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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an.kr
  • 입력 2009.11.0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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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흔한 필기도구 ‘연필’은 언제 생겨난 것일까. 문헌에 따르면 약 2천년전 그리스 로마에서 원판 모양의 납덩어리를 짐승의 가죽에 표기하기 시작한 것이 그 기원이라 한다.

이후 지금과 같은 형태의 현대적 연필을 만든 것은 18세기 프랑스의 화가 ‘니콜라스 자크 콩테’라는 인물이다.


그림을 그리다가 자꾸 부서지는 숯덩이를 대체할 재료를 찾던 콩테는 한 논문에서 흑연을 필기구로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아뜨리에는 연필 연구소가 돼 버렸고, 연필심을 만드는 일에 혼신을 다했다. 그러나 흑연을 오랫동안 햇볕에 건조시켜도 글씨를 쓰면 자꾸 부서져 버렸다. 콩테는 매일같이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매번 수포로 돌아갔고 점점 의욕을 잃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을 먹다가 무심코 음식 접시를 만지던 그는 만세를 불렀다. 접시처럼 흑연을 불에 구으면 강도가 세진다는 걸 불현듯 깨달은 것이다. 콩테의 생각대로 가마에 넣고 구운 흑연은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지금 우리들이 잘 부러지지 않는 연필을 쓸 수 있게 된 것은 콩테가 그때 접시를 만지작 거렸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의외의 발상에서 새로운 상품은 탄생하는 법이다.  


2008년 겨울 어느날 미국에 사는 대학생 ‘저스틴 라 클레어’는 무심결에 의자에 걸쳐둔 Xbox360 콘트롤러의 진동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게이머라면 물론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경험이다. 실제로 진동하는 콘트롤러를 목덜미나 허리에 대 본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클레어는 이를 실천적인 아이디어로 이끌어냈다. 프로그램에 능숙했던 그는 단 4시간동안의 작업 끝에 Xbox360 콘트롤러를 이용한 안마 응용 프로그램 ‘럼블 마사지’를 개발해냈다. 그래픽적으로 안마 놀이를 하는 게임소프트웨어가 아닌, 게이머의 조작대로 콘트롤러가 진동하는 방식의 응용 프로그램인 것이다. 럼블 마사지는 올해 1월, 1달러의 가격으로 Xbox Live의 ‘인디즈게임프로그램’으로 등록됐다. 그는 지금까지 7천만원이 넘는 판매 수익을 얻고 있으며 ‘럼블 마사지’는 아직도 계속 팔려나가고 있다. 럼블 마사지가 처음 공개되자 인터넷 상에서는 그 진위 논란이 일기도 했다. Xbox360 콘트롤러를 이용해서 안마를 한다는 발상에 대해 ‘장난끼 있는 개발자의 조크’일 것이라는 게 대다수의 반응이었다.


클레어의 럼블 마사지가 공개된 후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에서 잇달아 유사한 타입의 소프트웨어가 5종이나 등장했다. 클레어의 실천적 아이디어는 단순히 아마추어 레벨이 아닌 각국의 이름 있는 개발사들까지 참여하게 만든 것이다. 특히 그 중 하나는 이 분야 전문가 집단의 자문까지 구한 프로페셔널한 작품이기도 하다. 클레어의 아이디어를 응용한 사운드 기반의 안마 응용 프로그램 ‘스펙트라 뮤지컬 마사지’라는 작품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Xbox360이라는 플랫폼의 탄생 의도를 무시한 채 콘트롤러만을 분리해 게임과는 관련 없는 헬스용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기발한 응용 프로그램임은 확실하지만, 진지한 게임 개발을 목표로 하는 크리에이터들에게 방해를 주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틀에 박힌 생각으로는 더 이상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세상의 이치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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