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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반룡의 게임애가] 저주받은 걸작은 실패작이다

  • 정리=김상현 편집국장 aaa@khplus.kr
  • 입력 2020.05.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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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 776호 기사]

시대를 앞서간 제품이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잘 만든 제품이지만, 그 시대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제품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듣는 제품들은 몇 년후 혹은 몇십 년후 유사한 제품이 히트한 것들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런 제품이 당시에는 왜 인정받지 못했는지 살펴보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필자가 다양한 콘텐츠 분야에 대해서 투자를 검토하던 중 자주 듣는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답답한 이야기가 잘 만든 콘텐츠이니 실적이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 문제는 비단 콘텐츠 혹은 게임 분야 투자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다. 많은 초기 기업들이 가지는 착각이다. 제품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소비자가 살 수밖에 없다는 식의 표현을 한다.
잘 만든 게임이란 유저가 재미있게 이용 가능한 게임이다. 그러나 유저의 재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따라서 명확한 기준을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재미는 이용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결국 성공한 게임이 되려면 잘 만든 게임이라는 사실을 검증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유저의 인정이 필요하다. 그것은 게임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잘 만든 게임을 유저에게 전달하는 과정은 제품을 제작하는 과정과 분리돼 있다. 통상 이런 전달 과정을 마케팅이라 부른다.

마케팅은 재미있는 게임을 제작하는 과정이 아니다. 유저에게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인식시키는 과정이다.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인식되지 않는 게임은 소비되지 않는다. 잘 만든 게임이 성공한 게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유저가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인식하는 게임이 성공한 게임이 된다는 말이다. 많은 제작자가 이런 인식 과정의 어려움을 간과하거나 단순하게 생각한다.
마케팅에서 게임은 유저에게 인식시키는 대상이지 게임의 완성도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높은 완성도를 인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유저에게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주관적인 평가 결과를 인식시키는 싸움이다. 결국 앞서 이야기한 시대를 앞서간 제품은 좋은 제품이라는 점을 소비자에게 인식시키는 것에 실패한 제품이다. 좋은 제품이라는 인식에 성공하지 못한 제품은 결국 실패한 제품이다.

흑묘백묘론이라는 말을 알 것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쥐잡는 고양이가 필요한 사람에게 검은 고양이가 더 예쁘고, 흰 고양이가 더 빠르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고양이가 더 쥐를 잘 잡을 것이라고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게임 제작사가 게임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유저에게 전달하는 방법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시대를 앞서간 제품처럼 잘 만들었지만 성공하지 못한 게임을 우리는 보통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말한다. ‘저주받은 걸작’은 결국 실패작이다.

 

[경향게임스=김상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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