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두 청년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1.10.27 10:26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74년 봄의 일이다. 청년은 게임회사 아타리의 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 회사에 면접을 보러 왔던 것이다. 그를 맞은 사람은 당시 선풍적 인기를 모으던 게임 ‘퐁(Pong)’을 개발한 알콘 씨였다.


청년의 행색은 도저히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이라 생각하기 어려웠다. 양말도 신지 않은데다가 부스스한 머리만 봐도 며칠 동안 씻지 않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청년은 알콘 씨에게 대학을 중퇴하고, 잠시동안 휴렛팩커드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행색이나 태도만 봐서는 그다지 뽑고 싶지 않은 타입이었지만, 알콘 씨는 청년의 특이함에 매력을 느꼈던 모양이다.


아타리를 창업한 놀란 부쉬넬 사장은 사내에서 청년과 자주 마주쳤다. 그는 “녀석은 히피 문화에 물들어 있었지만, 테크놀로지에 눈을 반짝 거리며 달려드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머리도 아주 비상해 보였지만, 사회 초년병의 풋내기 같은 인상은 지울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당시만해도 한창 잘 나가던 아타리는 야근이 많았다. 청년은 늦게까지 일하는 데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아케이드 게임기의 기판을 교체해야 하는 잡일까지도 충실하게 해냈다.


그러나 입사한 지 6개월여가 지난 어느날, 청년은 눈을 번득이며 상사에게 “나의 정신수행을 위해 인도에 가겠다”고 말하고, 사표를 내던졌다. 그의 상사는 청년의 건방진 태도가 못마땅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몇 개월 후 귀국한 청년은 다시 아타리에 취업했다. 그런 걸 보면, 회사의 직원들에게는 꽤 호감을 얻었던 모양이다.


아타리가 독주하던 아케이드 게임 시장은 라이벌 회사들의 등장으로 점점 기세가 약해지고 있었다. 당시 아타리의 신제품은 ‘브레이크 아웃’ 이었지만, 기판에 내장해야 할 부품이 너무 많고, 가격도 비싸서 사장은 부품의 수량을 50개 미만으로 줄여보라고 청년에게 지시했다. 그는 4일밤을 꼬박 세워 당초 목표보다 낮은 46개까지 줄여버렸다.


그러나 실제로는 청년 혼자 힘으로 그 미션을 해결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휴렛팩커드 시절 친하게 지내던 스티브 워즈니악이라는 친구를 매일 밤 회사로 불러, 부품을 줄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청년은 엔지니어로써 기본적 지식은 갖고 있었지만, 워즈니악만큼의 풍부한 실무 경험이 없었다. 휴렛팩커드 시절에도 워즈니악이 작업한 결과물을 테스트하는 작업 정도만 할 수 있었다.


말주변이 좋고 승부근성이 강했던 청년과 전자 부품을 이리저리 조립하고 만드는 것 자체가 즐거웠던 오타쿠 기질의 워즈니악 두사람은 4일간의 사투 끝에 ‘브레이크 아웃’을 완성시킨 것이다. 청년이 성공 보수로 받은 700달러는 워즈니악과 반반씩 나눠 가졌다. 이 에피소드에도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청년은 실제로 회사에서 추가로 5,000달러의 보너스를 받았지만 친구 워즈니악에게는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 청년이 바로 ‘스티브잡스’다. 다소 의외의 이야기지만, 세계 IT계의 혁명적 리더 스티브잡스의 캐리어는 게임업계에서 비롯된 셈이다. 우리 업계에서 제 2의 스티브잡스를 기대할 수 있는 이유라 하기에는 무리일까.

저작권자 © 경향게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