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서툰어택' 되지 말기를…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an.kr
  • 입력 2009.05.25 09:11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베이징에 사는 17세 소년이 학교에서 친구에게 심하게 구타당했다. 분을 이기지 못했던 소년은 친구에게 가솔린을 끼얹고 불을 붙였다. 친구는 전신에 중화상을 입고 말았다. 


소년은 경찰에서 평소 즐겨하던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이하 WOW)에 등장하는 파이어메이지로 자신이 변신한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파이어메이지는 주로 화염 공격을 하는 캐릭터다.
소년은 법원으로부터 징역 8년을 선고받았고,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76만위안(우리돈 1억4천만원)을 손해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재작년 12월 중국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이다.


그보다 몇개월 전 미국에서는 10대 소녀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유명 격투게임 ‘모탈컴뱃’캐릭터의 무술을 흉내내다가 7살짜리 여동생을 때려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미국 사회는 발칵 뒤집혔고, 게임 개발 회사는 거액의 배상을 해야하는 소송에까지 휘말렸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게임 캐릭터를 흉내내 친구에게 가솔린을 붓고 불을 붙인 사건의 모든 책임을 소년과 그 부모의 탓으로 돌렸다.


미국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면, 소년의 책임을 묻기 앞서 폭력적인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한 회사와 이를 허가한 주정부에 배상을 청구하는 게 보통이다. 자신이 불을 쏘는 캐릭터가 됐든, 화려한 무술을 쓰는 유단자 캐릭터가 됐든 그들을 그런 환각 속에 빠뜨린 원초적 잘못은 회사와 사회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소년의 잘못이 전혀 없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성인에 비해선 분별력이 떨어지는 청소년들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이야기다.


얼마전 본지는 학부모정보감시단과 공동으로 전국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게임물 이용등급이 올바로 지켜지고 있는지에 관한 실태조사에 나섰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15세, 18세 이용등급을 받은 CJ인터넷의 ‘서든어택’을 상당수의 초등학생들이 플레이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서든어택에 가입하고 아무렇지 않은듯 플레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쉽게 믿겨지지 않는 사실이기에 초등학교 5학년인 필자의 아들에게 확인해봤다. “우리반 애들중에 반 이상은 서든어택 하고 있어요. 이 게임 못하는 애들은 컴퓨터 실력 떨어지는 걸로 취급되요”라는 녀석의 답변에 더 당황스러웠다. 어떤 경로를 통해 부모들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묻고 싶지도 않았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해서 어른들이 하는 게임에 접속하는 것 자체가 아무런 거리낌 없는 행위인 셈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에 있다. 아이들은 이미 범죄를 저지르고 있고, 잠재적으로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소년이 WOW의 파이어메이지가 됐고, 미국의 소녀가 모탈컴뱃의 무술 캐릭터로 변신했다. 우리 아이들도 언제 서든어택의 특등사수 캐릭터가 될 지 모르는 일이다. 우리는 유혈이 낭자한 서든어택의 전장에서 초등학생들을 람보나 코만도같은 전투병기로 키우고 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오래전부터 게임이 산업으로 정착한 미국 사회처럼 이런 문제를 사회적으로 대응해야할 필요가 있다. 서든어택 문제가 더 곪아터지기 전에 정부와 관련 회사들이 적극 나서 대책을 마련해야한다. 끔찍한 사건으로 게임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르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저작권자 © 경향게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