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위효과
단위효과
  • 편집국장 김동욱
  • 승인 2011.04.2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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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찾는 식당의 주인은 음식값을 계산할 때마다, 손님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셋이서 백반을 먹었는데, 식대가 15만원이라니, 고급 호텔에서 먹어도 나오기 힘든 기가 막힌 가격이다. 주인은 나온 금액에 0을 하나 더 붙여서 말하는 걸 즐기는 것 같다. 그는 “1만 5천원이지만, 0 하나를 더 붙여서 15만원이라고 하면, 잠시나마 돈을 더 많이 버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 금액을 부풀려 순간적인 자기최면으로 만족감을 얻는 식당 주인만의 고유 스킬(?)이다.


게임으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몇년동안 상당한 개발 자금을 들인 신작 MMORPG 2종이 같은 시기에 시장에 등장했다. 한쪽은 28일간 무료 플레이를 내세웠고, 또 다른 게임은 초반 4주일간 공짜로 즐길 수 있다고 광고를 냈다.


이런 광고를 본 게이머들은 두 게임 중, 어느 쪽에 더 매력을 느끼게 될까. 사실 28일과 4주일은 완전히 똑같은 시간이지만, 일(日)수로 표기한 쪽이 숫자가 커 보이기 때문에, 게이머들의 입장에서는 28일 동안 무료로 플레이할 수 있는 MMORPG에 끌리게 된다.


미국의 심리학자이면서 게이머인 ‘제이미 머디건’ 박사는 이것을 ‘단위효과’라 칭하고, 이 현상과 관련된 논문을 얼마 전 발표했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인간은 때때로 단위쪽 보다는 수치만을 중시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면, 7년과 9년이라는 제품 보증기간은 84개월과 108개월로 월 단위로 풀어서 말하면, 개월수로 표시한 쪽이 훨씬 길어 보이는 느낌을 갖는다고 한다. 식품의 경우, 킬로칼로리(kilocalorie)를 물리학에서 쓰는 단위인 킬로줄(kilojoul)로 표현하면, 숫자가 커지기 때문에, 같은 돈을 주고도 더 많은 양을 사는 기분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 단위효과란 것이다.


롤플레잉 게임에서 한번 스킬을 사용하고, 다음번 사용 때까지 기다려야하는 시간을 ‘쿨타임’이라고 한다. 캐릭터별 쿨타임 시간을 재고, 공격 타임을 계산할 정도로 치밀한 게이머들도 요즘은 꽤 많다. 이 경우엔 반대의 단위효과가 효율적이다.


쿨타임 시간이 90초나 걸리는 스킬이 있다면, 이를 있는 그대로 90초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1.5분이라고 표현하는 쪽이 체감적으로 짧게 느껴지는 것이다. 카운트다운 시간도 5분이라고 하면, 짧게 느껴지지만, 이를 300초라 풀어 쓰면 지루함을 느껴 포기하기도 쉽다.


RPG 캐릭터의 갑옷 능력치가 10,000이라고 했을 때, 능력이 10% 상승한다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1,000이 늘어난다고 하는 것이 게이머들을 훨씬 기쁘게 할 수 있다. 무기점에서 팔고 있는 도끼와 검의 데미지가 60포인트와 120포인트라고 하는 것보다는 600포인트와 1,200포인트라고 설정하면, 구입하는 게이머에게 왠지 더 큰 만족감을 주게 된다.


우리는 종종 해외 여행을 가서, 현지 화폐의 가치를 착각한 채 돈에 씌여 있는 금액만을 보고, 무심코 낭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도 ‘단위효과’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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