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가 당신을 짓누를때, 데스 스트랜딩
삶의 무게가 당신을 짓누를때, 데스 스트랜딩
  • 안일범 기자
  • 승인 2019.11.11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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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저마다 짐을 짊어 지고 삶을 산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꿈이, 누군가에게는 바로 자기 자신이 짐이 될지도 모른다. 정해지지 않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뿐이다. 때로는 외롭고 힘들지만, 때로는 지치고 쉬고 싶지만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여정은 계속된다.

거대한 짐을 짊어 지고 휘청거리며 나아간다
거대한 짐을 짊어 지고 휘청거리며 나아간다

게임 속 주인공 샘은 배달부(포터)다. 험난한 지형을 오가면서 목표지역까지 물건을 나르는 직업. 짐을 짊어 지는 순간 샘은 혼자다. 그리고 먼 길을 홀로 걸어 나간다. 목적지까지 그저 걷는 일 뿐이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잠시 웃음 짓기도 하고, 정체모를 BT(적)들이 괴롭히기도 하며, 때로는 험준한 산맥에 고심하기도 한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다치고, 심지어 죽기까지 하지만 그는 다시 일어나 걷는다.

여정 대부분은 혼자다. 놀라운 그래픽이 가능한 이유도 캐릭터가 적어서 아닐까
여정 대부분은 혼자다. 놀라운 그래픽이 가능한 이유도 캐릭터가 적어서 아닐까

사무치는 외로움, 고독,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계속 된다. 등에 짊어질 짐과 씨름하면서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귓가에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리면서 마음을 녹인다. 다 왔구나. 큰 한숨과 함께 짐을 내려놓는다. 성공적 배달. 이번 배달로 또 한 사람이, 또 한 도시가, 또 한 국가가, 또 한 세계가 시련에서 벗어났다. 묵묵히 짐을 떠메고 그는 다시 걷는다. 

타인이 건설하거나 사용하는 구조물이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타인이 건설하거나 사용하는 구조물이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슬슬 이 짓에도 익숙해 질 때 쯤 세상에는 또 다른 풍경이 보인다. 방금 지나쳐온 길에 놓인 사다리, 허우적거리며 헤엄쳐서 넘어야 했던 강가 위에 놓인 다리, 험난하던 돌길 위엔 포장도로가 깔리고, 한참을 올라서야했던 산 중턱에는 집라인이 설치된다. 서로 바라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누군가 있다. 먼저 이 곳을 지나갔든, 나중에 이 곳을 따라올 것이든 그들은 나와 함께 움직인다. 샘이다. 내가 아닌 샘이 더 있다. 각자 다른 곳에서 게임을 즐기지만 함께 세상을 개쳑하는 사람들. 저마다 '샘'이 돼 함께 나아간다.

기여를 많이 한 사람들에게는 '좋아요'가 쏟아진다
기여를 많이 한 사람들에게는 '좋아요'가 쏟아진다

서로 볼 수도, 만져볼수도 없지만 그들이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여정은 희망으로 남는다. 먼저 간 사람들이 길을 놔주기도 하고, 건물을 지어 쉴 곳을 마련해주기도 하면서 서로 돕는다. 도움을 받을 때 마다 쌓이는 '좋아요(감사 표시)'는 능력치 성장을 위한 자양분이 된다. 때로는 엉망인 길로 안내하면서 사람들을 나락에 빠뜨리는 사람도, 때로는 거짓 정보로 죽음으로 내모는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관계 없다. 그것이 게임의 법칙이다.

필요한 장소에 건물을 지어 타 유저들과 공유할 수 있다
필요한 장소에 건물을 지어 타 유저들과 공유할 수 있다

수 많은 샘들이 모여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고, 물건을 전달하고, 건물을 짓고 길을 닦으면서 세상은 조금씩 연결된다. 여전히 혼자 달리는 세계지만 보이지않는 사람들이 서로를 응원한다. 위기의 순간에 발견한 쉼터와 건너기 힘든 길 앞에 보이는 사다리 한 개가 이 게임의 킬러 콘텐츠로 자리잡는다. 길을 지나다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지어둔 건물에 내 이름을 발견했을 때, 또 건물을 활용해준 사람들이 '좋아요'를 보낼 때. 게임은 형언하기 힘든 감정을 전달한다. 반대로 좋아요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길가다 만난 구조물에 도움을 받아본 경험을 기반으로, 다른 사람들의 심정을 들여다 본다. 수백명이, 수천명이 같은 경험을 하고 감사를 표한다. '좋아요'가 가진 힘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원동력이 된다.

유저를 괴롭히는 또 다른 적 BT
유저를 괴롭히는 또 다른 적 BT

물론, 유저들을 괴롭히는 존재들도 있다. 일명 BT. 유령처럼 보이는 이 존재는 숨겨진 공포다. 샘이 배달을 수행하거나 물건을 수집해야하는 경로에서 나타나 숨통을 죄어 온다. 화물을 노리고 습격하는 뮬은 공포 보다는 귀찮은 존재. 주먹 몇 방에 나가 떨어지는 허약한 존재지만 쉬지 않고 유저들을 괴롭힌다.
여기에 타임폴(맞으면 노화되는 비)나 복잡한 지형은 배달 난이도를 높이는 존재. 이 외에도배달품들이 주는 무게, 탈 것 배터리, 스태미너 등 온갖 제약 조건이 존재하면서 유저를 압박한다. 어느 것 하나도 모자라면 배달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수시로 긴장상태에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된다. 

끔찍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돌파구는 있다
끔찍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돌파구는 있다

게임은 수 많은 고통과 인내로 구성돼 있다. 대다수 게임 플레이는 '이동'에 치중해 있다. 이 곳에서 저곳까지 걸어가는 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겹도록 해 오는 그 일을 게임 속에서도 해야 한다. 버튼을 눌러 균형을 잡고, 파츠를 더해 효율을 집어넣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본 플레이가 달라지지 않는다.

배달에 성공하면 감사인사, 재료, 능력치 등이 쏟아진다
배달에 성공하면 감사인사, 재료, 능력치 등이 쏟아진다

별 일 아닌 듯한 그 '배달' 과정에서, 또 배달이 성공하면서 묘한 '해방감'이나 '쾌감', '안도감'을 얻고, 찰나 동안 기쁨을 누린다. 다시 끝 없는 고통의 굴레 속으로 몸을 던지는 과정이 반복된다. 과정은 복잡하고 힘들지만 결과는 뿌듯하다. '샘', 어쩌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이 그렇지 않을까.
 

유일하게 주인공과 함께 붙어다니는 동료 BB. 옹알이가 고작이지만 고마운 존재다
유일하게 주인공과 함께 붙어다니는 동료 BB. 옹알이가 고작이지만 고마운 존재다

그렇다보니 게임은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뒤섞여 있다. 누군가는 '반복되는 배달'메카닉에 지루함을 느끼기도 하고, 누군가는 '목적을 잃은 게임'이라고 보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 게임속에서 '희망'을 보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 게임속에서 '연결'을 보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어떤 이들은 이 게임에 게임 오브 더 이어 딱지를 찍고, 누군가는 혹평 일색에 '환불 요망' 딱지를 찍는다.

배경 하나 바뀌었을 뿐이지만 장르가 달라진다
배경 하나 바뀌었을 뿐이지만 장르가 달라진다

게임을 이리저리 뜯어 보고 리뷰해야하는자 입장에서는 이 게임은 즐길거리가 많은 게임이다. 그저 스쳐 지나가기 쉬운 장면에도 새로운 연출 방식과, 표현방법을 테스트 하기 위한 흔적이 역력하다. 같은 감정을 전하더라도 새롭게, 같은 대사를 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미친듯이 새롭고 싶은 개발자의 고뇌가 게임 전반에 절절히 묻어 난다. 그리고 그 고뇌를 즐기는 것 만으로도 게임은 가치 있다. 

게임 속 등장인물들은 눈빛과 동작, 신체변화로 공감을 이끌어 낸다

일례로 게임 초반부에서 비를 피해 동굴에 몸을 숨긴 '샘'이 BT와 조우하는 장면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멋있다. 배달 도중 한 숨 돌리면서 쉬어가는 듯한 타이밍에 갑자기 주인공 눈동자가 크게 흔들린다. 난데 없이 팔을 비추는데, 팔에 닭살이 돋아 오른다. 이내 온 팔을 덮으면서 팔은 시뻘겋게 달아 오른다. 뭔가 있다. 장면을 본 관객은 직감적으로 눈치 챈다. 말 한마디 없고, 흔한 거친 숨소리조차 없지만 이내 장르는 스릴러물로 변한다. 멀리서 들려오는 쿵, 쿵 발자국 소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적. BT와의 첫 조우는 그렇게 표현된다. 아무리 뛰어난 배우라 할지라도 몸에 돋는 닭살을 표현하지는 못할 터. 그 어떤 영화도 쉽게 하지 못하는 연출을 게임으로 해낸 셈이다. 섬세한 표현은 게임 내내 계속된다. 

모든장면에서 거의 실사처럼 보이지만 손을 보면 어색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장면에서 거의 실사처럼 보이지만 손을 보면 어색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난데 없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별다른 대사 없이 입고리가 올라가는 장면에서, 눈부신 해를 등지고 걸음을 옮기는 장면에서 감독은 수 많은 대사로는 풀어내지 못할 이야기들을 게임 속에 담는다. 30년동안 게임을 만들어온 장인 개발자는 이 게임에서도 유감없이 내공을 뿜어낸다. 코지마 히데오가 가장 잘하는 철학적 표현과 영상미는 두말할 필요 없고 이번엔 게임 밸런싱에서도 참신한 시도가 이어진다.

분명히 '데스 스트랜딩'은 '삶'이 아니라 게임이다. 개발팀은 유저들의 고뇌를 잘 아는 듯 갈수록 소위 '제약조건'들을 하나 둘 풀어주고, 보다 편한 게임성을 제공한다. 챕터 3부터는 화물 제한을 대폭 풀어버리고, 챕터 5부터는 소위 '집라인'을 설치, 하늘을 날다시피해 시간마저 줄여준다. 숨통을 죄어 오던 BT는 아이템을 떨어뜨리는 먹잇감으로, 무거운 중량은 '높은 경험치'를 주는 아이템으로 변하면서 게임 재미는 가속화 된다. 비교적 길게 이어지던 상황 설명은 이제 게임과 결합돼 궁금증으로 남고, 단서들이 하나 둘 풀리면서 거대한 퍼즐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새벽 공기,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헤드폰을 쓰고 게임을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새벽녘, 혼자라고 느낄때 쯤 방안에서 헤드폰을 쓰고 게임을 즐기기를 추천한다

과연 BT는 무엇일까. '데스 스트랜딩'은 무엇을 말할까. 샘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BB는 왜 BB가 됐을까. 등장 인물들은 잘 살아 남을까. 머리속을 가득 메우는 질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샘'은 오늘도 짐을 떠메고 길을 나선다. 게이머가 보는 것은 그의 크고 넓은 등. 눈부신 자연환경아래서 오직 앞으로만 전진한다. 괜찮다.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 당신을 응원한다.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 당신의 도움을 받는다. 저마다 답을 찾아 오늘도 여러 샘들은 등짐을 짊어 진다. 당신의 인생에 보내는 작은 위로. '데스 스트랜딩'이다. 

[경향게임스=안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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