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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이야기」윤지현 대표 “한국을 보드게임 강국으로 키울 터”

  • 김수연
  • 입력 2004.04.0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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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년이 지났네요. 보드게임의 매력에 심취해 사업을 구상하고 주변 사람들을 모조리 끌어들이긴 했지만 이처럼 빨리 자리를 잡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지난해 4월 13일. 국내에서 최초로 서울대 근처 녹두거리에 보드게임카페가 들어섰다. 컴퓨터게임에 익숙지 않은 중·장년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 싶어 시작한 일이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젊은 세대들이 더 열광했다. 보드게임카페를 운영하면서 서서히 보드게임을 홍보하고 1년 정도 후에 정식으로 회사를 설립, 다양한 사업들을 펼칠 계획이었다.

그러나 보드게임 열풍은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갔고 6개월만에 번듯한 회사까지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기대 이상의 호응에 단순히 반짝 트렌드로 흘러가진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보드게임방이 대중화되면서 보드게임도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 나가고 있다. 윤 사장은 이제 국내 보드게임의 역사를 논할 때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된 것이다.||“제가 프로게이머 출신이라는 점이 사업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서울대 출신의 여성프로게이머이자 감독, 게임 기획자에 이르기까지 화려하고 특이한 그녀의 이력은 어딜 가나 이목을 끌었다. 더욱이 스물 아홉의 나이에 프로게이머로 데뷔, 남성게이머들을 위협할 정도의 눈부신 실력을 발휘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비타민 마녀’라 불리던 그녀는 한창 전성기를 누릴 무렵 한게임 프로게임단 감독 겸 게임 기획자로 탈바꿈했다. 그러던 중 회사 동료가 외국에서 들여 온 보드게임 <세틀러 오브 카탄>을 접하면서 보드게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고 급기야 일을 벌렸다.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와 학교 후배와 친구들을 투자자로 끌어들인 것이다.

10만원에서 1천만원에 이르기까지 돈을 끌어 모았다. 결국 개인대출 2천만원을 합해 자본금 5천만원을 만들었다. 드디어 3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녹두거리에 25평 남짓한 지하 보드게임카페 ‘페이퍼’를 탄생시킨 것. 돈을 아끼기 위해 가족들까지 총 동원해 페인트칠을 비롯한 실내 인테리어도 손수 했다.||"종이판 놓고 하는 게임방이 과연 성공할 수 있겠느냐며 걱정하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새로운 게임문화를 이끌어나가는 창조적인 일에 대한 도전의식으로 끝까지 밀어 붙였죠.”

언론의 힘도 한 몫 했다. 여성프로게이머 출신의 그녀가 보드게임카페를 차렸다는 입 소문이 퍼지면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돈 안들이고도 톡톡히 홍보효과를 누렸다.

창투사와 개인 투자자들이 나서면서 ‘페이퍼이야기’라는 법인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2∼3개월만에 프랜차이즈를 내세운 경쟁사들까지 등장해 단기간에 급속도로 발전을 거듭했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고들 하죠. 경영에 대해선 문외한인 제가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건 거침없는 도전정신 때문입니다.”

'내가 재미있으니 남들도 좋아하겠구나’ 라는 단순한 발상에서 시작된 모험이었다. 그러나 윤 사장은 사업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님을 실감했다. 투자를 받았으니 이익을 창출해 내야한다는 사업의 기술적 측면이 미흡했다. 자금의 흐름을 예측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다가온 것.||경쟁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다 보니 보드게임카페의 수익이 급감했고 투자자들에 대한 이익분배가 힘들어졌다. 게다가 보드게임카페 페이퍼이야기는 별도의 로열티를 받지 않기 때문에 프랜차이즈 수입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윤사장은 문화가 성숙해지는 시기에 맞춰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단순히 보드게임카페에 그치지 않고 폭넓은 대중을 타깃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카페위주로 판매하던 보드게임을 학교, 백화점, 대형서점, 대형마트 등으로 확산시켰다. 결국 유통이 총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교육용 가치가 높은 보드게임들을 교육용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미 보드게임들을 수업자료로 활용하고 있어요. 수학·언어 습득능력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되거든요. 특히 대인관계를 위한 사회성을 길러주고 눈과 손의 협응력, 정치력까지도 키울 수 있습니다.”

서로 대화하고 협상하고, 전략을 세우는 과정에서 타인을 인정하게 되고 리더십의 능력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창의력을 향상시키는데 보드게임만큼 좋은 교재는 없다는 게 윤사장의 주장이다.||‘페이퍼 이야기’는 전 세계에서 최초의 보드게임카페다. 보드게임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독일에서조차 이제야 카페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보드게임의 강국 독일에서는 매년 2월과 10월에 세계적인 보드게임 박람회가 열린다.

지난 해 2월, 윤사장이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박람회에 초청되었다. “한국에서 왔다는데 대해 신기해했지만 아예 비즈니스 상대로는 생각조차 않았어요. 자존심이 많이 상했죠.”

그러나 1년 만에 이 같은 분위기는 반전됐다. 지난 2월 박람회에서는 한국의 보드게임열풍이 이슈가 되어 환대를 받은 것. 한국이 보드게임의 아시아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올해는 독일, 미국에 있는 막강한 보드게임 회사 CEO들까지 페이퍼이야기를 방문하기도 했다.

“한국의 보드게임 시장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직접 제작방향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보드게임카페 문화를 부러워하더군요.” 윤사장은 해외 게임들의 라이센싱을 얻어 한글화시키는 작업 이외에 직접 개발에도 나선다. 유명한 외국의 보드게임 작가들과 협상 중이며 회사 내에서도 이미 국내 역사나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기획을 준비중이다. ||윤사장은 올해 들어 낭만적인 이상파에서 현실적인 전문가로 탈바꿈했다. 그동안 아지트분위기의 회사를 제대로 체계를 갖춘 기업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친구나 친척이 주를 이룬 개국공신(?)들을 물갈이하고 유능한 인재를 대거 고용했다.

“도약을 위한 결단이었어요. 힘들 때부터 함께 고생한 사람들이라 개인적으론 마음이 아프지만 회사 운영에 있어서 친·인척들이 권력의 핵심이 아닌 서포터로서 활약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윤사장은 하고 싶은 일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꼭 하고야마는 악바리 근성을 갖고 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또 다시 서울대에 들어갈 때도 그랬고 스물 아홉의 나이로 프로게이머에 도전할 때도 그랬다. 보드게임에 심취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NHN을 박차고 나왔던 것도 모두 남다른 열정과 도전의식 때문이었다.

“실패를 하더라도 그 결과에 연연하거나 실의에 빠지지 않아요. 얼마든지 다음 단계로 재도전할 수 있는 패기가 있으니까요.” 윤사장은 많은 돈을 벌기보다 ‘페이퍼이야기’가 오랫동안 안정적인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소망한다.

“내년에는 한국에서 보드게임공모전을 개최할 생각이에요. 머지않아 역수출의 성과를 달성해 우리나라가 독일을 능가하는 보드게임 강국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사진=유영민기자|youmin200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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