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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개발자의 삶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1.07.1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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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 IT 매거진 ‘와이어드’는 최근호에서 게임 개발자들의 장시간 근무를 ‘죽음의 행진’이라 표현하며 열악한 세태를 꼬집고 있어 눈길을 끈다. 게임 개발자의 세계에서 출시 일정을 맞추기 위해 가혹하기 그지없는 마라톤 근무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당 85시간 근무, 이는 곧 하루 12시간씩 일주일 내내 일하는 셈이지만, 개발자에겐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인간의 노동시간은 주당 40시간이었음을 감안하면, 그 2배가 넘는 셈이다. 그들은 이런 가혹한 노동을 ‘죽음의 행진’이라 부르며 비아냥거린다. 게임 개발사의 직원들은 대부분 정해진 연봉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시간 외 근무를 해도 잔업 수당 같은 게 따로 없다. 미국의 개발자 커뮤니티 ‘디벨로프’가 게임업계에서 일하는 전문직 35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초과 근무 수당을 받지 않는다는 답변이 98%에 달했다고 한다.


게임 개발자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또 그런 현실속에서 게임회사에 취업한 개발자들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상사가 장시간 근무를 원하는 듯 보이면,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를 등한시해가면서까지 일에 몰두한다.


피곤에 찌든 초췌한 모습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간이 침대에 엎어져 자고 있는 장면이 게임 개발회사의 대표적인 풍경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이 없다. 그나마 개발자들을 위해, 사내 헬스클럽이나 카페같은 복지시설을 둔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이 마저도 개발자들로 하여금, 회사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게 하려는 경영진의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니 씁쓸하기만 하다.


오래 일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1909년의 조사에서 이미 장시간 근무보다는 주당 40시간의 노동이 실제 생산력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20년간 게임 개발에 투신해온 이반로빈슨 씨는 국제게임개발자협회 사이트에 극단적인 비유를 담은 내용을 기고하고 있다.


“21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고 있으면,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8에 달해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태와 같다”고 지적하고 있다. 만약 0.08에 달하는 혈중 알코올 농도의 상태까지 술을 마시고 회사에서 일을 한다면, 그는 바로 해고당할 것”이라며, 개발자들의 과중한 업무 환경을 비꼬고 있다. 게임업계는 다른 산업과 비교해 젊은 나이에 은퇴하는 위대한 개발자들이 최근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산업은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의 요구나 능력에 따라 구축되는 것이 정상이지만, 풍부한 연륜을 가진 게임 디자이너들의 조기 은퇴는 시장 발전을 답보상태에 이르게 하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심시리즈의 ‘윌라이트’나 팩맨의 아버지 ‘이와타니토오루’씨는 겨우 55세의 나이로 현직에서 은퇴하고 있다. 이는 전설적인 영화감독들에 비하면 뭔가 잘못된 것 같다.


현재까지도 각본을 쓰고 촬영을 지휘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올해 64세이다. 에일리언, 블레이드런너, 글래디에이터 등을 만든 ‘리들리스콧’ 감독은 73세이며, 영화배우 겸 감독으로 아직도 활약중인 ‘클린트이스트우드’는 팔순을 넘긴 나이지만, 아직도 은퇴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게임 업계의 근무 환경을 조금 더 지속 가능한 쪽으로 발전시키지 않는 한, 위대한 개발자들의 작품을 우리는 더 이상 플레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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