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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곤] 그라비티 사장

  • 소성렬
  • 입력 2002.08.0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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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삼성전자에 입사한게 지난 76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대학을 졸업하던 해였죠. 벌써 26년전 이야기네요.” 「그라비티」 정 사장은 삼성전자 임원 출신이다. 삼성전자 관리본부 관리과에 입사한 정 사장은 당시 4천5백명이나 되는 직원들을 위해 예산 작성, 예산 집행, 경영기획쪽 일을 했다. 이후 정 사장은 원가 관리, 회계 분야 등의 일을 담당하다 81년 해외본부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정 사장이 이곳에서 한 일은 해외 지점 법인 관리였다. “관리과에서 일을 하다 해외 법인쪽 일을 맡았을 때 막막했습니다. 해외 현지 사정도 잘 알지 못하고 처음부터 일을 다시 배워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었습니다.”
그러나 정 사장은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했다. 삼성 전자는 생각보다 빨리 적응하는 정 사장의 능력을 인정해 83년 뉴저지에 있는 삼성전자 미국 현지 판매 법인으로 발령을 내였다. 정 사장은 이때 회사로부터 또 한번의 신임을 받았다. 5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88년 7월 1일자로 본사 해외업무 부장으로 국내에 복귀했다. 귀국해 그가 담당한 일 또한 해외 지점 법인 관리였다. “해외 법인쪽일을 맡아 하면서부터 조직내에서 ‘해외통’으로 불리게 됐어요. 해외 관련 마케팅 일이라면 자신 있었습니다.” 삼성전자는 91년 다시 파나마 판매 법인장으로 그를 해외로 내보냈다. 정 사장은 94년말까지 이곳에서 근무를 했다.
이후 95년, 이번에는 마이애미 총괄 본부장으로 다시 인사 발령을 받아 98년 1월말까지 해외에서 일을 했다. “삼성전자에 입사한 76년부터 98년까지 따지고 보면 절반이 넘는 시간을 해외에서 보냈어요. 외국에서 보내는 시간들은 제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때 얻었던 소중한 경험들이 지금의 저의 위치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정 사장은 98년 2월 귀국해 올해 2월말 삼성전자를 퇴사할 때까지 26년간을 삼성맨으로 살았다. ||정 사장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당시 상과대생들의 가장 큰 꿈은 기업체의 CEO가 되는 것이었다. 정 사장의 꿈 또한 최고 경영자가 되는 것이었다. “경제학에 보면 ‘비교 경쟁 우위설’이 있어요. 무슨말이냐 하면 당시 우리나라는 우수 인력 자원은 풍부한데 일자리가 없었거든요. 그때 생각했죠. 우수한 인력들이 해외에 나가 외화를 벌어들인다면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회사도 도움이 되고 1석2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요. 그래서 회사를 경영하고 싶었어요.” 정 사장은 일찍이 입사 전부터 해외쪽 시장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였는지 정 사장은 삼성전자에 입사해 해외쪽 일을 유독 많이 했다. 정 사장은 삼성전자에 입사 하기전 당시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현대, 대우 그룹에도 공채 시험에 응시해 합격을 해 놓고 있었을 만큼 대학 성적이 뛰어났다. “3개의 합격증을 받아놓고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선배가 아무래도 삼성이 좋지 않겠냐고 해서 삼성전자 입사를 결정했죠.” 정 사장은 삼성에 입사한 이후 오직 한길만을 걸어왔다. 정 사장은 사람을 신뢰하고 믿어야 한다는 철칙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사원들에게 보다 친근한 사장, 믿음 주는 사장이라는 이미지를 심기 위해 노력한다. 정사장은 CEO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고 말한다. 좋은 기술과 좋은 제품의 관리를 위해 불협화음을 얼마만큼 줄여나가느냐는 전적으로 CEO의 마인드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 지휘를 하듯 그렇게 회사를 경영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라비티」 사원들은 이런 정 사장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누구보다 직원들을 신뢰하고 다정다감한 정 사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지난 3월 「그라비티」에 입사했다. 제3의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저는 「그라비티」에 입사한 것을 제3의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인생은 유년기를 거쳐 대학시절까지이고 두 번째 인생은 삼성전자에서 일했던 시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50줄이 얼마 안 남았지만 마음만은 늘 청년입니다. 해외 출장이다, 미팅이다 늘 바쁘지만 변하기를 좋아하고 도전하기 좋아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매일 매일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 사장은 좀 더 젊어지려고 사원들과 많은 대화를 시도한다. 미국에 있는 아들과도 퇴근 후에는 채팅으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정사장의 하루 일과는 5시30분 기상해 묵상으로 시작된다. 독실한 크리스챤인 정 사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침 8시 40분쯤 회사에 출근을 하면서 정 사장의 하루 업무가 시작된다. 정 사장이 출근해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해외에서 온 메일 체크이다. 이후 정 사장은 3백만명 까지 커버가 가능한 빌링시스템, 콜 센터 등 시스템 체크에 들어간다. 정 사장은 회의를 1주일에 한번만 주재한다. 효율적인 회의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직원이 현재 1백40명으로 늘어났지만 ‘라그나로크’ 상용화로 인해 회의를 할 시간이 없는 것도 이유이다. ||■ 그동안 상용화 시기를 저울질하던 ‘라그나로크’가 상용화에 들어갔다. 유료회원에 대한 예상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지.
- ‘라그나로크’의 회원수가 2백50만이었다. 아직 결과를 예측하기란 힘들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유료로 갈 경우 무료회원의 10/1이 남는 것이 정설로 돼있다. 약 25만명 정도의 유료회원을 확보할 것으로 보고 있다.

■ ‘라그나로크’가 일본을 비롯해 동남아에서도 상당히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느 정도 인기가 있는지 좀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 일본의 경우 ‘RAG-FES’이라는 자체 동호회가 만들어 질 정도로 ‘라그나로크’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고 있다. 또 대만과 홍콩에서도 현지 언론들이 ‘라그나로크’에 대해 대서 특필 하는 등 상당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경우 45만정도의 회원을 보유해 오픈베타 서비스 중이고 대만 홍콩 등은 베타서비스를 준비중에 있다.

■ ‘라그나로크’는 3D 배경에 2D 그래픽을 혼합했다. 그 이유가 따로 있는지 궁금하다.
- 풀 3D로 게임을 서비스하면 유저들이 쉽게 눈의 피로를 느끼며 아기자기한 맛도 느낄 수 없다. 때문에 「그라비티」는 ‘라그나로크’ 기획단계에서부터 배경은 3D로 캐릭터는 2D로 준비를 했다. 유저들을 위한 하나의 전략이라고 보면 된다.

■ 요즘 게임 개발사들이 표방하는 기업은 ‘퍼블리셔’이다. 「그라비티」는 향후 게임만 개발하는 개발사로 남는지 아님 유통까지 하는 퍼블리셔를 표방하는지.
- 「그라비티」는 큰 그림을 그려놓고 있다. 기회가 왔을 때는 반드시 그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그라비티」는 퍼블리셔를 준비하되 단순히 게임 개발과 유통만 하는 퍼블리셔는 지양한다. 지속적으로 묘목 사업을 펼칠 것이다. 양질의 게임관련 인재 양성도 준비하고 있다. 해외 법인체를 중심으로 제대로 일하는 퍼블리셔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한걸음 한걸음 급하지 않게 천천히 준비해 나갈 것이다.

사진 = 유영민 기자|you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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