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의 게임 역사 상 가장 인기 있었던 게임은 뭘까. 전문 미디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연말연시가 되면 항상 고민하게 되는 물음이다. 한국적 시각으로는 워크래프트나 디아블로 시리즈 등 블리자드의 작품을 꼽기 쉬운 게 사실이다. 또는 소셜게임 시대의 최고의 히트작 팜빌 정도를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최근 북미의 유력 게임미디어 코타쿠는 이 물음에 명쾌한 해답을 내고 있다. 그들이 꼽은 역사 상 최고 인기 게임은 바로 솔리테어(Solitaire). 쉽게 설명하면 모든 컴퓨터에 기본으로 내장돼 있는 ‘카드놀이’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코타쿠의 분석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수십년간 윈도우즈가 깔려있는 컴퓨터에 기본적으로 카드놀이가 들어있었고, 게임에 그다지 관심 없는 사람들까지도 심심풀이로 즐겨왔기 때문이다.
윈도우즈를 설치하면 자동으로 깔리는 게임은 ‘카드놀이’ 이외에도 꽤 많았다. 핀볼이나 지뢰찾기, 테트리스 등까지 매우 다양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조차도 이미 수년 전에 “세계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윈도우즈 어플리케이션은 솔리테어(카드놀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을 정도다. 변변치 않은 카드놀이가 윈도우즈 메인 프로그램인 아웃룩이나 워드, 액셀, 익스플로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셈이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카드놀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웨스체리’라는 직원이 처음 개발했다고 한다. 그는 개발 초기부터 이 게임이 직장 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 것이라 예측했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당초에는 ‘보스 키’라는 강제 종료 기능을 도입하려 했다. 이 기능을 사용하면 직장 상사에 눈에 띄지 않고 본래의 업무로 바로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는 결국 이 사악한(?) 기능을 넣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만일 보스 키 기능이 있었다면 카드놀이는 지금보다도 더 큰 인기를 누렸을 지도 모른다.
직장 내에서 시간 때우기 게임의 대명사가 된 카드놀이에는 누구도 인지하지 못한 숨겨진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카드놀이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컴퓨터 OS 조작에 쉽게 익숙해지도록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1990년 당시만 해도, 윈도우즈는 매우 신선한 개념인데다가 마우스로의 조작도 아주 생소한 것이었다. 연필이나 볼펜을 쓰면서 자란 세대들에게 마우스 조작은 매우 큰 위화감을 줬을 게 뻔하다. 이런 환경에서 카드놀이는 낯선 OS 사용에 거부감을 느끼던 사람들을 마우스와 친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마우스로 아무 생각 없이, 눌러대며 즐겼던 카드놀이가 역사 상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었다니, 등잔 밑이 어둡다는 생각에 황당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놀랍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