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맥스」정영희 대표 “세계 게임개발사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
「소프트맥스」정영희 대표 “세계 게임개발사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
  • 윤영진
  • 승인 2004.11.29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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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를 대표해왔던 게임개발사 소프트맥스의 얼마 전까지의 성적표는 낙제점에 가까웠다. 공공연히 한물간 퇴물이라는 말이 들려왔고 이제 끝났다는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최근에 발표했던 차기작들 역시 별다른 성과를 이루지 못했고, 주가 역시 바닥을 헤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만을 단순히 종합해본다면 이미 소프트맥스는 주류를 벗어난 듯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견해. 소프트맥스 정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아니 정반대에 가깝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되레 그녀는 소프트맥스가 발전할 기회를 얻었노라고, 그리하여 한발 더 앞선 기업이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노라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단순한 자신감 피력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게임계의 중론을 뒤로하고, 그녀의 히든카드는 멋지게 맞아 떨어졌다. PS2플랫폼으로 차기작 ‘마그나카르타:진홍의 성흔’을 개발한 것. 물론 아직 성공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미 콘솔 시장의 고향이라 불리는 일본 게임시장에서 판매량 1위를 기록했고 기대도는 물론, 현지 언론들의 호평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상업성과 작품성 두 마리를 모두 잡아버린 욕심쟁이 CEO 정영희. 이는 결코 그녀가 읊조렸던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단순한 호기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동시에, 그녀의 시대를 앞서가는 선견지명식 혜안이 빛을 발한 일례에 속한다.

“소프트맥스가 나아갈 제 2의 도약기에 있어서 이제 첫 발을 뗀 셈이죠.” 오랜만에 그녀가 웃었다. 하지만 오늘 날의 정대표가, 오늘 날의 소프트맥스가 있기까지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지난 90년대 초반. 효성인포메이션 시스템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에 한계를 느껴야만 했다. 이후, 8비트 게임기 패미컴을 국내 수입하는 갑인물산으로 직장을 옮긴 정대표. 업무상 일본 출장길에 올라 현지의 게임시장을 보고 느낀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기회다 싶었죠.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정말 열심히 일했던 기억뿐이네요.” 새로운 산업에 대한 흥분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기대가 높았지만, 그녀의 열의와는 상반되게 현실은 차가웠다. 자금압박으로 인해 회사는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결코 만만한 시장이 아니란 이야기다. 그러나 두렵기보다는, 도전에의 욕구가 더욱 높았다고 말하는 정대표.

그녀는 이 분야에 올인할 결심을 하고 승부수를 띄었다. 남아있던 사람들을 규합하고, 당시 하이텔 동호회 중심의 아마추어 개발자들인 김학규, 최연규 등을 영입한 뒤, 직접 게임개발에 나선 것. 지난 1994년 소프트맥스 최초로 발매한 슈팅게임 ‘리크니스’는 이렇게 탄생했다. 물론 처녀작이었던 만큼 별다른 성과를 얻진 못했다. 계속해서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개발했지만 역시나 기대 이하의 수준. 결코 낙담하지 않았다. 그만큼 노하우가 쌓였기 때문이다.

이후 가장 어려운 분야로 느껴졌던 롤플레잉 장르로의 도전. 확실한 기획과 밸런스, 스토리와 전투 시스템을 비롯, 오랜 개발기간의 압박까지. 가히 무에서 유를 만드는 고통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렇게 ‘창세기전’의 신화는 완성됐다. 젊은 여성 직장인의 목표를 향한 끊임없는 노력과 질주의 승리요, 쾌거였다.||“게임업계가 용됐죠(웃음). 시장 규모도 그러할뿐더러 게임에 대한 인식 역시 상당부분 변화했으니까요.” 척박하다는 말 앞에 살아남는 것 자체가 숙제였던 국내 게임개발사들. 소프트맥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 대표 롤플레잉 게임인 ‘창세기전’이라는 확실한 보증수표가 있었기에 보다 실험적인 작품이며, 신장르에 대한 개발 여력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창세기전’ 시리즈의 계보를 잇는 ‘마그나카르타’가 ‘버그나카르타’라 불리며 유저들로부터의 불신과 돈 벌이에 급급한 회사라는 악명을 낳았던 일은 정대표가 가장 힘겨워했던 사건. 당시 정대표가 느꼈던 것은 스스로 성숙해져야한다는 일념뿐이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 안되겠다 싶었죠. 유저나 개발자, 모두에게 상처를 준 사건이었지만 사실 배운 점도 적지 않아요.” 보다 완성도 높은 게임을 만들어야한다는 생각. 실제로 ‘마그나카르타: 진홍의 성흔’은 발매 시기보다 무려 1년 이상 늦게 출시했다. 또 한번의 과오를 범할 수 없다는 생각에 앞서, 그것이 개발사에게 게임 개발의 권한을 준 유저들에 대한 보답이란 스스로의 신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개발에 앞서 한가지 문제가 대두됐다. ‘마그나카르타’가 리콜사태 등 상처가 많았던 만큼 모두들 새로운 게임명으로 출시하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룬 것. 이에 대한 정대표의 답변은 ‘NO’. 정면대결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당시 ‘마그나카르타‘를 개발했던 개발진들이 만드는 차기작인 만큼 그들의 자존심을 세워줌은 물론, 위기를 극복하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개발자들에게는 자존심의 회복을, 소프트맥스에겐 ‘창세기전’을 잇는 또하나의 신화를 가져다 준 결과로 이어졌다.||"온라인게임 시장이 상당히 커졌죠. 하지만 부익부 빈익빈 쏠림 현상 역시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런 문제를 떠나 온라인게임과 관련된 서버 등과 관련된 개발자들은 많습니다.” 정대표의 말이 이어진다. “하지만 컨텐츠 파워라는 면에서 오랜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개발자는 많지 않죠.”

그렇다. 컨텐츠 파워를 키우는 것. 그것이 정대표가 소프트맥스를 통해 가시화 할 향후 계획이다. 물론 국내 시장이 아닌 해외 시장으로의 도약임은 두말하면 잔소리. 이를 위해 가장 큰 시장 규모를 자랑하는 동시에 플랫폼 홀더나 퍼블리셔, 유통과 고객에 대한 체계 등 다양한 부분에서 절대적인 준비가 필요한 콘솔 시장에 도전했다. 보다 확실한 성공을 위해 일본 반다이그룹의 자회사인 반프레스토와의 공동 개발계약을 체결했다.

사실 개발은 100% 소프트맥스에서 전담했고 그 외의 일본 퍼블리셔만을 반프레스토에서 전담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물론 문화적인 차이로 인한 어려움도 뒤따랐다. 하지만 개발에 일가견이 있던 소프트맥스와 퍼블리셔에 자신있던 반프레스토의 합작은 성공적이었다. 독불장군식 게임개발사에서 벗어나, 보다 성공적인 모델을 위한 다양한 가능성에의 매진. 이것이 글로벌 한 게임개발사의 참모습이 아닐까.||“지난 10년은 산업이라는 차원에서 무엇을 해야할까 고민해왔던 시기죠. 올해를 해외 수출의 원년으로 삼고, 향후 10년내 세계 게임개발사 10위권 안에 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게임개발회사에 있어 좋은 게임을 개발하지 못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범죄행위와 같다는 정대표의 지론은 이제 해외를 무대로 가시화될 전망이다.

뛰기도 걷기도 한 지난 10년이 아닌, 과거의 축적된 노하우와 브랜드파워를 바탕으로 이제는 비상할 때라고 강조하는 CEO 정영희. 이미 콘솔과 온라인 개발을 5:5비율로 삼고 일본을 발판으로 유럽과 북미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수출에만 연연할 생각은 없다. 정대표는 해외만을 바라보기보단 컨텐츠파워와 서비스능력, 모바일과 콘솔, 온라인에 이르는 원소스 멀티유즈의 개념에 입각한 영역 없는 브랜드파워만이 게임개발사의 진정한 힘이 됨을 아는 까닭이다.

콘솔에서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다음번, 또 다음번 차기작을 바탕으로 서비스 운영과 브랜드 파워가 만나는 시점에서 전세계 시장을 아우르는 게임을 개발하겠다는 다짐. 세계적인 컨텐츠 크리에이터로 급부상할 소프트맥스의 미래상인 동시에 이것이 소프트맥스가 한국의 스퀘어에닉스라 불리는 이유다.

사진=유영민 기자|youmin200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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