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광화문연가, 족집게 게임 도사
칼럼 - 광화문연가, 족집게 게임 도사
  • 편집국장 김동욱
  • 승인 2012.11.22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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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6년,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당시 영국의 전신 사업을 독점하고 있던 웨스턴유니언 사에 특허권을 10만 달러에 팔겠다고 제안했다. 그때만 해도 벨과 그 동업자들이 전화 사업의 투자 대비 전망을 확신하지 못했던 탓일까. 계속된 투자 탓에 가산을 탕진했기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이유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웨스턴유니언의 ‘윌리엄 오튼’사장은 “전화기가 통신 수단이 되기에는 기술적으로 단점이 너무 많고, 이 기계는 결국 아이들의 장난감 밖에 되지 못하는 물건”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2년 후, 오튼 사장은 벨의 전화기 특허권을 2천5백만 달러에 사들이더라도 싸게 사는 것이라며 땅을 치고 통곡했다고 한다.


 

# 1925년, 영국의 과학자 ‘존 로지 베어드’는 3년간의 피땀 어린 연구 끝에 TV를 세상에 처음 내놨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하버드대의 저명한 ‘체스터 도즈’교수는 “저 기계는 어두운 실내에서 봐야하기 때문에, 분명히 대중적인 제품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TV는 아직도 현대인들에게 필수적인 생활 가전제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스위스제 시계는 1968년까지, 세계 시장 점유율이 65%나 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10년이 지난후 그 수치는 10%나 감소했다. 그로부터 3년 후에는 6만 5천명에 이르던 스위스의 시계 제조업자들 중 5만명이 사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스위스 시계 산업이 급격히 사양길에 접어든 것은 전자시계의 발명 때문이었다.


 

1968년 스위스의 과학자가 전자시계를 발명했지만, 시계 제조회사들은 태엽을 감는 시계가 영원히 세계 시장을 주름잡을 것이고, 전자 시계는 시장에서 곧 사라질 것이라며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반면에 전자시계의 제조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세이코 등 일본의 회사들은 스위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20%대로 끌어내리고 시계왕국으로 거듭 나게 됐다.


 

# 1975년, 스티브잡스는 당시 유행하던 조립 PC였던 ‘알테어 컴퓨터’를 완제품으로 만들어 팔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프로그래밍 천재 ‘워즈니악’과 의기투합한 그는 집의 차고에서 밤새도록 납땜을 하며 시제품을 만들었다. 잡스는 시제품을 들고 아타리와 휴렛패커드에 찾아가 대량 생산을 해보자며 열변을 토했다.


 

그러나 이 회사들은 잡스의 제안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잡상인 취급을 하며 문전박대했다. 울분을 품은 잡스는 이듬해, 완제품 PC인 애플1컴퓨터를 출시했고 주문량을 대지 못할 정도로 대성공을 거뒀다. 요즘의 게임 시장처럼 옥석을 가리기 어려운 때도 없었던 것 같다.


 

매일 쏟아지는 스마트폰 게임들 중, 제 2의 ‘애니팡’과 ‘드래곤플라이트’를 뽑아내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힘들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도박수를 던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러다간 입시철 족집게 강사같은 직업이 게임 업계에도 나와야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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