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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반룡의 게임애가] 게임 평론가 양성이 필요하다

  • 정리=김상현 편집국장 aaa@khplus.kr
  • 입력 2020.10.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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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다양한 문화적 창작물이 연결되어 있는 종합 창작물이다. 문학적 의미를 가지는 스토리가 있고, 미술적 의미를 가지는 그래픽 아트가 있고, 영상 예술적 의미를 가지는 화면과 연출이 있으며, 음악적 의미를 가지는 BGM이 있다.

다양한 창작물이 연결돼 있는 종합 창작물인 게임 분야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비평과 평론이 없다. 새로운 소설이 나오면 많은 평론이 나오고, 그 평론은 우리가 책을 선택하는 하나의 참고 자료가 된다. 미술도 평론을 하고, 영화도 평론을 한다. 문학 평론가, 미술 평론가, 음악 평론가, 영화 평론가는 있는데, 게임 평론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산업적 규모로 보면 문학, 미술, 음악, 영화를 합쳐도 게임산업 규모에 미치지 못한다. 출판 산업이 규모가 크다고 하지만, 순수 문학 부분으로 한정하면 게임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분명 게임의 스토리, 그래픽, 영상, 음악은 평론의 대상이 된다. 또한 종합 창작물로 게임은 충분히 비평의 대상으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 평론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평론이 가지는 의의는 창작물의 다층적 의미를 해석하고, 그 의미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관심을 받지 못한 좋은 게임이 유저에게 알려지게 되고, 게임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된다. 평론은 대중이 동의하는 평가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잘 보지 않는 것을 이야기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시각이 제시된다.

물론 게임은 다른 문화 영역과 달리 월등히 높은 수준의 제작비와 인력을 소비하는 산업이고, 하나의 작품을 평가하기 위하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소설책은 하루에 한권을 읽을 수 있어도, 게임은 하루에 평론을 쓸 만큼 플레이하기가 어렵다. 그 만큼 비평하기가 어려운 분야다. 많은 제작비가 투자될수록 실험적인 도전을 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유저가 좋은 평론을 읽었다고 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실험적인 도전을 이해해주고, 유저에게 실험적인 콘텐츠의 소비를 학습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서 평론보다 좋은 방법은 드물다.

최근 인디게임의 활성화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게임 산업의 양극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다양성에 대한 시도는 콘텐츠의 질적 향상을 유도하고, 산업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다. 게임의 사회적인 기능이 주목받고 있는 지금이 게임 평론을 활성화시키고, 새로운 도전을 활성화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앞선 세대의 도전과 노력이 현재의 영화 평론과 만화 평론의 위치를 만들었다. 이제 게임 산업의 선배들이 게임 평론가 양성에 나서야 할 때이다.

 

[경향게임스=김상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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