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고민과 상의 끝에 여름방학에 그 아이가 우리회사에서 한 달동안 게임만 해 보도록 했습니다. 물론 직원들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이 아이가 원하는 게임을 맘껏 해 보게 했습니다. 아침에는 출근 시간에 맞추어 아이를 데려오고, 저녁에는 직원들도 퇴근을 해야 하니 집에 가기 싫다는 아이를 타일러 집에 보냈습니다. 이 아이에게는 네가 좋아하는, 정말 만들고 싶은 게임에 대해서 써보라는 숙제를 냈지요.
한달간의 게임 실습 후, 아이는 A4 25페이지에 빡빡하게 쓴 게임 기획서 한편을 내놓았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이모저모 섞어 놓기는 했지만, 구성이나 시나리오면에서 매우 탄탄한, 그 나이의 학생이 쓴 것으로서는 상당한 수준의 기획서를 보고 저도 매우 놀라 친구에게 그 기획서를 보여 주었습니다. 기획서 내의 상상력과 구성력, 논리력을 보면 이 아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아이인지 알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말입니다. 사실 그 친구도 학교 다닐 때 바둑에 미쳐서 프로 바둑 기사가 되겠다고 우겨 한참을 말린 기억을 말하면서 함께 웃었습니다.
인터넷 환경이 좋아짐에 따라 다양한 인터넷 컨텐츠들이 생기면서 그 중에서 온라인게임이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많은 관심과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의 한국 온라인게임이 있기까지는 이런 우리 젊은이들의 관심과 호응이 없었으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 부쩍 아이들의 게임 사랑을 중독증으로 취급하면서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들을 많이 듣습니다.
그 방안으로 밤에는 PC방에 청소년들의 출입을 막고, PC게임 뿐 만 아니라 온라인게임에 대한 이용 연령을 정해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환경을 통제하는 여러 방안들이 실질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게임만 하는 아이들의 장래와 성격이 걱정되는 기성 세대들의 염려가 십분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얼마 전, 게임 중독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의 중독의 원인이 게임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주변의 환경적인 요인들이 문제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 성적에 대한 지나친 스트레스, 교우관계가 원활하지 못한 경우, 부모님과의 대화가 거의 없는 경우 등의 요인 때문에 게임에 몰입하게 된다고 하네요.
며칠 전 요즘 한 일간지에 재미있는 게임 칼럼을 쓰고 계시는 64세의 ‘레드문’ 지존, 양 선희 할머니를 뵈었었습니다. 온라인게임 ‘레드문’의 최고 고수인 이 할머니는 손자와 함께 ‘레드문’을 통해서 함께 세대 차를 극복하고, 다른 ‘레드문’ 유저들의 연애, 인생상담도 하시면서 게임이 없었다면 자신의 노년을 이렇게 재미있게 보낼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어린 손자가 게임을 하면서 더욱 영리해 지고, 아이템을 나누고, 길드전을 함께 하면서 협동심과 배려하는 마음을 배운다고, 게임도 아이와 함께 하면 오히려 좋은 교육이 된다는군요. 물론 이 아이는 일주일에 정해진 시간만 게임을 하도록 약속을 하였고 그 약속을 아주 잘 지킨다고 합니다.
한번은 늦은 밤에 게임을 하러 온 고등학생들을 법 규정 때문에 안 받아 주었더니 쌀쌀한 바깥 날씨에 PC방 밖에서 소주와 담배를 피우면서 있는 것을 보고, 게임방이 아니면 갈 곳이 없고, 그러다 보니 잘못된 길로 빠진다고 가슴아파 하셨습니다. 오히려 갈 곳 없는 그 아이들이 PC방에 들어 올 수 있었으면 술 마시지 않고 건전하게 게임을 했을 것이라면서요. 이제는 부작용들을 비난하고 규제하기 보다 게임의 순기능들을 더욱 깊이 고민하고 발전시켜야 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