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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담은 인류의 진화, '엔세스터스'

  • 안일범 기자 nant@khplus.kr
  • 입력 2019.08.29 16:41
  • 수정 2019.08.3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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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은 인류가 영장류에서 진화해 지금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분석한다. 새로운 연구가 나오거나 타임머신이 발명되지 않는 이상 '진화론'은 상식으로 알려져 있다. 몇몇 종교에서는 '진화론'을 터부시하는 관계로 대중문화에서 이를 언급하는 일은 '흥행 전선'에 악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특히 인터넷 시대가 오면서 소위 '평균 점수'를 깎아 먹는 혹평들이 쏟아지는 시도를 아예 하지 않게 됐고, 그 결과 '진화론'은 게임의 소재로 쓰이지 않게 됐다. 

그런데 한 과감한 개발진들이 이를 소재로 게임을 내놨다. 원시인, 아니 그 이전으로 돌아가 영장류에서 출발해 인류로 진화하는 과정을 게임 소재로 담았다. 주인공은 작은 꼬마 원숭이와 엄마로 출발해 생존을 목표로 삶을 산다. 처음에는 갈증과 배고픔 등을 해결하면서 서서히 경험을 쌓고, 주거지를 마련해 성장하고, 동료를 만나 '집단'을 구성하고, '집단'을 모아 '사회를'만드는 형태로 진화 과정을 밟는다. 새로운 '기술'들을 배우고, 교배를 통해 자손을 이어나가고, '영감'을 얻어 성장하며, '문화'를 만들어 나가면서 서서히 성장한다. 누군가에겐 무척 흥미로운 주제가 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하품이 절로 나오는 주제가 이 게임속에는 녹아 있다. 한마디로 말해 게임은 호불호가 심각하게 갈린다. 

론칭 첫날 게임의 메타크리틱 점수는 단 67점. 유저 평점은 5.5점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게임이 '쓰레기'급 타이틀이라고 보면 또 곤란하다. 그도 그럴것이 일부 전문가들은 이 게임에 0점을 줬다. 반대로 고득점을 준 전문가들은 80점에서 90점 사이. 평균 점수를 크게 깎아 내는데 영향을 미쳤다. 이는 유저 점수 비중도 비슷하다. 0점과 1점표가 쏟아지는 가운데 일어난 일이어서 냉정한 평가를 내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이들의 평가를 종합해보면 게임은 '어렵다'. 오픈월드 서바이벌 게임인데다가 낯선 주제를 담은 만큼 일반적인 게임 지식과는 조금은 플레이 방법이 다르다.

소위 '먹고 사는'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 초반 플레이 핵심이다. 이것이 인간계나 판타지계 혹은 SF물처럼 '상상 속 범주'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현실적인 '고증(?)'이 포함됐다. 실제 야생에서 할법한 행동들을 게임 속에서 반복해야 한다. 작은 진화를 위해서는 '먹기'와 '살아남기'를 반복해야 하는 가운데 눈에 보이는 '보상'은 눈꼽만하다. 음식 몇개 주으면 화면 전체를 뒤엎는 스킬을 쏜다거나, 무지막지하게 쎈 칼을 얻어서 몬스터를 도륙내던 게임 문법이 이 게임에는 없다. 사실상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의 '의욕'을 얻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원숭이는 허약하기 그지 없다.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으면 그대로 픽 죽어버린다. 하드코어 서바이벌 게임에 가까울 정도인데, 다시 처음부터 먹고, 마시고, 도망치고 하다 보면 게임할 의욕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게임 내용을 담은 인터페이스역시 유저들에게는 낮설게 설정돼 있어, 게임에 보내는 혹평을 납득할만하다.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이들은 게임 내용보다 게임의 소재에 집중했다. 진화론을 기반으로 게임을 설계하고 이 과정을 녹여냈다는 점에서 가치를 뒀다. 소재 자체가 신선하게 보이고, 유인원을 소재로 한 만큼 독창적인 게임 그래픽이 나왔으며, 뛰어다니는 원숭이들을 조작하는 방법과, 나무 타기와 같은 소재들이 동원되면서 이 점이 많은 점수를 받는 근본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게임 개발자들이 게임에 '혼'을 담았다(애정을 쏟았다)는 평가들이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한가지 변수는 '하는 게임'이 아니라 '보는 게임'으로서 가치다. 게임은 직접 하기에는 소위 '귀찮을' 요소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허약한 원숭이가 과연 '거미'와 싸워 이길 수 있을까. 게임은 당연히 이겨야 한다. 초보존(시작존)에 있는 몬스터들은 몇 방 때리면 잡아야 한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는 고민해야한다. 맨 몸으로서 사람으로 빙의해 독버섯을 조심해야 하고, 질병을 조심해야 하고, 불을 두려워 해야 하고 익사를 두려워 해야 한다. 허약하기 그지 없는 존재다.

그렇다 보니 게임을 하는 사람은 내내 '고통 받는'다. 이렇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는 것을 즐기는 유저들에게 이 게임은 적잖은 가치를 지닌다. 시청자들은 더 기발한 아이디어로 진행자를 괴롭히고, 진행자는 쌓여 가는 시청자를 보면서 웃는다. 그렇게 게임의 매력에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게임은 크게 변화한다. 등에 업혀 있는 작은 유인원은 '짐덩이'에서 소중한 존재로, 온갖 고난 끝에 맞이한 '진화'는 새로운 게임 플레이를 여는 장으로 변화하면서 시청자들과 진행자가 함께 환호한다.

현재 진행중인 '엔세스터' 방송 중 한 방에서는 목이 마른 유인원이 헤메는 사이 시청자들이 '폭포'를 발견하고는 진행자가 이에 접근해 물을 마시는 장면이 포착됐다. 동시에 이 방송에서는 시청자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이어 시청자들은 '이런 것도 되냐'는 투로 질문을 던지고 진행자가 실행해보면서 게임을 하나둘씩 하에쳐 나간다. 놀랍게도 시청자들의 엉뚱한 상상이 실제로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개발팀이 사전에 다양한 상황을 놓고 개발해 두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혼을 담았다'는 평가가 납득이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엔세스터:휴먼 카인드 오디세이'는 오래 끓이면 끓일수록 맛이 진해지는 '곰탕'을 연상케 한다. 최소 8시간은 끓여야 드디어 '먹을 만한 게' 나온다. 당장 배가 고파 뭔가를 먹고 싶은데 굳이 기다려 줄 의리는 없다. 차라리 곰탕을 끓일 뼈로 스마트폰을 열고 배달을 시키는 것이 나은 선택인지도 모른다. 반대로 배달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 지친 이들이라면 곰탕을 한번 쯤 먹고 싶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단점 중 하나는 계속 곰탕만 먹게 되면 질리게 된다는 점도 참고해야한다. 많은 이들이 도전하고,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인류를 진화시켜 마지막을 봤을 때야 말로 방점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 게임에 긍정적인 점수를 내리지 않으려 한다. 너무 오래 굶었다. 대작 기근. 대신 1주일뒤부터 입이 떡 벌어지는 대작들이 쏟아지는 시기다. 여유롭게 물을 끓이고 육수를 뽑아 마실 즈음에 진수성찬이 쏟아진다. 인내심을 갖고 오래동안 기다릴만한 여유도 이유도 없는 이들이 즐비한 시기다. 그저 시원한 방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방송을 구경하는 선택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미친듯이 가을 축제를 즐기다가 슬슬 힘들어 질 때 쯤이라면 곰탕은 완성돼 있을 터. 얼리억세스를 끝내고 밸런싱을 조절한 게임을 즐겨도 늦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한편, '엔세스터:휴먼카인드 오디세이'는 에픽스토어를 통해 사전 출시됐다. 올해 12월에는 PS4, Xbox 등 콘솔게임 버전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경향게임스=안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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