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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로퍼] 블리자드 부사장

  • 지봉철
  • 입력 2002.06.26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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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로퍼가 게임 개발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던지는 말이다.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시리즈 등의 밀리언 셀러 타이틀로 전세계 게이머들에게 꿈과 희망을 던져준 그는 게임개발의 가장 기본적인 원동력은 ‘창조의 힘’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게임들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혼자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며 최고의 프로그래머, 예술가, 디자이너들과 「블리자드」에서 함께 일하게 된 것을 큰 행운으로 여기고 있다. 이같은 생각은 그가 걸어온 개발경력과 인생역정에서 그 맥을 같이한다.
외아들인 그는 개인의 창의적인 사고를 존중하는 전형적인 미국식 가정에서 자랐다. 형제, 자매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혼자하는 놀이에 익숙해진 그는 게임과 함께 어린시절을 보냈다. 카드게임을 비롯해 ‘던전앤드래곤’과 같은 보드게임까지 그는 거의 모든 게임들을 섭렵했다.
“게임은 에듀테인먼트 요소가 강합니다. 어린시절을 돌이켜보면 게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수학을 하는데 가장 필요한 논리적인 사고도 게임을 통해 얻었습니다. 어린시절 가장 즐겨하던 ‘백게먼(backgammon)’이 대표적입니다. 주사위 놀이였는데, 이 게임을 통해 빠른 수리계산과 판단력을 배웠습니다. ‘스타크래프트’의 기본도 빠른 연산능력과 판단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게임을 통해 그는 창조성을 결코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상상력을 현실 속에 굳건히 자리잡아갔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했던 분야는 게임이 아니라 음악. 아홉 살때부터 섹스폰을 불기 시작했던 그는 캘리포니아 스테이트 주립대학에서 상업음악을 전공했다. 재즈와 록을 특히 좋아했다. 대학시절에 불었던 튜바는 아직도 그의 최고의 소장품이다. 그러나 그는 대학을 온전히 졸업하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음악인의 길을 걷기 위해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었다. 대학을 그만두고 그가 한일은 트럭운전에서부터 타자작업까지 다양하다. 그러던 그가 현재 몸담고 있는 「블리자드」의 계약직으로 입사한 것은 어떻게 보면 운명이었다. 음악작업을 위해 「블리자드」의 입사한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잠재된 능력을 찾게 된다.
“처음 「블리자드」에 입사했을 때는 계약직으로 음악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급여가 적어 저녁에는 타자치는 아르바이트까지 했죠. 일주일에 40시간씩 타자를 치는 일이었는데, 밤을 새워 일을 하다보니 「블리자드」에서는 잠만 자기 일쑤였죠.”
그가 본격적으로 개발에 참여하게 된 것은 96년 출시된 ‘워크래프트2’부터. 게임을 천성적으로 좋아 하다보니 「블리자드」 게임에 베타테스터 역할을 자임하게 됐고 게임을 보는 그의 예리한 눈과 의견이 하나, 둘 회사에 채택되기 시작하면서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음악작업뿐 아니라 프로그램 개발에까지 직접 참여한다. 그가 세계 최고의 게임개발자로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불과 2년 후. 그가 직접 프로듀서한 ‘디아블로’가 전세계적인 대히트를 기록한 것이다. ‘디아블로’는 당시 ‘던전앤드래곤’ 룰에 입각한 정통 롤플레잉 게임이 주를 이루고 있던 게임업계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센세이셔널한 작품이었다. ||액션과 롤플레잉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이 게임은 98년 그해 게임업계에서 주는 각종 상이란 상은 모두 휩쓸었다. 판매량도 상상을 초월해 6백만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 게임은 특히 국내 게임시장엔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게임개발의 주류가 완전히 바뀌게 된 것이다. 이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던 일본식 롤플레잉인 택틱스류의 게임이 거의 자취를 감추고 ‘디아블로’류의 액션 롤플레잉 게임이 대세를 이루게 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출시된 국내 롤플레잉 게임 거의가 ‘디아블로’ 아류작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만큼 국내 게임시장에서 ‘디아블로’의 영향력은 실로 엄청났다.
“‘스타크래프트’도 훌륭한 작품임에 틀림없지만, 제겐 ‘디아블로’가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입니다.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작품이니까요.”
‘디아블로’로 국내 게임시장을 휩쓴 그는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다시 한번 국내 게임시장에 전설을 창조한다. ‘3만장 판매면 대박’이라는 국내 게임시장에서 총판매량 3백만장 이상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과 함께 산업적인 측면에서나 문화적인 측면에서 ‘스타크래프트’란 소용돌이를 불러 일으킨 것이다. 이 배경에 빌로퍼가 있었던 것은 두말하나 마나. ||“어떤 일을 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들을 수 있다면, 거기에 필요한 도구나 재료를 찾는 일은 쉽죠. 게이머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들을 수 있다면 그게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본이 됩니다. 게임 개발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스타크래프트’ 성공에 대해 그는 게이머들이 원하는 바를 구현하려고 애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히 그는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국내 게이머들의 열광은 가히 환상적이라고 표현한다.
“한국의 프로게이머들이 보여준 기술과 헌신, 특히 ‘스타크래프트’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보여 준 전략과 전술은 개발자인 저도 믿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블리자드」사에 있는 직원 모두는 한국 사람들이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대단히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디아블로2’에서는 한국 아이템을 삽입했고 곧 한국의 발매될 ‘워크래프트3’에도 한국의 팬들을 사로잡기 위한 장치들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는다. 게임개발에 대한 의욕은 물론 음악에 대한 애착도 대단하기 때문이다. 음악가로서의 꿈도 결코 버리지 않았다. 음악으로 다시 한번 전세계 팬들을 놀라게 하겠다는 생각이다.
“게임 프로듀서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항상 그 게임을 누가 하느냐를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픽이 아름답고 웅장한 음악에 감동적인 줄거리로 짜여진 게임이라고 해도 배우기 어렵고 재미있지 않다면 결코 좋은 게임이 아닙니다. 좋은 게임은 게이머들의 판단에서 나옵니다.”
그가 현재 국내 게임개발자들과 게임개발에 꿈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말이다.||빌로퍼는 샌 매테오(San Mateo)에 있는 「블리자드」 노스의 부사장으로 내부의 개발팀 뿐만 아니라 외부의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블리자드」 개발팀의 최고 책임자이다. 최근에는 ‘워크래프트3’의 개발을 총괄해서 관리하며 진행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워크래프트3’ 개발작업에 참여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워크래프트3’는 지금까지의 「블리자드」 최고의 업적들 중에 하나다”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처음에는 ‘워크래프트2’ 후속작이라는 컨셉으로 시작해서 워크래프트에 서사시적인 세계를 만들어냈고 ‘워크래프트3’는 게이머들에게 믿지 못할 만큼의 재미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라고 자신감을 표현한다.
빌로퍼는 ‘워크래프트2’,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의 프로듀서로 ‘디아블로2’,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 수석프로듀서 등 「블리자드」에서 가장 성공적인 상품에 직접적으로 참여했고 이 게임들의 매뉴얼 디자인 및 성우로 직접 게임에 참여했다.
맥킨토시 버전의 ‘워크래프트2’,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64’의 개발도 진두지휘했다. 현재 「블리자드」 신작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있다. 빌로퍼는 성악 중심의 상업음악을 롱비치 캘리포니아 스테이트 유니버서티에서 공부한 배경으로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등의 음성 녹음작업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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