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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팔던 꼬마들이 만들어낸 꿈 '위쳐3'

  • 안일범 기자 nant@khplus.kr
  • 입력 2020.01.22 13:38
  • 수정 2020.01.2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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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위쳐'의 인기에 힘입어 '위쳐3'이 재조명된다. 나온지 5년이 지난 이 게임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른 한편으로 게임은 난이도가 어려운 하드코어 게임에 속한다. 플레이스테이션4 기준으로 게임 엔딩을 본 유저는 전체 구매자 중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반까지 진행하는 유저들은 전체의 40%. 약 100시간이 넘는 플레이타임과 비교적 길게 진행되는 스토리라인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엔딩을 본 사람들은 이 게임이 최고의 게임이라고 이야기한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게임은 계속 팔리고 있으며, 유저들은 이 게임을 추억한다. 그렇다면 게임의 매력은 무엇일까. 

게임 좋아하는 소년들 사고 치다

CD프로젝트 레드를 이끄는 마르친 이빈스키는 게임을 좋아하던 소년이었다. 그는 게임을 하고 싶어 안달난 소년이었다. 그런데 그가 사는 지역 폴란드는 게임 시장에서 소외된 국가였다. 공산주의가 무너지던 시점. 그 누구도 소련 근교 작은 나라를 들여다 보지 않았다. 신작 게임은 발매되지 않았고 그는 매 번 새로운 작품을 구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상태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친구 미하우 카친스키를 만난다. 친구 역시 게임을 사랑하는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힘을 모아 게임을 사고자 게임사에 전화를 건다. 그러나 단품 구매는 불가능한 일. 이를 바꿔 보고자 두 사람은 소위 '공동구매'를 시작한다. 시디를 여러장 떼 온 다음에 판매하는 직업이 그들의 첫 행보다. 물론 자신들이 즐길 게임은 빼놓고 말이다. 

조금씩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하자 그들은 이제 '게임쇼'를 방문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게임쇼 현장에서 본 멋들어진 게임 '워크래프트2'를 퍼블리싱했고, 점차 돈을 들여가면서 큰 프로젝트들을 공급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더 재미있는 게임을 즐기기 위해 현지화와 음성 녹음까지 시도했고 작품들을 내놓을때 마다 대박을 치기 시작한다. 그 중에서도 그들을 대표하는 히트작은 '발더스 게이트'다. 폴란드에서만 예약주문으로 2만장 판매고를 올렸고 이어 판매고가 하늘을 치솟는다. 이제 그들은 폴란드를 대표하는 게임 퍼블리셔로 자리잡는다. 

이어 그들은 몇차례 작품들을 선보이지만 '발더스게이트'만한 빅히트 타이틀은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결국 그들은 폴란드판 '발더스게이트'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개발이라고는 하나도 몰랐지만 그들은 '게임'을 좋아했다. 

두 사람은 뒤가 없었다. 오직 번 돈은 게임 개발에만 쓰였다. 제대로된 스토리라인을 기반으로한 '폴란드판 발더스게이트'만 나온다면 팔린다는 계산이 서 있었다. CD팔던 두 소년은 그렇게 전설을 쓴다. 한 때 자금 위기가 오기도 했고, 개발팀들이 게임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문제도 있었지만 그들은 앞만보고 달렸다. 그렇게 얻은 수익은 또 다음 작품을 위해, 또 다음 작품을 위해 쓰였다. 2015년 그들이 세번째로 내놓은 '위쳐3'는 제작비만 981억원이 투입된 블록버스터급 타이틀이다. 

경제학자가 쓴 소설 '위쳐'가 게임으로

폴란드발 '발더스게이트'. '발더스 게이트'는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게임을 얹어 화제를 모았다. 폴란드판 '발더스게이트'가 나오려면 시나리오가 중요했다. 당시 유행하던 소설 '위쳐'가 그의 눈에 들어온다. 부랴부랴 계약을 마친 이후 그들은 이 작품을 게임으로 옮긴다. 타이틀의 줄기를 담당할 스토리라인은 모두 소설 '위쳐'시리즈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원작 '위쳐'를 쓴 안제이 사프콥스키는 경제학자 출신 소설가다. 경제 학자답게 자본의 흐름과 권력의 상관관계 그리고 이에 기생하는 사람들의 군상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 소설을 썼다. 여기에 권력을 쥔 사람들을 표현해 나가면서 단계를 쌓고, 왕과 국가들의 대립을 그린다. 가상의 세계지만 '돈'과 '권력' 그리고 이를 다루는 '정치'가 개입하면서 소설 속 세계는 생명력을 얻는다. 

이 세계에서 활약할 영웅으로 선정된 '개롤트'는 일종의 '실험 인간'이다. 정상적인 인간이 시험을 거쳐 감정을 제거하고 훈련을 받아 탄생한 '괴물'에 가깝다. 감정이 없는 이 캐릭터는 모든 일들을 '중립'으로 보고 오직 원칙으로만 판단한다. 사회적 통념에 따른 '선악'대립이나 구도는 전혀 신경쓰지 않으며 오직 현재와 미래를 보는 특성이 있다. 때로는 '잔혹한 학살자'로, 때로는 '정의의 구원자'로 입체감있게 변화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개롤트'와 합을 맞출 등장인물들은 세계관속에서 방대한 사건과 사고들을 겪으며 인격체로 성장한다. 수십명 등장인물들이 각자 성격과 배경에 따라 행동하며 얽히고 섥힌다. 특정 사건 줄기가 있으면 각 캐릭터들의 성격과 배경을 기반으로 했을법한 행동들을 설정해 놓고 이를 이야기상에서 녹여내면서 시나리오를 빌드업한다. 그 중 일부만 공개된 상태에서 사건을 추적하고 숨겨진 이야기들을 알아 나가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엄밀히 말하면 게임 '위쳐'는 소설이 끝난 직후의 세계를 상상해 만들어낸 작품이다. 소설 속 배경과 캐릭터 성격, 등장인물, 화법 등이 채택됐지만 게임으로 표현된 내용은 본편과는 엄연히 다르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과 같은 작품들처럼 원작 소설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방법으로 연출하고 그려낸 세계에 가깝다. 사실상 분위기와 기본 세계관을 유지한 채 다른 드라마를 써 내려나간다고 봐도 무방하다. 

'선택'의 무게

'위쳐3'의 근간을 이루는 이야기는 주인공 개롤트와 그의 딸인 '시릴라', 아내인 '예니퍼' 그리고 적대 세력인 '와일드 헌트'가 큰 줄기를 이룬다. 

'시릴라'는 '고대의 힘'을 보유한 전형적인 주인공 타입 캐릭터다. '고대의 힘'을 얻기 위해 비밀세력 '와일드 헌트'가 시릴라를 추적한다. 시릴라는 이를 피해 도망을 치면서 우여 곡절을 겪는다. 주인공 개롤트는 시릴라의 여정을 추적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이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듣는다. 전반적인 구도는 시릴라의 여정을 추적하다 보면 사건이 발생하며, 사건을 수습하고 나면 다시 작은 단서를 얻는 형태로 게임 흐름을 잡는다.

핵심 줄기가 서 있기 때문에 곁가지들이 더해지더라도 혼선을 겪는 경우는 없다. 베테랑 스토리텔러들은 핵심 줄기를 헤치지 않을 정도로 스토리를 넣거나 빼고, 등장인물들을 더하거나 줄여 나가면서 전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특히 각 서브 퀘스트들이 전체 세계관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력한 요소들로 구성됐다.

일례로 게임 속에서 '왕'을 암살하는 서브 퀘스트가 등장하며, 이후 국가 전체가 조금씩 바뀌어 가는 장면들이 게임속에 등장한다. 특정 서브 퀘스트는 엔딩으로 까지 직결되며 이 결과에 따라 엔딩이 달라지는 형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전체 엔딩수는 5개. 여기에 서브 퀘스트들을 진행하는 조건에 따라 죽고 사는 캐릭터가 결정된다. 

이는 비교적 중요도가 덜한 퀘스트에도 등장하는 문제다. 흔한 도적 한명을 살려 보냈다가 그 캐릭터가 앞으로 등장할 한 마을을 몰살시켜 퀘스트 진행을 방해하는 경우가 생긴다. 반대로 중요한 인물을 죽였다가 전체 국가가 도산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런데 이 퀘스트는 비교적 장시간동안 진행해야 결말에 도달한다. 일례로 게임 속 한 국가에서 핍박받는 마법사들을 해방하는 퀘스트는 퀘스트 진행에만 5시간이 걸린다. 그 중 핵심 퀘스트는 30분 이상 플레이타임을 요구한다. '다른 결말'을 원해 선택지를 되돌리고자 한다면 30분 이전으로 돌아가 다시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30분을 투자하면 높은 확률로 '다른 결말'이 나오며, 전체 세계는 다시 한번 변한다. 

이 과정에서 시리즈속에 등장했던 주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해 조력자로서 활동하거나, 사건의 중심축을 이루면서 이야기가 쌓여 나간다. 여기에 평범한 서민, 귀족, 병사, 거지, 창부 등 다양한 계층들을 활용한 시나리오 전개와 인간 군상을 담은 서브 퀘스트들은 게임의 매력포인트 중 하나다. 

유저가 선택해야할 시점이 오면 항상 고민하게 되며, 그 결과를 수용해야 하는 구조다. 부담스런 선택 뒤에 따라오는 결말은 언제나 묵직하게 가슴을 올린다. 

호불호 갈리는 게임 전개

1등급 쇠고기로 셰프가 요리한 스테이크라 할지라도 하루종일 먹고 있으면 질리기 마련이다. 아무리 몰입감 넘치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할지라도 반복되면 부담으로 다가오기 마련. '위쳐3'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방대한 스토리라인을 끝내놓고 나면 다음 스토리가, 또 다음 스토리가 계속해서 나오는 관계로 유저들은 지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서브 스토리 등으로 사랑을 다루거나 유쾌한 진행과 위쳐식 농담, 미니게임(궨트, 경주, 주먹싸움 등), 섹스와 술, 춤과 같은 요소들을 삽입했다.

관점을 달리해보면 장시간동안 게임을 진행할 환경을 갖추지 못한 유저들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전개 방식이다. 물흐르듯 연계되는 스토리라 할지라도 끊어서 플레이할 수 밖에 없다면 전후 사정이 기억에 남지 않고, 게임 속에서는 기억을 더듬어가는 장면들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긴 로딩시간동안 짧게 지나가는 상황 설명만이 전부다. 끊임 없이 '할 거리'가 나온다는 점에서 장점이 분명하지만 반대로 스트레스도 가중되면서 유저들의 이탈을 재촉한다. 

유저들이 가장 많이 이탈하는 타이밍 중 하나는 '스켈리게'라는 신대륙이 나오는 시점이다. 중반부를 끝낸 유저들은 다른 대륙으로 이동하는 선택지를 받는다. 선택지에 해당하는 레벨은 16레벨. 그런데 현재 퀘스트를 끝내고 나면 유저들의 레벨은 평균 18레벨에서 20레벨을 넘나든다. 신대륙으로 넘어가서 퀘스트를 진행해봐야 얻는 경험치는 1아니면 2에 불과하다. 별다른 이득 없이 시나리오를 보기 위해 퀘스트를 진행해야 한다. 워낙 강력한 캐릭터를 갖고 있는 탓에 몬스터들은 한두방에 쓰러지며, 몬스터가 때려봐야 데미지는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몰입감 넘치는 스토리라인이 있다 한들 '레벨업을 위한 포석'이나 '긴장감넘치는 전투'가 없다면 게임으로서 재미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후 게임은 '레벨 밸런싱'에 실패한 상태로 전개된다. 적들은 하품이 나올만큼 쉽고. 별다른 준비 없이 길가다가 마주치면 칼질 몇번하면 상대는 쓰러진다. 장비가 갖는 의미나, 스킬이 갖는 의미들은 모두 사라진 채 스토리를 읽는 재미로 엔딩까지 이끌어 나가야 하는 시리즈 최대 단점이다. 

 

흥행, 작품성 두마리 토끼를 잡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위쳐3'는 전 세계 600만장 판매고를 올린 대작 타이틀이다. 출시 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게임은 계속 판매되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위쳐'가 방영된 이후 새로운 유저들이 유입되면서 성과는 더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게임은 3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작품성면에서도 게임은 극찬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위쳐3'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출시당시 내로라는 작품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2015년 '올해의 게임 상'을 수상했다. '폴아웃4', '메탈기어솔리드5', '블러드본', '슈퍼마리오메이커', '언더테일', '몬스터헌터 4'등 주옥같은 타이틀이 있었지만 게이머들의 선택은 '위쳐3'이었다. 

잘 짜여진 세계관과 스토리라인, 매력적인 캐릭터, 심혈을 기울인 전개방식 등이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엔딩에까지 도달한 유저들은 소수인 점은 개발사가 갖는 고질적인 문제점인 것으로 보인다. 이어진 확장팩에서는 레벨 문제를 해결하면서 전투의 재미를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므로 '원작'이 부담스럽다면 확장팩을 플레이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인다. 

기자가 생각하는 '위쳐3'은 명작이다. 명석한 CEO가 과감한 투자를 하는데서 부터 전설은 시작된다. 이들이 아이템으로 잡은 '위쳐'와 관련 시나리오를 준비하는데만 장시간 걸렸음이 틀림이 없다. 준비된 시나리오를 팀원들이 모두 인지하고 관련 내용에 첨삭을 가해 게임으로 만들어 냈다. 엔지니어들은 오픈월드 사상 유례업을 정도로 방대한 맵을 구현하는데 성공했고, 기획팀은 이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퀘스트를 전개하는 동선으로 활용해 냈다. 여기에 매력적인 주연 캐릭터들을 필두로 수많은 NPC구현했고, 세계관을 충실히 알려줄 맵이나 아이템 디자인 등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을만한 작품으로 귀결됐다. 

설사 게임 레벨 디자인상 문제점과 잦은 버그, 맵로딩 속도, 물리엔진 오작동, 충돌체크 등과 같은 버그, 늘어지는 스토리라인 등 단점이 있을지라도, 게임에 '명작'이라는 평가를 내리는데는 주저함이 없다. 설 연휴 장시간동안 게임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면 '위쳐3'을 선택해보자./

[경향게임스=안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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