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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의 고지식함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yunghyang.com
  • 입력 2008.06.3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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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국시대 노(魯)나라 때 ‘미생(尾生)’이라는 아주 정직한 사람이 살았다. 다른 사람들과 약속을 하면,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병에 걸릴 정도의 완벽주의자였다.
어느 날, 미생은 마을의 다리 밑에서 여자친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미생은 약속 시간보다 훨씬 일찍, 다리 밑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러나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도 여자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개울물이 불어 미생의 몸은 점점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코 밑까지 물이 차 올랐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물이 머리 위까지 넘치자 미생은 교각에 매달렸다. 그러나 피신하지는 않았다. 결국 미생은 다리 밑에서 익사하고 말았다.


무의미한 명목에 구애된 나머지, 피해를 아랑곳하지 않는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비유한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가 된 이야기다.


미생의 지나친 고지식함은 언제나 색안경을 쓰고 FPS게임을 바라보는 이들과 어딘지 닮아 보인다.


총을 이용해 상대방을 쓰러뜨리면서 경쟁하는 전형적인 FPS의 구조를 무시한 채, 겉으로 보여지는 그 행위만을 폭력적인 것으로 몰아세우는 고지식함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미생의 고지식함에 빠진 이들은 FPS를 매도하는데 여념 없어 보인다. FPS게임 앞에서 우리 아이들의 눈을 가리는 것만이 능사일까. 비근한 예로 우리나라 성교육의 실태 또한 이와 유사해 보인다. 감추고 가리면 가릴수록, 아이들의 호기심은 증폭되기 마련이다. 게임 플레이의 연령 제한을 둔다고 해도, 조숙한 녀석(?)들은 이미 부모의 주민번호를 알아내, 게임 내에서 버젓이 예비역 행세를 하고 있다.


FPS게임은 상대방을 살상하는 폭력적인 것이라서 e스포츠 종목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e스포츠를 부흥시키고, 지금까지도 인기를 지속하고 있는 ‘스타크래프트’는 상대편 종족을 죽이지 않고 기절만 시키고 있었단 말인가. 게이머들이라면 누구에게라도 귀에 익은 메딕의 목소리는 즐거움의 비명이었던 것인가. 


몇주 전에도 이 코너를 통해 언급했던 것처럼, 영국의 등급심사기구는 게임에 있어서 폭력이라는 요소는 플레이를 하기 위해 반드시 존재하는 액션이라고 밝히고 있다. FPS게임의 총격전에서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액션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행위라고 분석했다. 결국 겉보기에 과격해 보이는 FPS게임을 플레이 했다고 해서, 현실에서도 폭력 성향을 보인다는 건 근거 없는 추측으로 밖에는 해석될 수 없는 것이다. 


요즘 세계 게임시장을 리드하는 트렌드는 누가 뭐래도 FPS 장르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온라인 FPS게임에서 대한민국은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일련의 해외 진출 현황을 살펴봐도, FPS는 해외 퍼블리셔들이 가장 군침 흘리는 장르가 되고 있다. e스포츠 분야에서도 FPS장르는 탁월한 경쟁력이 있다는 것도 이미 입증됐다. 플레이어나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가장 직관적으로 승패가 전달함은 물론, 언제나 손 떨리는 긴장감이 동반되는 관전의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게임은 더 이상 우리만의 텃밭이 아니다. 북미나 유럽의 세계적인 기업들로부터 동남아시아 국가들까지 개발에 도전하는 무한경쟁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 아직은 해외시장에서 건재한 MMORPG와 함께, 새로운 우리만의 무기를 준비해야 할 때다. FPS게임은 차세대 한류 게임의 주역이 될 가능성이 높은 똘똘한 장르임에 틀림없다. 


성격이 좀 와일드 하다고 해서 모처럼 입학한 똘똘한 신입생을 퇴학시키는 것은, 물이 불어나는 것을 알면서도 다리 밑을 지키고 있던 미생의 고지식함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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