는 우리나라에도 한글화를 거쳐 정식 발매되는 작품들이 다수 등장한다. 

'검은 장미 발키리'는 이들이 개발한 '오메가 퀸텟'을 비롯 과거 역작들의 엔진을 기반으로 야심차게 선보인 대작 RPG다. '오 나의 여신님'을 그린 유명 만화가가 일러스트레이터로 참가하면서 잔뜩 힘을 주기도 했다. 팬들의 기대치도 그 만큼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관련해 소위 낙하산 성우와 같은 문제들이 대두되기도 했으나 게임 외적 요소는 우선 배제하고 순수하게 게임만 보는 것으로 리뷰를 이끌어 나가고자 한다.

각설하고, 게임은 B급 RPG에서도 대작을 노리고 개발됐다. 분야 마니아들이 군침을 흘릴만한 요소들을 결집해 대놓고 '서비스'한다. 게임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서브컬처계 취향을 노린 '얀데레', '츤데레', '여왕님', '소심녀', '쾌활녀(비글녀)' 등을 배정한다. 주인공은 특수부대 지휘관으로 분해 상사의 명령을 받아 적 '발키리'를 퇴치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메인 시나리오는 주인공 부대에 첩자가 존재해 이를 잡아야한다는 콘셉트. 굳이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더라도 시놉시스 만으로 엔딩을 유추할 수 있는 구조다.

누가 범인일지 3초만 고민해보면 바로 그 사람이 범인이다. 설사 예측가능한 시나리오라 하더라도 게임의 실패 원인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애초에 이 게임은 시나리오를 보기는 커녕 메뉴에 등장하는 버튼 하나 눌러보지도 않고 끄는 유저들이 더 많았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유저들이 이탈하는 시점을 지켜보자. 

게임을 시작하면 유저들은 기본 전투를 치른 다음 이탈한다. 그들이 이탈 시점에서 마주하게 되는 장면은 대원들과 함께 만나는 시점. 수많은 아이콘들이 화면을 장식하는 가운데 사람들을 찾아가 일일히 대화를 나눠야 한다. 누군지도 모르는 캐릭터들을 대뜸 만나서 이상한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경우다. 어색한 침묵. 마치 대학교 오리엔테이션에 강제로 나가 8명이랑 대화를 나눠야 하는 미션을 받은것 같은 기분이다. 귀찮음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가운데 누군지도 모를 캐릭터를 누르고 반강제로 장시간동안 대화를 나눠야 한다. 

개발팀은 각 캐릭터가 특색있다고 보는 듯, 캐릭터들은 자신의 특성을 발휘해 유저들에게 '내가 여왕님이다', '내가 츤데레다', '내가 미녀 캐릭터다'를 어필한다. 그렇게 여덟번이 끝나고 나면 이벤트가 진행되고 다시 다음 구도로 넘어간다.

이 장면에서 전체 40%가 넘는 유저들은 장비 강화를 하는 개발실 버튼을 눌러 보지 않았다. 심지어 게임을 장시간동안 진행한 유저들도 치료실을 방문하지 않았다. 서둘러 그냥 넘기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진행상 맹점인 셈이다. 

재밌는 콘텐츠를 기대하고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는 기분이 이해가 갈법도 하다. 일장 연셜을 들었으니 빨리 전투를 하고 싶을 터. 강화메뉴들이 잔뜩 나와있지만 일단 스킵하고 전투에 임한다. 그러나 이들이 전투를 마주하기 전 까지 넘어야할 산은 더 있다. 재미는 둘째치고 일단 분량 자랑하기에 우선인 이 콘텐츠들을 내세워 지르는 디자인은 레벨 디자인에서 더 없이 드러난다.

단순한 맵디자인이 눈에 드러오는데 맵을 이동할 때 마다 몬스터들이 출연해 유저의 발목을 잡는다. 첫 맵은 공원맵. 안개로 가려진 맵을 더듬어 걸어간다. 맵의 위쪽 끝에서 부터 아래쪽 끝까지 단순 이동에 소요되는 시간은 약 20초. 그 사이 몬스터와 2~3회 이상 조우 한다.

기본 시간은 길지 않으나 끝없이 달리는 지루함이 기다린다. 더 큰 문제는 맵디자인. 맵은 뚫린맵 구조로 얼핏 보면 충분히 넘어 갈 수 있을 거리로 보이지만 넘어갈 수 없다. 어설픈 돌맹이 하나를 놔두고 빙 돌아가서 해결점으로 이동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다보니 시작부터 유저는 스트레스를 받고, 더 이상 게임을 할 의욕을 잃어버린다. 

그나마 이쯤에서 그만둔 유저들이 승자일지도 모른다. 중반부로 넘어가면 등장하는 이 맵은 끝에서 끝까지 약 10분동안 달려야한다. 그 사이 약 15회에서 20회에 달하는 전투를 치러야 한다. 그렇게 뚫고 지나가서 카드키를 주운 다음, 이번에는 오른쪽 맵으로 가서 다시 끝에서 끝까지 달려야한다. 문제는 오른쪽 방구조, 디자인이 왼쪽과 동일하다. 또 10분동안 달리면서 몬스터들과 실컷 미팅을 해야한다. '설마', '설마' 하다가 붙잡고 있던 정신줄을 놓게 되는 맵디자인이다.

다시 가운데로 돌아와 키를 얻고, 그 다음엔 더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예측 가능한 그 결론이 기다린다. 진행에 필요한 오브젝트를 놓치는 순간. 이제 왼쪽부터 끝까지 돌았다가, 다시 오른쪽부터 끝까지 돌았다가. 숨겨진 구멍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가는 반복해야한다. 순수 게이머의 시각으로 평가해보면 이 맵 디자인은 게이머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설계도를 보고 그냥 따라 그린 맵 디자인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단 한번이라도 플레이해봤다면 게임을 할 때 플레이어가 느끼는 분노를 체험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전투 시스템에서도 복잡도는 여전하다. 기본 구도는 턴제. 순서가 돌아오면 스킬을 쓰는 식이다. 스킬은 레벨업을 통해 확보한 스테이터스를 투자하면서 얻는다. 특정 수치를 달성하면 필살기도 얻는다. 발동 조건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필살기를 단 한번이라도 사용해 본 유저는 전체 유저 중 28.4%에 불과하다. 게임 중반부에 등장, 전체 플레이 난이도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는 스킬을 아예 사용하지도 않은 셈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 게임에 등장하는 스킬만 수십종에 달한다. 그런데 각 스킬들은 소위 '속성'으로 분화돼 숫자를 늘리고, 레벨 개념으로 숫자를 늘렸을 뿐 별반 차이는 없다. 누르면 데미지가 들어가는 다이렉트 데미지 타입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수십개 늘려본들 체감 성능은 그다지 높지 않아 그저 스크롤을 쭉 내려야할 때 '스킬이 많다'는 수준에서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스킬을 향한 호기심도 떨어지면서 게임은 생명력을 잃는다.

이 같은 인터페이스는 캐릭터 강화에도 마찬가지다. 온갖 무기, 총기 등을 모든 캐릭터들이 들고 강화하고, 파츠를 붙이도록 설계돼 있는데. 이름만 많을 뿐 기본 성능은 대동소이하다. 여기에 레벨이라는 개념을 붙이고 '개발 소재'라는 개념을 더해 만들기만 어려워졌을 뿐이다. 게임 콘텐츠를 넣고 억지로 잡아 늘리기 위해 노력한 티가 넘쳐 난다. 게이머들을 위한 콘텐츠라기 보다는 그저 분량을 늘리기에 급급한 콘텐츠들이 다수를 이룬다. 

전체 유저 중 단 15%만 클리어 한 게임성은 그 이유에서 나온다. 과다한 진입장벽과 시간끌기의 반복. 새로움과 신선함, 혹은 섬세한 디자인은 전혀 없고 고질적인 문제점만 드라난다. 개발팀은 게임의 재미보다 양이 많아 보이는데 주력했다. 게임의 재미보다 더 편한 개발을 선택했다. 그 결과 컴파일게임이 나오면 보지도 않고 산다던 마니아들도 이 게임에는 두손 두발을 다 들었다. 그저 회사가 다음 작품을 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구매한 다음 2시간만에 장롱속으로 들어가는 타이틀이 돼 버렸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컴파일이 내놓는 작품들은 하나같이 소위 '나사가 빠진'작품들이 많다는 것이 관련 마니아들의 중론이다. 점점 마니아들이 등을 돌리는 가운데, 이들이 더 이상 컴파일의 게임을 구매하지 않는다면 이제 컴파일은 평범한 개발사로 타 게임과 경쟁해야만 한다. 그런데 유저들을 등한시하는 개발능력과, 그저 찍어내기에 바쁜 게임 디자인으로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개발사로서 초심을 돌이켜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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