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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규의 차이나 망락유희(網絡遊戱)] 중국온라인 게임역사 광풍처럼 급변해가는 대륙의 온라인게임 <1>

  • 장인규 중국 특파원 dage@kyunghyang.comek
  • 입력 2006.11.1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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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제 2의 해방” 바로 인터넷 게임을 일컫는 말이다. 인터넷 게임(온라인 게임을 의미함)이 중국에 상륙한지 어언 5년. 결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중국 대륙 전체가 인터넷 게임에 열광했고, 흥분했으며 마침내 일어섰다. 수많은 불법복제 속에서 게임 산업은 시장성을 되찾았다. 인터넷 게임 하나로 성공한 대기업들이 줄을 이었으며, 인터넷 게임 강국의 면모까지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수입 중심에서 수출 산업의 역군으로 발전했다. 중국을 논할 때 이제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젊은이들의 신문화. 그 중심에 바로 ‘인터넷 게임’이 있다.

비록 시작은 미약했으나
‘지구촌 탄생, 인터넷이 해답이다’. 지난 1990년대 초반. 인터넷이 지구를 하나의 촌락으로 만들 수 있음을 강조한 문구다. 그로부터 강산이 한번 바뀌기도 전에, 이는 현실로 가시화됐다. 이 당시부터 중국의 일부 계층에서는 인터넷의 파급효과를 깨닫고, 빠르게 움직인 사람들이 있다. 1992년 6월. 본격적으로 인터넷 접속에 관한 토론회가 개최되기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 중국의 과학원망(CASNET)과 청화대학망(TUNET), 북경대학망(PUNET)에 초기 기본망이 완성됐다. 1994년 6월 28일 북경화공대학이 중국 내 최초로 인터넷을 개통하고, 시범 운영에 돌입했다. 이듬해인 1995년 중국과학원의 NCFC망이 완성됐다.

이때 ‘신동방고사2’ 등의 텍스트 기반 인터넷 게임이 전파되기 시작했으나,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인터넷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단지 전신부(중국의 인터넷을 관리하는 정부기관)에 종사하거나 과학연구원 등 인터넷에 접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진 몇몇 사람들 사이에서 인터넷 게임이 서서히 퍼져 나갔다. 2000년 이후 급격하게 발전했던 인터넷 산업은 거품 경제가 무너지자, 동반 추락했다. 한때 영화를 누렸던 인터넷 회사들의 구조조정이 단행됐고, 맥없이 무너지는 회사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중국 인터넷 관련 회사들은 탈출구를 찾아냈다. 해결책으로 부각된 것은 다름 아닌 인터넷 게임. 이로 인해 닷컴(.COM)으로 대표되던 인터넷 사업이 다시 활기를 띄게 됐고, ‘민족게임육성’이라는 구호 아래 수입에만 의존해 오던 인터넷 게임 산업도 급변하기 시작했다.

중국 최초의 인터넷 게임
현재와 같은 그래픽 중심의 인터넷 게임은 지난 1998년 ‘렌종세계’라는 이름으로 첫 선을 보였다. 빠오위에치아오와 지엔징, 왕지엔 등 3명이 개발부터 서비스까지 단행했던 게임 포털은 협소한 인터넷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게임의 성공 가능성을 일깨우는데 성공했다. 주요 게임은 인터넷 마작과 카드 게임, 장기 등 보드 게임 위주로 운영됐다.

~2000年 | 미답(未踏)의 영역
인터넷 게임에 대한 개념이 확립된 시기라 볼 수 있다. 지난 1999년 중국은 해외에서 크게 일고 있는 인터넷 게임 소식을 접하며, 자체 인터넷 게임 개발에 대한 욕망을 불태웠다. 전국에 산재해 있던 컴퓨터방들은 ‘왕빠’라는 이름으로 일괄 변경하고, PC방 형태로 급선회했다. 이후 채팅과 e메일, 친구 사귀기 등 기본적인 수단으로 발전하며, 네티즌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주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IT나 디지털로 대변되는 새로운 사회조류에서 닷컴은 그야말로 일확천금을 낳는 부의 상징으로 인식됐다. 이때를 틈타 간단한 배경의 그래픽 기반 온라인 게임 ‘소오강호’가 발표됐다. ‘소오강호’는 2000년 2월, 10만 유저를 확보하고, 5월 1일을 기해 ‘소오강호 회원카드’를 정식으로 판매하며 인터넷 게임 유료화 시대를 열었다.

이와 동시에 ‘소오강호’보다 한발 앞서 1998년 서비스를 단행했던 ‘렌종세계’도 가입인원 70만, 동시접속자수 9,000명을 맞아 유료화 서비스로 전환한다. 인터넷 게임의 산업화 모델에 대한 기본 틀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인기에 편승, 인터넷 게임을 다루는 전문 매체도 창간됐다. 2000년 7월 창간된 ‘대중인터넷’은 중국 인터넷 게임을 다룬 첫 번째 전문 매체였다. 2000년 6월 화채회사가 정식으로 발표한 대만게임 ‘만왕지왕’은 중국대륙에 서비스된 최초의 MMORPG이다. ‘만왕지왕’이 중국에 서비스 되면서부터 콘솔게임 시장은 위기에 직면했다.

2000년 말, 오래 전부터 형성됐던 콘솔 게임 시장과 비교되던 인터넷 게임은 2001년 콘솔 게임과 비슷한 규모로까지 성장하게 된다. 변혁의 시기,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100% 성공을 자신하며, 맹목적으로 게임을 수입한 까닭에 게임서비스의 관리부 재가 발생했고 이로 인한 혼란이 야기됐다. 중국 정부 역시 중국 인터넷 게임에 대한 구체적인 산업계획이나 관리, 감독을 제대로 수행치 못했다. 따라서 2000년 11월 우지과통에서 발표한 ‘흑암지광’을 필두로, 일부 인터넷 게임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터넷 게임들은 비운을 맞이해야만 했다.

20001年 | 개척자의 길
‘만왕지왕’은 2001년을 맞아 엄청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뒤따라 선보인 북경화이의 ‘석기시대’와 아련게임이 서비스한 ‘천년’이 각각 2001년 1월과 2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다. 이 중 ‘석기시대’는 쉽고 간단한 규칙과 귀여운 캐릭터를 등에 업고 폭발적인 인기를 거두지만, 유료화 전환과정에서 유저들과 마찰을 빚게 된다. 결과는 유저들의 대승리. 이는 인터넷 게임의 고객인 유저들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2001년 6월 인터넷 게임이 중국 대륙을 수놓기 시작한지 1년여. 서비스된 인터넷 게임은 총 10종을 넘어섰으며, 이즈음 과열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2001년 7월 제3파게임밸리의 ‘용족’과 아련게임의 두 번째 작품인 ‘홍월’, 유롱온라인의 ‘김용군협전온라인’과 화채가 서비스를 실시한 ‘삼국세기’를 필두로, 11월 넷이지의 ‘대화서유온라인’, 샨다의 ‘전기’ 등 수많은 인터넷 게임들이 등장, 인터겟 게임 전시회를 방불케 했다. 하지만 2000년 하반기와 2001년 상반기의 상황은 달랐다. 이때를 기점으로 콘솔 게임회사들이 인터넷 게임으로 눈을 돌렸다. 기존의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던 회사들도 사이트 운영 경험을 기초로 인터넷 게임 시장에 뛰어들며, 양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현재 중국 인터넷 게임 시장을 주도하는 게임 서비스회사들 대부분이 이 시기에 발을 내딛었다.

인터넷 게임이 중국에서 이처럼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도, 이 시기의 게임 테스트 및 준비 작업들이 기초가 됐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와 동시에 인터넷 게임 관련 매체인 ‘대중인터넷’은 인터넷 전문 매체의 확산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인터넷 게임의 범람에 대한 게임회사들의 자정 노력 또한 병행됐다. 성숙한 인터넷 게임의 발전을 위한 기업들 간의 합종연횡이 빈번하게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2001년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부터였다.

무명의 작은 회사가 인지도조차 없는 한국 인터넷 게임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당시 모든 중국 게임 회사들에게 거절당했던 특정 인터넷 게임 하나에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넣으며 서비스를 단행했던 중국의 한 게임회사. 그곳이 바로 중국 대륙에 전무후무한 인터넷 게임 돌풍을 일으켰던 샨다였으며, 해당 게임이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의 ‘전기(미르의 전설)’였다. 이 때를 기점으로 중국 대륙에는 게임 한류가 불어 닥치게 된다.

2002年 | 비약적인 발전
중국 인터넷 게임 산업은 안정적인 발전모델을 선보였다. 일종의 통일성과 협조성을 바탕으로 점진적인 산업 고리를 형성했다. 이는 게임산업에 있어, 인터넷 게임 배급망과 선불카드 판매망, PC방과 게임매체 등 인터넷 게임 관련 산업들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토대가 된다. 더불어 게임회사와 인터넷 공급회사인 전신회사들 간의 협력 관계도 더욱 긴밀한 합작관계 형태를 취하게 된다. 2002년 선보인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선동소프트의 ‘결전’, 넷이지의 ‘정령’, 유용인터넷의 ‘삼국연의온라인’, 첩3봉회사의 ‘성자무적’, 샨다의 ‘풍광탱크2’, 상해 의성의 ‘유망전설’, 탁월디지털의 ‘신서유기대당천하’, 시나의 ‘천당’, 고하과기의 ‘천사’, 감마니아의 ‘혼란모험’, 더 나인의 ‘기적’ 콘솔 게임 산업을 이끌었던 오미전자의 ‘공작왕’에 이르기까지.

대작 중심의 다작들이 중국 대륙의 인터넷 게임 천하통일을 목표로 치열한 시장 쟁탈전에 돌입하게 된다. 이 중 2002년 7월 샨다가 서비스한 ‘전기’는 동시접속자수 50만명을 돌파하며, 세계 최대의 동시접속자수를 확보한 하게 된다. 10월에는 천부핫라인게임센터가 중국 최초로 인터넷 게임 TV프로그램 ‘전기의 꿈은 이루어진다’를 편성, 방송했다. 2002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에는 ‘중국인터넷게임산업조사보고및게임산업회의’가 청두에서 최초로 개최됐다.

이 당시 중국의 게임개발자들은 텍스트 기반의 머드 게임처럼 복잡한 인터넷 게임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 쉽고 간결한, 그리고 화려한 그래픽으로 무장시킨 한국의 인터넷 게임이 크게 선전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인터넷 게임에 신흥 유저들이 몰리는 현상이 유독 심했다. IDC의 통계에 따르면 2001년 중국 인터넷 게임 시장 규모는 3.1억 인민폐 시장이었다. 하지만 1년 뒤인 2002년 시장 규모는 약 3배에 달하는 9.1억 인민폐 시장으로 급성장했다. 유료 인터넷 게임 유저 역시 2001년 168.1만명 규모에서 2002년 말 401.3만명 규모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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