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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온] 조성용 사장 - "임상옥 닮은 게임업계의 거상이 되고 싶다."

  • 지봉철
  • 입력 2002.04.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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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사장이 처음으로 시작한 사업은 일본 파나소닉사의 CD롬을 수입, 유통하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CD롬 드라이브가 필수품으로 여겨지지만, 플로피디스크가 저장수단으로 널리 보급됐던 그 당시만해도 CD롬은 극소수만이 사용하던 하드웨어였다. CD로 제작된 소프트웨어도 귀한 때였던 것. 조 사장은 CD롬 드라이브에 끼워 팔 번들용 소프트웨어를 구입하기 위해 미국 출장을 갔다 우연히 게임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미국의 유력 게임개발업체인 루카스 아츠의 잭 소렌센 이사를 만난 것이 게임사업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 잭 소렌센 이사는 당시 패기만 믿고 자신을 찾아온 조 사장에게 "번들게임으로는 사업을 할 수 없다. 게임비즈니스를 하려면 정품게임을 유통하라."고 권유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게임유통사업. 1993년 샘전자에서 게임라이센싱을 담당하면서 조 사장의 게임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첫 타이틀은 역시 루카스아츠의 '덴타클 최후의 날'. ||이후 조 사장은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게임사업을 전혀 몰랐던 그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몸으로 부딪칠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러던 그의 이름이 게임업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93년 장당 로열티가 2불짜리인 게임에 대해 무려 5불에 로열티로 게임판권을 따왔던 것. 당시 게임업계에서는 조 사장이 해외 게임판권료를 2배로 뛰게 했다고 맹비난했다. 아무리 조사장이 모르고 한 일이었다지만 해외게임 라이센싱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한 사건이었다. 이후 해외게임 유통사들은 조 사장의 예를 들며 게임판권료 인상을 국내 게임업체에 요구했다. 결과적으로는 국내 게임시장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조 사장은 그 일로 인해 루카스아츠 등 해외 유통사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됐다. 해외 네트웍이 최대강점으로 평가받는 조이온의 첫 출발이었던 것.||자신이 직접 경영하는 회사를 설립한 것은 96년 9월 한국 라이센싱을 설립했다. 샘전자와 한국 인터네트에서 게임 라이센싱을 담당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그대로 살리면서 해외 게임들을 닥치는 대로 수입해 판매했다. 한국 라이센싱 시절 조 사장의 경영전략은 비싼 대작타이틀보다는 레벨은 떨어지지만 다양한 게임을 선보여야겠다는 것. 몇 개월에 한 타이틀 유통시키는 것도 힘든 시절 그는 한달에 30개가 넘는 타이틀을 국내에 출시하기도 했다. 닥치는 대로 해외업체를 만나 남들이 거들떠도 안보는 게임을 모두 거둬들인 것이다. 비난도 많았다. 팔리지도 않을 게임을 마구잡이로 수입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달았다. 그래도 그는 꿋꿋하게 2류급 타이틀을 모두 거둬들여 국내에 판매했다. 대작 타이틀에만 눈이 가 있는 국내 게임유통사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회사를 경영한 것.||"해외게임업체들이 상당히 고마워들 했습니다. 국내 유통사들이 일정한 판매량이 보장된 대작타이틀만 선별해 라이센싱하는 것과 반대로 팔기 힘든 타이틀을 애써 팔아준다고 많이들 고마워했습니다. 돈 보다는 해외유통업체들과 신뢰를 많이 쌓게 된 거죠."
수입한 타이틀이 대작이 아닌 관계로 크게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조 사장은 야금야금 국내 게임시장을 점유해 나갔다.
그러나 IMF가 터지면서 회사에 큰 위기가 닥쳤다. 라이센스가 주 수익구조인 회사 성격상 외환위기는 치명타였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 디자이너인 부인이 박스 디자인을 담당하고 건물 주차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밤새워 박스를 포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제고품의 박스를 다시 뜯어 그걸 팔아 직원들과 음료수를 사먹기도. 회사사정이 어려워지자 직원들 월급을 카드 현금서비스로 해결했다. ||"국내에 나오는 카드란 카드는 모두 발급받았지요. 직원들 월급을 발급받은 카드로 해결했습니다. 빚이 늘어나 회사를 그만할까도 생각할 만큼 어려웠던 시절이었죠."
회사를 접을까 생각하던 그는 오랬동안 교분을 쌓아왔던 대만의 감마니아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재기에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감마니아가 한국 라이센싱에 대해 투자를 한 것이다. 감마니아의 한국지사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조 사장의 '모든 비즈니스는 친분' 이라는 일관된 철학이 어려움을 맞게되자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대만 감마니아 사장인 알버트 류와 친구이상의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알버트와 같은 비행기는 절대 타지 말자고 약속했죠. 혹여나 사고로 한 사람이 잘못되면 남은 처자식을 남은 사람이 책임지자는 의미였죠. 그만큼 교분이 두터웠어요. 대만에서 감마니아가 대 성공을 거두기 이전부터 친분관계를 유지한게 큰 도움이 된 것이죠."
99년 조 사장은 한국 라이센싱을 감마니아 코리아로 개명하고 편의점, 패스트푸드 점 등 감마니아 제품들을 국내에 판매했다. 한편으로는 한국 라이센싱 시절부터 해오던 해외게임의 유통을 지속해 나갔다. 벤처붐이 일면서 게임업계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도 조 사장에게는 행운이 됐다.||"사실 게임은 잘 모릅니다. 많이 즐기지도 않는 편이죠. 테트리스 정도만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나 사업가는 게임을 많은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게임을 구매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서비스를 잘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마인드가 많이 통했던 거죠."
지금은 회사명을 조이온으로 변경하고 코스닥 등록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해 조이온은 매출 62억에 순이익만 9억을 냈다. 올해는 매출 150억에 순익 45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내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개발사로는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H.Q팀을 인수, 합병해 개발부분에서도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로벌 퍼블리셔로 도약하겠다는 것이 목표입니다. 해외 파트너와의 협력관계를 잘 쌓아놨기 때문에 게임만 뒷받침해준다면 빠른 시일내에 성과를 이룰 것이라고 봅니다. 게임외에 다른 부가사업도 진행할 계획입니다."
조이온은 올해안에 T.H.Q, 어클레임, Ubi의 비디오 게임 타이틀 50여종을 국내에 선보일 방침이다. 또한 30대 청, 장년층에게는 아련한 추억인 마징가Z, 그랜다이져, 짱가 등의 애니메이션 DVD를 수입, 국내에 정식 유통시킬 계획도 가지고 있다.
6월 출시하는 ||▲ 조이온의 최대장점은 바로 해외 네트워크다. 어차피 내수보다는 세계를 무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 일찍부터 해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신경을 쓴 편이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임진록'을 유럽에 수출한 것도 좋은 예다. 온라인 게임 ‘거상’도 국내와 동시에 미국에서도 서비스할 예정이다. 그리고 유럽에는 Ubi소프트, 대만에는 감마니아를 통해 유통시킬 계획이다.||▲ 사장이라고 해서 가만히 앉아 있어선 안된다는 것이 평소에 신념이다. 오너나 사장이 직접뛰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결정권자가 보고만 듣고 일을 처리하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린다. 인터넷 시대의 이같은 방식은 결코 회사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원래는 내성적이었다. 그러나 사업에 뛰어들면서 외향적이고 친화력있는 성격으로 바꾸기 위해 애를 썼다. 해외사업에 주력하기 위해 영어와 일본어도 익혔다. ||▲아직까진 큰 시장이 될 것으로 보진 않는다. 아직도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직 게임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많은데 게임하라고 비싼 비디오게임기를 사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X박스·게임큐브 등이 잇따라 들어오면 달라질 것이다. 엄청난 마케팅비를 등에 업고 ‘엔터테인먼트 가전제품’이라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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