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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엠 풍화설월', SRPG계 대표작 탄생 '명불허전'

  • 안일범 기자 nant@khplus.kr
  • 입력 2019.07.30 16:19
  • 수정 2019.07.3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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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 또 죽었다. 벌써 몇 번째인가. 같은 장면에서 또 죽는다. '다크 소울' 유다희양도 이렇게 불친절하지는 않았다. 답이 없다. 직쏘 퍼즐 막바지에 부품 하나가 사라진 느낌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마냥 시간을 돌리고 또 돌려도 죽는다. 별 수 없다. 로딩. 그리고 2시간짜리 스테이지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도 그럴것이 게임 등장인물 HP가 0이 되면 게임 속에서 죽는다. 저장된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죽은 캐릭터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애지중지하면서 키워온 캐릭터를 다시 만날 수 없다면, 별 수 없다.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1천4백만개 미래를 보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몇 번은 더 해봐야할 터다. 그래서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끝내 승리했을때, 그리고 죽어가는 동료를 구해냈을때 안도감과 쾌감은 이 게임을 계속 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개발팀은 사악하다. 요즘 말로 '고일 대로 고인' 베테랑들이다. 그도 그럴것이 첫 작품이 지난 1990년에 나왔다. 29년동안 시리즈를 만들어오는 기업이니 말 다했다. 이 기업은 유저들의 심리를 꿰뚫는다. 행동패턴과 방식을 잘 알고, '고생문'을 열어 놓고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이들이 짜놓은 기묘한 함정은 혀를 내두를만하다. 

게임 시작버튼을 누를 때 부터 함정은 시작된다. 유저는 한 사관학교에 소속된 교관으로 분해 게임을 시작한다. 1개월 단위로 스케줄을 짜고, 이에 맞춰 게임을 진행하게 된다. '프린세스 메이커'를 생각하돼 공주 한명이 아닌 학생들과 자신을 성장하도록 단련한다. 학교를 돌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서서히 성장한다.

이 사관학교에는 약 50명이 넘어가는 학생들이 등장해 주인공을 선생님으로 부른다. 모두 미남 미녀들. 각자 다른 개성을 기반으로 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눈다. 때로는 고민을 상담하기도 하고, 때로는 투정을 부린다. 때로는 달콤한 말을 속삭이며 때로는 배신하기도 한다.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이야기를 진행하다보면 서서히 캐릭터도 성장한다. 게임 속에 필요한 수치들을 올려가면서 점점 강한 주인공으로 변모한다. 동시에 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누던 캐릭터들도 성장한다. 

개발팀은 의도적으로 각 캐릭터들과 상관관계를 엮어 나간다. 게임상에서 보다 확실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맞춤형 레슨이 필요하다. 그렇다 보니 각 캐릭터들의 성격과 비사를 꿰고 있어야 더 큰 성장을 누릴 수 있다. 처음에는 '춤 추는 것을 좋아한다'던 캐릭터가, '전직 무희'였음을 밝히고, '아픈 상처를 대신해 밝은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로 변한다. 여기에 게임상에 등장하는 다른 캐릭터와는 '사제 지간'임이 알려지면서 캐릭터간 시나리오가 전개돼 나간다. 대다수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변모하기 때문에 각 캐릭터와 자연스럽게 친구(일종의 학습)가 돼도록 한배한다. 

이렇게 탄생한 친구들과 함께 전장에 나간다. 처음에는 쉽게 클리어하던 전장에 점점 난이도가 붙는다. 개발자는 '흔히 인기 있을 것 처럼 보이는 캐릭터'를 사지로 몰아 넣고, 주인공에게 이를 구하라고 명한다. 캐릭터를 구하기 위해서는 온갖 고난을 헤처 나가야 한다. 때로는 등 뒤에서 복병이 출연해 뒷통수를 때리기도 하고, 때로는 주인공과 상성이 있는 캐릭터들을 배치해 난이도를 높인다. 고생 끝에 캐릭터를 구하면 이제 탈출하라고 하기도 하고, 때로는 구해낸줄 알았던 캐릭터가 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해진 함정에도 굴하지 않고 전진해야만 엔딩을 볼 수 있다. 때로는 동료들의 가슴아픈 죽음을 뒤로해야 하기도 하고, 때로는 거대한 음모 덕분에 '판을 뒤엎는' 시나리오를 맞이 해야 할 때도 있다. 한편의 대 서사시를 보는 듯한 시나리오가 끝나고 나면 이제 개발사는 주인공을 향해 '더 할테야?'라고 묻는다. 

그도 그럴것이 게임상에는 총 3개 가문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각 가문마다 이용 가능한 캐릭터가 다르며, 전개되는 시나리오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1회차에서 상대했던 아군들이 적이 되기도 하고, 적으로 만났던 이들이 아군으로 변하면서 신선한 감정이 셈솟는다. 특히 다회차를 플레이 해야만 확인 가능한 '시나리오'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게임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 3회이상 게임을 플레이 해야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각 가문별로도 특정 선택지에 따라 분기가 갈리는 관계로 느긋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준비돼 있다. 

다행히 엔딩을 보고 나면 소위 '회차 계승'요소가 등장해 주인공을 좀 더 강화한 상태에서 게임을 시작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비교적 편하게 게임을 진행하게 되는 점이 장점. 전회차에서 아쉽게 놓쳤던 부분들을 만회할 수 있으므로 반복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더라도 지루하지 않다. 숨겨진 직업을 열고, 더 강력한 캐릭터를 육성하고, 더 많은 아군들을 설득해 포섭하는 등 목표도 다양하다. 도저히 살리지 못했던 캐릭터를 살려내 함께 활약하는 것 만으로도 다회차 플레이는 충분히 가치있는 게임성을 전달한다. 

한 번 엔딩을 보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50시간에서 60시간. 꼼꼼히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이 보다 10시간은 더 잡으면 된다. 총 3개 가문을 플레이한다고 가정하면 플레이타임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발매된 게임들 중에서도 가격대비 플레이타임면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만한 게임이다. 

반면, 혹자들에게 게임은 심각한 '반복행동'을 해야하는 게임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정통 SRPG게임과 달리 인터미션 상에서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줍고, 대화를 이어 나가야 하기도 하고, 분실물을 찾아주거나 선물을 해야하는 등 요소들은 오히려 진행을 더디게 만드는 요소라는 지적이 있다. 이 과정이 '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에서 쉽게 질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기존 팬들은 '게임 난이도가 너무 낮아졌다'고 지적하기도 하며, 시나리오가 '과격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정신적 데미지를 입는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결과론적으로 게임은 소위 '역대급' 성공을 써 내려가는 듯 하다. 국내를 포함 각종 글로벌 차트에서 게임은 인기순위 1위에 올랐다. 사실상 시리즈 최고 판매량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들이 줄을 잇는다. 해외 외신들은 이 게임에 10점만점에 9점대 이상 평점을 주면서 극찬하고, 팬들은 커뮤니티를 통해 게임을 이야기하고 정보를 나누며, 각 캐릭터를 기반으로 팬아트와 팬픽을 만들어 낸다. 

한 때 '소수 마니아'들을 위한 게임처럼 보였던 '파이어 엠블렘'은 '풍화설월'을 기점으로 이제 글로벌 IP로 도약하는 분위기다. 덕분에 게이머들은 몇 년 뒤 다시 등장할 신작을 기분좋게 기다릴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긴 글을 읽다 지칠 독자여러분들을 위해 단 한줄로 게임을 평가해본다. 9월 초순, '몬스터헌터 월드:아이스본'이 나올때 쓰려고 아껴둔 휴가를 다음주에 쓸 예정이다. 

 

[경향게임스=안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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