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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시금치의 오류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2.09.1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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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우리는 이런 말을 자주 듣고 자랐다. 몸이 튼튼해지려면 만화에 나오는 뽀빠이처럼 시금치를 많이 먹어야 한다고 말이다. 고기 반찬만을 탐닉하는 아이들에게 야채도 먹게 하려는 어른들의 얄팍한 꼬임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귀에 못이 박히게 듣다 보니 틀린 말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더욱이 TV나 신문뿐 아니라 선생님들도 시금치는 철분이 많아 아이들 건강에 좋다고 하시니 이를 반론할 여지 조차 없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시금치에는 다른 식품보다 철분이 적으면 적었지 결코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발터크래머와 괴츠 트랭클러는 그들이 저술한 ‘상식의 오류사전’에서 뽀빠이가 철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캔 속에 든 시금치보다 차라리 그 깡통을 먹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고 빈정댔다.


그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뽀빠이의 시금치 신화는 순전히 타이핑을 잘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아주 오래 전 여러가지 식품의 성분을 분석할 때, 실수로 소수점 자리가 한자리 위로 잘못 찍히는 바람에 시금치의 철분 함유량이 10배나 불어나게 된 것이라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 사소한 실수 탓에 미국의 시금치 생산지로 유명한 텍사스 크리스털 시티에는 ‘용감한 뱃사람 뽀빠이 덕분에 미국의 시금치 소비량이 33%나 증가했다’는 기념비가 세워졌고,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서는 수백만 명의 어린이들에게 시금치를 주로 먹게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시금치의 실제 철분 함유량이 100g 당 2.2mg으로 계란 2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착오가 이미 1930년대에 밝혀져 수정됐지만 뽀빠이의 시금치 신화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금치를 많이 먹으면 근육이 붙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신장에 결석이 생긴다는 의학적 진실 앞에서 뽀빠이의 시금치 신화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인식의 오류가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게임이라는 놀이 문화에도 존재한다. 게임은 아이들의 정신을 황폐화시키고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둥 이루 말할 수 없는 사회악으로 치부해버리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게임이 나쁘다는 학술적인 근거를 가진 것도 아니다. 시금치의 성분 분석이 잘못된 것처럼, 누군가 또는 어떤 세력의 카더라 통신이 그저 막연한 진실처럼 퍼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수 년 동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사회적 범죄가 발생하면, 어느 틈엔가 사건의 근본적 원인에는‘게임 탓’이라는 공식이 세워져 가는 듯하다.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 일변도 정책과 몰상식한 일부 미디어의 마녀사냥식 보도 행태는 게임에 대해 이해가 낮은 기성세대들에게 뽀빠이 시금치의 오류처럼 ‘게임 = 사회악’이란 공식을 은연중에 세뇌시키고 있다.


굳이 미국이나 일본 등 게임 선진국의 사례를 들 필요도 없다. 게임 산업에 있어서도 우리가 짝퉁 왕국이라 무시해왔던 중국은 최근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수출 장려 정책으로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을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또 사회적 분위기 역시 첨단산업으로 인정받으며, 게임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청소년들의 장래희망일 정도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관점에 있어서 크나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한때, 효자 수출산업으로 인정받으며 전세계에 게임코리아의 위상을 드높이던 그날이 다시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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