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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하나인 이유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2.09.2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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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눈이 두개, 귀가 두개, 손과 발도 각각 두개씩이다. 그런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입은 하나뿐이다. 탈무드에는 사람의 이런 인체 구조를 두고 “보고 듣고 행동하는 것에 비해 말하는 것은 절반만 하라”는 의미로 해석되어 있다. 결국 눈과 귀는 사람의 생각대로 조절할 수 없지만, 입(말)은 스스로의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긍정적인 말을 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말을 아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한달쯤 전의 일이다. 북미의 한 게임정보 사이트가 운영하는 디아블로3의 팬사이트에서 한 사나이를 인터뷰했다. 그는 다름아닌 디아블로의 창시자로 알려지고 있는 ‘데이빗 브레빅’이었다. 현재는 가질리온엔터테인먼트의 COO로써 ‘마블 히어로즈’ 등을 개발한 인물이다. 그는 15년전만해도 턴방식이 주류를 이뤘던 RPG 장르에 실시간 액션을 접목한 기발한 아이디어로 세기의 명작 ‘디아블로’를 창조해냈다.


그랬던 그가, 인터뷰 도중 “디아블로3는 실패한 작품”이라고 쓴소리를 내뱉은 것이다. 더욱이 블리자드노스의 오리지널 멤버들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액션RPG의 경험이 없는 개발자들에게 어떤 기대를 할 수 있겠냐며 일침을 가했다. 디아블로3의 디렉터인 ‘제이윌슨’은 원래 전략게임을 만들었던 인물이라고도 했다.


신중하게 코멘트를 했다고는 하지만 창시자로써 오랜만에 태어난 이복동생(?)에게 한 말치고는 다소 거친 느낌이다. 과거 렐릭엔터테인먼트에서‘워해머 40,000:던 오브 워’의 리드 디자이너였던 ‘제이윌슨’은 출산이 다가온 아내를 친정으로 보내버리면서까지 ‘디아블로2’에 푹 빠져
플레이를 한 에피소드로도 유명한 개발자다.


생애 가장 중요한 순간에도 디아블로와 함께 했던 제이윌슨에게 브레빅의 쓴소리는 아무리 선배의 충고라 하지만 열불이 날 법도 했다. 화가 치민 그는 디아블로3 공식 포럼에 A Message from Jay(J로부터의 메시지)라는 제목으로 투고를 했다. 거친 어투로 분노 섞인 반문을 쏟아냈다고 한다. 팬들의 댓글이 순식간에 1천개가 넘었다는 걸 보면, 내용이 꽤 리얼(?)했던 것 같다.


디아블로3팀의 일부 개발자들도 브레빅 에게 역공을 날렸다. “당신이 관여한 헬게이트:런던도 크게 실패했죠”, “걱정하지 마라. 디아블로3는 이미 1천만장이나 팔렸다”는 등의 메시지를 개발스텝의 페이스북에 써댔다. 그러나 그들의 비난 섞인 멘트들이 고스란히 캡처되어 관련 팬사이트들에 게재되자 디아블로3 팬들은 한마디로 난리가 났다.


디아블로 시리즈를 사랑하는 브레빅 지지층과 디아블로3를 좋아하는 윌슨 지지층으로 양분되어 팬사이트는 무정부 상태를 방불케 했다.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제이윌슨은 자신의 경솔한 언동에 대해 반성함과 동시에 브레빅의 팬들에게 사죄의 글을 띄웠다. 그는 디아블로3의 디렉터로써 지금까지 열정을 다해 게임 개발을 해왔음을 강조했다. 일부 팬들은 여전히 제이윌슨을 비난하고 있지만, 그의 용기 있는 행동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팬들은 디아블로3가 1천만장이나 팔린 것은 15년의 장대한 역사를 가진 시리즈가 이뤄놓은 명성 때문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토록 오랜 공백에도 수많은 팬들이 꿈쩍않고 기다려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디아블로3가 재미있기 보다는 과거 경험했던 시리즈의 흥미진진한 추억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제이윌슨의 경솔한 말 한마디는 팬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믿음을 더욱 굳게 만드는 계기를 만든 셈이다.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할 만큼 조심스럽게 해야하는 것이 말이다. 선조들의 가르침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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