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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량 노동제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yunghyang.com
  • 입력 2008.09.10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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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데드 오어 얼라이브' 시리즈로 유명한 일본 '테크모'에 근무하는 한 직원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의 주장은 회사가 설정한 '재량노동제(裁量勞動制)'라는 규정 때문에, 잔업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밤새도록 일했으니, 그 만큼의 댓가를 회사가 지불해줘야 한다는 것.


재량 노동제라는 것은 용어 자체로는 꽤 어려워 보이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한국 게임회사들이 채택하고 있는 연봉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회사와 직원간의 정해진 봉급 이외에 별도의 수당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임 개발은 그 업무적인 특성 상 일반 회사원처럼,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형태로는 업무 진행이 거의 불가능한 직종이다. 재량노동제는 몇시에 출근을 하든, 몇시에 퇴근을 하든 회사는 관여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에게 맡겨진 개발 업무를 스케줄에 맞게 처리해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일찍 퇴근해도 봉급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밤새도록 일한다고 해도 잔업수당은 받을 수 없다. 


이 방식이 일본 게임업계에 채택된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개발자들의 인건비 관리가 용이하다는 점이다. 예를들면, 그래픽 담당자는 게임개발의 중반부에는 눈코뜰새 없이 바쁘지만, 개발 막바지에 가서는 그다지 할 일이 없어지는 게 보통이다. 만약 일반적인 방법이라면, 그래픽 담당자가 바쁠 때에는 야근이나 철야 수당을 일일히 계산해서 지급해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그러나 재량노동제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인건비를 컨트롤하기 매우 쉽다.


또 하나의 이유는 최근 들어 현저히 늘어나고 있는 게임 개발비 문제다. 사실 개발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인건비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려면, 우수한 재능을 가진 인재들이 필요하고, 가능하면 많은 인력을 오랜기간 개발에 투입해야 한다. 만일 그들에게 잔업수당까지 지급해야 한다면, 그 결과는 불보듯 뻔하다.


회사 입장에서 재량노동제는 여러모로 유리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발만 잘못 디디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맹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재량노동제이다.


콘텐츠 산업에 있어서, 인건비를 보수적으로 책정하는 것은,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장기적으론 큰 리스크를 갖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재능이 넘치는 젊은 개발자들에게 업무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요즘 신세대들은 계산이 보통 빠른 게 아니다. 일한 만큼 보상받지 못하는 회사에 굳이 들어가려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결국 게임 업계로 좋은 인재들이 모여들지 않는다는 것은 산업의 쇠퇴를 의미한다. 시장이 축소되고 넉넉한 인건비를 보장해줄 수 없는 구조가 된다면, 게임업계는 악순환에 빠져 버리고 말 것이다.


아직도 열악한 환경의 회사가 즐비한 우리 게임업계에 비추어 생각해본다면, 일본의 재량노동제나 개발자들의 소송 등은 배부른 투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업계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일한만큼 보상받는 문화가 하루 빨리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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