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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잣대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2.09.2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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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시대에 걸맞는 게임 유통 방식으로 이미 시장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는 밸브의 스팀 서비스도 벌써 10년째를 맞고 있다. 스팀에 기대고 있는 게임은 현재 수천개 타이틀에 이른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듯 스팀 서비스는 최근 성인 게임 논란으로 업계 화두가 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개발중인 성인게임을 둘러싼 말썽으로 폭력성보다는 외설적인 소재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미국적 사고가 비난받고 있다. 스팀은 지난달부터 ‘스팀 그린라이트’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는 전세계의 게임 회사들이 등록한 타이틀 중에서 앞으로 스팀에서 서비스해줬으면 하는 것을 사용자가 직접 투표하는 방식이다.


부페 식당에서 새롭게 추가했으면 하는 메뉴를 미리 손님들에게 묻는 격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거점을 두고 있는 노 리플라이 게임즈(No Reply Games)가 최근 여기에 자신들이 개발중인 성인용 게임 ‘시듀스 미(Seduce Me)’를 등록했다. 이 게임은 가상의 미국 국적의 유명 연예인이 화려한 사교계를 배경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텍스트 기반의 타이틀이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캐릭터를 해변가 최고급 별장으로 보내, 그곳에서 여성들과의 대화 이벤트나 미니게임 등을 즐길 수 있다. 캐릭터 디자인이 8등신의 리얼한 분위기일 뿐, 흐름은 일본의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적으로 디자인된 캐릭터의 에로틱한 장면들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게임의 정보가 스팀 그린라이트에 새롭게 등록되자 사용자 커뮤니티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지금까지 보기 어려웠던 독창적인 방식이라는 의견부터 성인 게임도 고퀄리티의 타이틀이 필요하다는 긍정적 반응이 초반에는 대세를 이뤘다. 그러나 스팀에서 서비스하기에는 너무 성인 타깃이라 무리가 있다는 부정적 의견이 점점 늘어갔다.


결국 찬성과 반대 의견이 정확하게 절반이 된 가운데 결정의 공은 스팀의 서비스 회사인 밸브에게로 넘어갔다. 손님들이 원하는 메뉴라면 맵고 짜고를 떠나서 언제든지 준비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주방장 밸브 씨는 큰 고민에 빠졌다. 빈번하게 드나드는 중국계 손님들을 위해 샹차이가 들어간 중화요리를 메뉴에 넣고 싶지만, 특유의 냄새를 싫어하는 고객들이 떠나갈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밸브는 며칠 뒤 ‘시듀스 미’가 스팀의 이용 규약을 위반했다는 이유를 들어 서비스를 거부한다고 발표했다. 오는 11월 출시를 앞두고 있는‘시듀스 미’는 성인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을 뿐, 외설을 조장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밸브의 이번 조치가 과연 옳은 판단이었는지 현지 미디어들을 중심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게임인더스트리는 시듀스 미를 제작하고 있는 개발자의 불만 섞인 목소리를 보도했다. “우리들이 밸브로부터 받은 메일 중에‘이용 규약 위반’이라는 것은 업계에서 매우 흔한 일이기 때문에, 스팀 서비스가 불가능할 것이라고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것을 이미지의 수정 등을 요청한 것으로 생각해서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통도없이 배제됐다”


블로그 미디어 ‘디스트럭토이드’도 “폭력성에는 매우 관대한 미국 게임업계가 성인용에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중적 잣대”라고 비판했다. 오히려 ‘데드 오어 얼라이브 익스트림 비치발리볼’과 같이 노출이 강한 소녀 캐릭터들이 나오는 게임에는 유연한 자세를 보이다가도 성인이라는 소재만으로 꽁무니를 빼고 도망 가는 미국 게임업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요즘 우리 사회의 분위기로 보면 밸브의 이번 조치가 사실 상 정당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성인들만을 위한 게임을 무조건 감추기만 하는 것은 시장 확대와 성인들의 권리를 빼앗는다는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결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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