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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소년과 먹튀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an.kr
  • 입력 2009.05.18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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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통 책을 읽지 않았던 소년은 언제나 가족의 걱정거리였다. 동경에서 태어났지만 간사이로 이사하고 나서 친구가 많지 않았던 터라, 집안에 틀어박혀 TV 보는 게 유일한 취미였다. 소년은 스파게티를 먹는 방법, 미국 가정의 냉장고가 꽤 크다는 것 등 일상의 일들을 TV를 통해 알아갔다. 특히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사운드트랙을 듣게 됐고 영화의 시나리오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그 작가의 책들을 일부러 사서 읽었다. 특히 5학년 때 본 TV드라마 ‘형사 콜롬보’에 흠뻑 빠져들었고 그 때문에 추리소설을 읽게 됐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직접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년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어쨌든 영화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 말하자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지역이나 시대에 무엇보다 끌렸다.


언젠가부터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고교 시절엔 8mm 비디오카메라로 40분짜리 영화를 찍어 학교 문화제 때 상영하기도 했다. 창작 의욕은 끊임없이 샘솟았다. 그러나 변변치 않은 가정용 캠코더로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걸 전부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혼자서 밤새도록 소설을 써댔다. 지금처럼 변변한 컴퓨터나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만족하지 못하면 처음부터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대학에 들어간 그는 양면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학교에선 학생회 대표로 한없이 유쾌한 인기남이었지만, 혼자 있을 때는 창작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고독한 청년이었다.


고뇌하던 그에게 일생의 전기를 마련해 준 건, 그때까지 별 관심이 없었던 게임이었다. 친구와 우연히 가게 된 오락실에서 ‘제비우스’와 운명적 만남을 갖는다. 그 이전까지 즐겨봤던 시커먼 화면의 게임과는 차원이 다른 타이틀이었다. 보기엔 단순한 슈팅게임이었지만, 그 나름의 세계관이 있다는 점에 매우 끌렸다. 패미콤용으로 ‘제비우스’가 발매되자, 그는 집에서 하루종일 버튼을 눌러댔다.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생각한 ‘미야모토 시게루’의 ‘슈퍼마리오브라더스’, ‘포트피아 살인사건’ 등 패미콤의 명작들을 접하면서, 게임에 인생을 걸기로 작정한다.
영화감독의 꿈을 게임으로 본격 펼쳐보기로 한 것이다. 결국 그는 전세계에서 크게 히트한 명작 게임 시리즈를 만들었고, 자신의 꿈을 더 크게 이뤄내고 있다.


영화를 좋아해서 감독을 꿈꿨던 그가 바로, 메탈기어의 아버지 ‘코지마 히데오’다. 메탈기어는 이제 자신만의 소지품이 아니고 전세계 팬들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어서 사회적인 책임감마저 느낀다는 코지마 감독. 어느 강연에서 “죽는 순간까지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말에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전세계 게임업계에서 코지마 감독 이상의 인지도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울티마의 아버지 ‘리처드 개리엇’. 어느덧 황금의 노예가 된 듯한 그의 최근 행태를 보면서 로드브리티쉬로 추앙받던 과거의 순수한 느낌은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게이머들은 타락한 로드브리티쉬를 더 이상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게임을 언제나 기다리는 팬들이 있어 죽는 순간까지 게임을 만들겠다는 코지마 감독. 자신을 기다리는 우주인들을 만나기 위해 소송을 해서라도 돈을 좇겠다는 리처드 개리엇. 상반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씁쓸한 생각이 드는 건 필자만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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