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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립식 완구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yunghyang.com
  • 입력 2008.03.1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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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 오바마. 그가 총을 들고 부시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을 차례로 쏘아 떨어뜨린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전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될 만한 엄청난 사건이다.
말도 안되는 황당한 이야기지만,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GDC(Game Developers Conference) 강연 중 어느 세션에서 공개된 미니게임의 내용이다. 이것은 게임에 관련된 기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게임 저작툴의 기능을 보여준 것이다. 이 툴을 이용하면 누구나 인베이더나 두더쥐 같은 게임을 플래쉬 형태로 쉽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 세션의 강의를 맡은 사람은 EA의 심즈 스튜디오 개발 총책임자인 ‘로드 펌블’씨.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오바마가 부시를 살해하는 자극적인 게임을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게 아니다. 게임 개발의 ‘민주화’라는 새로운 업계의 트렌드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그는 이 최신 트렌드를 ‘민주화’라고 언급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독재자의 치하에서 독립해 민주화됐다는 그런 거창한 의미는 아니다. 게임 유저들에게 개발의 주도권을 주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로드 펌블 씨는 전세계적인 놀이문화 ‘가위바위보’나 아랍권 국가들의 대표적인 놀이 ‘만카라’를 예로 들며, “놀이(게임)라고 하는 것은 예로부터 사람들이 자기가 놀고 싶은 방향으로 그 방식을 바꿔가며 진화해 왔습니다. 현 시대는 전문 개발자들만이 게임을 만드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 결국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과거처럼 놀이를 만들어 가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바둑이나 체스가 오랜 세월을 거쳐, 사용자들에 의해 여러 차례 놀이 방식이 바뀌면서 다듬어져 더욱 재미있는 놀이가 됐다는 논리이다.


특히 이번 GDC에서는 유저 제네레이티드 콘텐츠, 개발환경의 오픈소스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게임 만들기, 유저의 크리에이티비티 자극이나 이미지네이션의 이용 등 다양한 관련 신조어들이 강연 속에서 터져 나왔다. 대부분 왠지 어렵게 들리지만, 게임 개발에 유저들을 참여시킨다는 큰 틀은 일맥상통하고 있다.


게임업계 공룡 기업들도 이 트렌드에 합류하려는 눈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Xbox라이브의 커뮤니티 게임 기능을 통해 게임 개발과 유통의 문호를 아마추어 개발자들에게도 넓게 개방해 더 많은 인재들을 업계로 끌어들이고 있다. 닌텐도와 소니도 이와 비슷한 서비스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반인들이 게임 제작을 손쉽게 할 수 있도록 가이드해주는 전문 사이트나 그와 관련된 툴을 데이터베이스화해 둔 곳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어, 최근의 트렌드 확산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면, 이와 같은 트렌드를 이해하기가 더욱 쉽다. 대부분의 남자아이라면 10살 전후까지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그러나 기성 장난감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고, 조립식 완구에 빠져든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더 비근한 예로 홈페이지를 직접 만드는 저작도구가 한때 유행했던 것이나 블로그와 UCC의 등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수년 전 등장했던 RPG쯔꾸르나 FPS크리에이터 같은 패키지형 게임 저작 소프트웨어는 게이머들의 제작 욕구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임산업도 바야흐로 유저 참여형 개발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미 우리 업계에서도 유저에게 게임의 일부를 맡겨두는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수년 내에 유저가 창조할 수 있는 게임 속 콘텐츠가 준비되지 않은 게임들은 철저하게 소외 당하게 되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미 조립식 완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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