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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기 놀이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2.05.1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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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있어서, 문구점은 언제나 신세계와 같이 난생 처음 보는 것들로 가득한 곳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투명한 플라스틱 판매기 속에 작은 캡슐이 들어 있고, 그 안에는 조그만 로봇들이 아이들을 향해 빙그레 웃고 있었다. 동전을 넣고 아랫부분의 손잡이를 돌리면, 캡슐이 하나씩 밖으로 튀어나왔다. 마음에들지 않지만, 한번 더 동전을 넣으면 내가 좋아하는 로봇이 왠지 나올 것 같았다. 아이들은 나올 듯 말듯한 막연한 기대감에 가랑비에 옷 젖는 줄도 모르고, 연신 동전을 집어넣었다.


대부분 그렇듯이, 이 동전 먹는 기계도 일본에서 흘러 들어왔다. 동전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가샤가샤 내지는 가차가차(찰카닥 찰카닥의 일본 의성어)’소리를 내며 캡슐이 ‘폰~(뿅의 일본 의성어)’하고 나온다고 해서 ‘가차폰’이 됐다고 한다. 이 기발한 기계를 처음 기획하고 상품화한 곳은 일본의 유명한 완구 회사 반다이였다. 1980년대에 처음 등장했다고 하니, 벌써 30년이나 된 노땅 제품이다.


반다이는 기계를 조작하는 소리에서 착안해 ‘가샤폰’이라는 제품명을 붙이고 이를 상표등록 해버렸다. 당시, 가샤폰이라는 단어는 캡슐형 완구를 통칭하는 대명사가 됐다. 1990년대 초, 반다이의 가샤폰을 모방한 제품을 쏟아낸 후발 업체들은 가샤폰이라는 명칭을 쓸 수 없게 되자 ‘가차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내세워 판매를 했다. 결국 수적인 싸움에서 밀린 가샤폰은 가차폰에게 대표 명사의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가차’는 온라인게임이나 소셜게임 내에서 도움이 되는 아이템을 뽑을 수 있는 유료 미니게임을 가리키는 말로 변모되고 있다. 일본산 게임에 처음 도입됐지만, 한국뿐 아니라 중국 게임에도 가차는 필수적인 시스템으로 자리잡고 있다. 가차의 나라 일본에서는 이 시스템을 더욱 발전시켜, 게임 자체가 가차가 중심이 되는 것들도 속속 생겨났고, 희귀한 아이템만을 뽑을 수 있는 ‘콤프 가차’라는 것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콤프 가차는 2,500억엔(약 3조 5,000억 원)이 넘는 일본 소셜게임 시장의 주요한 수익원이 되는 듯했지만, 사행심을 부추긴다는 지적과 어린이들이 게임에 빠져 고액이 청구됐다는 등의 비판을 받아왔다. 사용자에게 너무 과도하게 돈을 지불하게 만드는 이 시스템 때문에 불만의 소리가 높아지자 일본 소비자청이 최근 제동을 걸었다. 소비자청은 업계 단체를 통해서, 각 게임 회사들에 이런 방식의 과금을 중지하도록 요청하고, 응하지 않을 경우 경품표시법 위반으로 조치 명령을 내릴 방침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며칠 전, NHN재팬, 그리, 사이버 에이전트, 디이엔에이, 드왕고, 믹시 등 소셜게임플랫폼연락협의회에 소속된 6개 회사는 즉각 콤프 가차의 폐지 방침을 공동성명으로 발표했다. 이 회사들은 기존 서비스 중인 게임 내의 콤프 가차는 5월 31일까지 전면 폐지하고, 신규 타이틀에 있어서는 콤프 가차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최초의 상품 기획 의도가 어찌됐든 간에 순수한 아이들의 뽑기 놀이가 어른들의 지나친 상술에 휘감겨 없어질 위기라고 하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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