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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펭귄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2.07.0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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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희끗해지기 전,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에는 누구든 이도저도 아닌 미적지근한걸 좋아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필자의 과거를 되돌아봐도 그 시절엔 뭔가 더 화끈한 것, 타오르는 것에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다. 40대 중반으로 향하고 있는 지금은 눈에 뻔히 보이는 것에도 의심부터 갖게 되니 창피한 생각마저 든다.


진정한 용기와 열정은 의구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불확실한 회색 지대에 몸을 던지는 ‘최초의 펭귄’이 보여주는 행동이다. 영어권에는 최초의 펭귄(First Penguin)이라는 관용어가 있다고 한다. TV다큐멘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펭귄들이 뒤뚱거리며 떼를 지어 우르르 빙하 끝으로 모여들지만, 정작 바다로 뛰어들기 직전에는 너나할 것 없이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머뭇거린다.


왜냐하면 바닷속에는 펭귄들이 좋아하는 먹잇감도 있지만, 동시에 자신들을 위협하는 물개나 바다표범 같은 천적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머뭇거리고 있는 펭귄의 무리 중에, 두렵기만해 보이는 시커먼 바다 속으로 맨처음 몸을 던지는 용감한 녀석이 있다. 그때까지 서로 눈치만 보며 머뭇거리던 펭귄들이 일제히 녀석의 뒤를 따라 물 속으로 뛰어든다.


매우 불확실해 보이지만 앞뒤 재지 않고 일단 먼저 저지르고 보는 행동이다. 좋아하는 먹이를 배불리 먹을 수도 있지만, 순간의 판단 미스로 물개의 배만 채워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장면이다. 이와 유사한 주장이 비평가 말콤 그래드웰의 ‘블링크 이론’이다. 인간은 언제나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닌, 단 2초간의 순간적인 감(感)으로 무엇인가를 결정한다는 이론이다.


만화에서 등장인물이 뭔가 생각이 떠올랐을 때, 머리 위에 불켜진 전구가 나타나는 것도 블링크 이론의 2초의 감과 일맥상통한다. 이에 대해 이어령 교수는 자신의 저서 ‘젊음의 탄생’에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누군가를 처음만나게 되는 경우, 대개 그래드웰의 ‘블링크 이론’처럼 2초 동안에 좋고 싫음이 결판난다. 그래서 한국말에는 ‘첫눈에 반한다’는 정형어가 생겨난 것이다.

줄리어스 시저가 루비콘강을 건널 때 말한 것처럼, 우리는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순간순간 주사위를 던지면서 삶의 갈림길을 선택해 간다. 그러나 2초 동안의 블링크 속에서 얻어지는 결과물은 아무렇게나 기분에 내맡기는 도박의 주사위와는 다르다. 무수한 의문과 주저 그리고 지적 분석이 자신도 모르게 번득이는 블링크의 진동 속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세상에 감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섰을때, 자신이 진정으로 생각했던 순간 판단을 믿는 사람들 말이다. 확신이 선 그 순간 재빨리 선택하는 것이, 오랫동안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것보다 낫다는 경험을 인생 선배들은 이야기한다. 고민하면 할수록 자기 확신도 점점 엷어질 뿐 아니라, 우유부단함을 드러내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지난 십여년간 우리 업계에도 자신의 감을 믿고, 차디찬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성공의 열매를 쟁취한 사례가 많다. 그들이 결국 대한민국 게임 시장의 ‘최초의 펭귄’인 셈이다. 최근의 우리 업계는 뒷줄에 서서 머뭇거리며 눈치만 살피는 그저그런 펭귄들만이 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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