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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와 쿤켈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1.10.1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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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업계의 혁명을 넘어 세상을 바꾼 사나이 ‘스티브잡스’가 세상을 떠났다. 그를 추모하는 온오프라인 애도의 물결 속에 “탱큐 스티브, 굿바이 잡스”란 문장은 어느 누구의 말에서도 후렴구처럼 따라붙고 있다.


스티브잡스와는 비견될 수는 없지만, 북미의 게임미디어계에도 얼마전 비보가 있었다. 게임저널리즘의 아버지로 존경받아오던 ‘빌 쿤켈(Bill Kunkel)’ 기자가 지난 9월 4일 미네소타주 자택에서 심장발작으로 사망한 것이다. 그는 스티브잡스보다는 조금 많은 향년 61세였다.


쿤켈 기자가 게임미디어에 본격적으로 몸을 담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1년 겨울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아케이드 게임에 관한 뉴스를 신문에 꾸준히 기고했던 그는 미국 최초의 게임잡지 ‘일렉트로닉게임스’의 창간 주역 중 한사람이 됐다. 창간호 특집은 당시 오락실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모았던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공략 기사였다고 한다.

당시의 게임 뉴스는 일간 신문에 조그만 쪽 기사로 실리기도 힘들었던만큼, ‘일렉트로닉게임스’의 창간은 게이머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잡지는 최전성기에 25만부까지 판매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같은 해 영국에서 ‘컴퓨터&비디오게임즈’라는 잡지가 ‘일렉트로닉게임스’ 보다 2주일 먼저 창간되는 바람에 ‘세계 최초의 게임잡지’라는 칭호를 받지는 못했지만, 당시의 흥행과 영향력은 막강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일본의 최장수 게임잡지 패미콤통신(일명 패미통)도 1986년 6월에 창간됐으니, 5년이나 먼저 게임을 점지한 셈이다.


일렉트로닉게임스는 1983년에 있었던 아타리 쇼크의 영향과 대형 미디어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게 되면서 1985년 결국 폐간됐다. 창간 멤버로 청춘을 불살랐던 쿤켈 기자는 그의 재능을 살려 게임 관련 저널리스트로써 이후에도 계속 명성을 날렸다. 그의 예리한 리뷰나 명확한 기사는 성장기에 있었던 미국 게임 산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네바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게임 산업에 관한 강의를 해왔고, 그 경험을 기반으로 어떤 게임에 관한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변해주는 칼럼으로 유명했다. 게이머라면 그의 닉네임 ‘게임닥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2005년에 출간한 그의 자서전에는 게임을 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저널리스트로써의 입장과 고뇌가 담겨있다. 일렉트로닉게임스를 창간하기 위해 여러 게임 회사들에게 스폰서 의뢰를 부탁하러 갔던 뒷이야기도 매우 흥미롭다. 그 시절 플랫폼 홀더로써 독점적인 지위에 있었던 아타리가 “게임 미디어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며 문전박대 했던 기억을 비롯해, 당시 소프트웨어 판매회사로 막 창업한 액티비전이 열정을 가지고 광고를 제공해 준 일화 등이 그의 자서전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놀랍게도 쿤켈 기자는 환갑 나이에도 게임 기사를 쓰고 있었다. 그가 죽기 전까지 하고 있었던 일은 ‘포스탈’ 시리즈로 유명한 ‘러닝 위드 시저스’ 사 공식사이트의 기사를 작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게임산업은 1971년 아케이드로 등장한 ‘컴퓨터 스페이스’를 그 시작으로 치면 40년에 불과한 매우 젊은 산업이다. 컴퓨터 스페이스를 개발하고 아타리를 창업한 ‘놀란 부쉬넬’ 씨는 올해 68세로 현재도 업계에서 뛰고 있다. 아직도 세계 IT업계와 게임산업을 더 진보시켜야할 두 사람, 스티브잡스와 빌쿤켈의 죽음은 그래서 더 안타까운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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