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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없는 동네북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yunghyang.com
  • 입력 2008.05.19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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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일본 이바라키현 전철역에서 끔찍한 ‘묻지마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흉기를 휘둘러 1명을 살해하고 7명에게 중상을 입힌 20대 청년은 범행 동기를 “실업자인 자신을 가족들이 따돌림한 데에 대한 불만”이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현지 매체들은 범인의 명백한 자백을 뒤로 한 채, ‘이 청년이 평소 격투기 게임을 자주 즐겼다’는 이유로 ‘모방 범죄’를 일으킨 것이라는 억측을 빼놓지 않고 사족으로 달아놨다.


우리나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05년 전방 초소에서 일어난 김동민 일병 총기 난사 사건 때도 그가 평소 FPS게임을 즐겼다는 이유로 일부 매체들이 게임을 ‘원흉’으로 몰아세웠다.


정말로 게임이 인간을 폭력적으로 만드는 것인가? 이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영국의 영상물등급심사기구(British Board of Film Classification(BBFC) : 우리나라의 게임물등급위원회에 해당)가 지난해 발표한 조사 보고서에서 이와 관련된 꽤 근접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게임에 있어서 폭력이라는 것은 플레이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액션의 하나이다. 어떤 게임에서든지 장해물을 제거해야만 진행이 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면, FPS의 총격전에서도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액션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행위이다.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겠다는 의지보다는 자신이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생존 의식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BBFC의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 생활에서도 인간은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방어하거나 자신의 생존을 위해 폭력이라는 행위를 사용하는 것이지, 어떠한 외부적 행위가 없는 상황에서 먼저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곧 FPS장르 같은 다소 과격한 액션 성향을 가진 게임을 플레이 했다고 해서, 현실 생활에서 폭력적인 성향으로 변한다는 것은 아무런 근거 없는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BBFC 조사의 대상이 된 7세부터 40세까지의 남녀 응답자들의 답변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응답자들은 “게임 내에서의 폭력과 현실을 혼동하는 것은 나이 어린 유아가 아니라면, 그 이상의 연령층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조사 대상자들은 미디어를 통해서 게임과 폭력성이 결부된 채로, 빈번하게 언급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조사 대상자 중 20대의 젊은층들은 ‘성인이 즐겨도 좋다고 인정된 게임이라고 해도 그 폭력적 표현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일부 게임에서 추구하는 악(惡)이 선(善)을 지배한다는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응답자는 “TV드라마나 영화의 폭력적인 표현은 현실과 매우 비슷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답한 반면, 게임에서의 폭력 연출에 대해서는 “그다지 현실과 결부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현실의 폭력성을 부추기는 것은 게임보다 오히려 TV나 영화 쪽이라는 말이다.


‘게임이 인간을 폭력적으로 변하게 한다’든지, ‘게임에 빠지면 폭력에 대해 무감각해진다’는 아무런 근거 없는 주장은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다.  
그와 같은 주장은 언제나 색안경을 끼고 게임을 바라보는 보수세력들의 궤변이라고 밖에는 판단할 수 없을 것 같다.


설령 게임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아주 흉폭해진다고 해서 게임을 즐기지 못하게 한다면, 오히려 그 스트레스로 인해 과격해질 지도 모른다. 게임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려는 고민에 빠질 여유가 있다면, 순기능을 부각시켜 교육 등 여러가지 면으로 활용해 보는 편이 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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