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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인터페이스

  • 김동욱 편집국장 kim4g@kyunghyang.com
  • 입력 2007.08.1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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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에 사는 40대 가정주부 스즈키준코. 그녀는 언제나 손바닥만한 녀석(?)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잠 자리에서 일어나면, 작은 펜을 들고 녀석과 두뇌 대결을 펼친다. 식사 준비를 위해 요리 레시피를 검색할 때도 녀석이 필요하다. 조금 한가해지면, 유창한 실력을 자랑하는 이 녀석에게 영어를 배운다. 때로는 강아지를 데려와 함께 놀기도 한다. 저녁이 되면 가계부 정리까지 척척 도와준다.

얼마 전부터는 안면의 근육을 풀어주는 트레이닝은 물론, 여성이 갖춰야 할 매너까지도 그 녀석에게 배우고 있다.

이것은 최첨단 가정부 로봇이 등장하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손바닥만한 휴대형 게임기 닌텐도DS가 일반인들의 생활의 일부가 되고 있는 꽤 평범한 사례이다.

사실 닌텐도는 꽤 오래 전부터 게임과 일상생활의 접목에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20년 전 패미콤 시대에도 영어 학습 게임이나 주식 트레이드 게임을 발매했지만, 실패를 거듭해왔다.

그렇다면, 오늘날 닌텐도DS 시대에는 어떻게 일반인들의 생활 속에 게임이 안착할 수 있었던 걸까? 하드웨어 보급대수의 규모나 일반인들의 인식 전환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필자의 사견은 조금 다르다. 왠지 엉뚱하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닌텐도DS의 ‘터치펜’에 그 성공요소가 숨겨져 있는 것 같다. 

수십년간 이어져 내려왔던 게임기의 조작 인터페이스는 ‘버튼’이 중심이었다. 그래서 게이머라면 A버튼과 B버튼, 십자키 등 각각의 버튼 조작에 누구나 매우 손쉽게 적응해왔다. 그러나 게임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버튼’은 왠지 부담스럽다. 반면, 종이에 글을 쓰는 감각의 터치펜 인터페이스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결코 낯설지 않다. 

닌텐도DS의 일본 내 보급대수를 1천만대 이상으로 본다고 해도, 우리나라 온라인게임 인구는 적게 잡아도 그 배수를 충분히 넘는다. 물론 간편한 휴대게임기와 PC라는 플랫폼을 단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렇다고 닌텐도DS같은 한국형 휴대게임기를 지금부터 만들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 해답은 의외로 휴대가 가능한 모바일에서 나올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닌텐도DS만큼의 강력한 파워는 아니지만, 게임이 일반인들의 생활 속에 들어와 새로운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기반은 우리도 충분히 갖고 있다. 비록 외산 게임이기는 하지만, 스타크래프트는 청소년과 성인층을 중심으로 전국민적인 레저 문화가 됐다. 이는 더욱 진보되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종과 프로게임단, 상시 게임리그가 운영되는 e스포츠 문화를 만들어냈다.   

게임에서 파생된 e스포츠가 생활 속의 레저문화가 됐으니, 첫 단추는 잘 끼운 셈이다. 그러나 게임이 젊은층만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우리 생활 속에 깊숙히 뿌리내릴 수는 없다.  

게임과 일반인, 그리고 생활을 연결해줄 ‘터치펜’같은 괴물 인터페이스의 출현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게임을 일반인의 생활 속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게임인구의 확대이다.

게임인구 확대를 위해서는 새로운 계층인 노년층을 사로잡아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수십년간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아왔던 그들에게 게임을 강요할 수도 없다. 그러나 기존의 키보드와 마우스로는 노년층에게 어필하기 힘들다. 예를 들면 과거 오락실에서 자주 즐겼던 둥그렇고 커다란 버튼을 손바닥으로 마구 내리치는 ‘비시바시 챔프’의 형태라면 어떨까? 인터페이스도 매우 신선했지만, 게임 자체도 매우 단순했다. 커다란 버튼을 누가 빨리 두드리느냐에 따라 샤프심을 빨리 뽑아내는 것이나 위에서 떨어지는 햄버거 고기와 야채를 순차적으로 겹치는 간단한 방식이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게임이지만, 그 콘텐츠와 인터페이스는 비시바시 챔프를 개발한 기발한 회사, 코나미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 같다.

어쨌든 게임을 단순한 오락으로만 치부해서는 안된다. 이제는 게임 개발로 축적된 다양한 기술과 노하우들이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해야할 때이다.

특히, 게임관련 정부 단체와 업계 리딩 컴퍼니들의 마인드가 중요하다. 게임의 역기능을 자꾸만 감추기보다는 게임의 올바른 사회적 역할을 연구하고 도전해 생활 속의 게임문화를 만들어 가야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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