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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간지와 요코이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an.kr
  • 입력 2009.06.08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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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이 대한민국을 슬프게 하고 있다. 떠나야할 사람은 그냥 그렇게 있는데, 가지 말아야할 사람이 허무하게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벌써 10년이 조금 더 지난 1997년, 게임계에도 그런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다. 이를 노 전대통령의 죽음과 빗대는 것에 불만을 품을 독자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그의 죽음 또한 전세계 게임인들에겐 큰 충격과 슬픔이었다고 기억된다.


그는 다름 아닌, ‘요코이 군페이’씨다. 요즘 게이머라면 그의 존재를 알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닌텐도의 오늘을 있게 한 숨은 공신은 현 사장을 맡고 있는 ‘이와타사토루’나 마리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가 아닌 바로 그 사람이라 말하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계적인 히트 상품 닌텐도DS의 할아버지격인 ‘게임&워치’나 ‘게임보이’ 등의 휴대 게임기 아이디어는 전부 요코이의 머리로부터 나왔다. 


1965년 닌텐도에 입사한 요코이는 회사 설비기기의 보수를 담당했던,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부서의 사원이었다. 그러나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시간 때우기용으로 뚝딱뚝딱 만든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걸 즐겼다. 그러던 어느날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당시 야마우치 사장에게 제대로 들키게 된다. 사장실로 호출당한 요코이는 호된 처벌을 각오했다. 그러나 사장은 빙그레 웃으며 “당신이 갖고 놀던 장난감은 매우 좋은 아이디어같다”며 그에게 완구 개발을 맡긴다. 그래서 세상에 나온 게 ‘울트라 핸드’다.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은 그는 울트라머신, 광선총, 러브테스터 등 잇달아 히트 장난감을 만들어낸다.
1980년대 들어 닌텐도는 전자게임 분야로 눈을 돌린다. 그는 시대에 변화에 발맞춰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인터페이스를 고안해낸다. 당시만해도, 게임의 캐릭터나 유닛 등을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막대모양의 스틱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요코이는 이 조종 방식을 획기적으로 단순화시키고 편의성을 강조한 ‘십자키’를 처음으로 창안해냈다. 닌텐도의 모든 게임기에는 십자키가 채용됐고, 다른 회사들도 닌텐도의 눈치를 살피며 이 획기적인 방식을 모방했다. 십자키는 단순한 아이디어처럼 보이지만, 전세계 게임산업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와 발전을 앞당긴 ‘신(神)의 아이디어’로 평가받을 정도다.


진화하는 닌텐도의 중심에서 드러나지 않게 활약해온 요코이는 확고한 개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첨단 기술이 반드시 우수한 게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저 누구나 알고 있을 만한 보통의 기술을 전혀 다른 목적으로 활용한다면,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진다는 논리다. “말라버린 기술(=충분히 검증된 기술)의 수평사고(=발상의 전환)”를 역설한 그는 보통 사람처럼 보였지만 비범함을 가진 인물이었다. 


1997년 10월 어느날, 밤 늦게 자신의 승용차로 퇴근하던 요코이는 앞선 차량의 교통사고를 목격한다. 평소 남을 돕는 일에 거리낌 없었던 요코이는 2차 사고를 막으려 차량 정리 작업을 하던 중, 그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과속으로 달려오던 트럭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의 나이 56세였다. 30년간의 닌텐도 생활을 마치고, 풍운의 꿈을 꾸고 게임기획 연구회사인 ‘고토’를 설립한 지 1년이 조금 지난 때였다.


억지스럽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노 전대통령의 서거와 요코이 씨의 죽음은 기대를 품어왔던 사람들에게 충격과 아쉬움이라는 공통분모를 남기고 있다. 그래서 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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