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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비스코 대표이사

  • 경향게임스
  • 입력 2002.05.17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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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모 일간지에서 '구루구루', 'eDonkey' 등의 유명한 P2P 자료공유프로그램의 효용성을 예찬하는 글을 읽었다. 이 프로그램들을 '비싼 정품 프로그램, 더이상 그림의 떡이 아니다' 식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또한 자료를 받기만 하지 말고 주기도 해야 진정한 공유의 세계를 만끽할 수 있다는 충고까지 아끼지 않았다. 왠지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소프트웨어의 공유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고 회사에 피해를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저들의 죄책감이 미미해 와레즈가 널리 퍼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엔 어려서부터 자료공유의 환경에 노출된 인터넷 유저들이, 자신들이 범죄행위를 저지른다는 사실 자체를 '정말 모르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공유대상의 범위를 게임으로 좁혀보면, 범죄행위라는 살벌한 문구를 빼고라도 자료를 공유하는 게이머들 스스로 '즐거울' 권리를 포기한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게임불감증'에 걸렸다는 한탄이 심심찮게 게임관련 게시판에 올라온다. 어떤 게임을 해도 '정말 재밌다'는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 이유를 두고 너무 많은 게임들이 시장에 쏟아지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게임들이 비주얼한 자극에 너무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게임들이 하나같이 비슷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난 오히려 게이머들이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너무나 쉽게 게임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새로운 게임이 나오고, 그것을 다운받아서 좀 해보다가 막히거나 세이브 파일을 실수로 지우거나 하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컴퓨터에서 지운다. 그리고 또 다른 게임을 다운받는다.
부모에게 받거나 길에서 주운 돈을 아까운 줄 모르고 쓰다가 자기 손으로 땀흘려 번 돈을 손에 쥐었을 때의 느낌을 다들 알 것이다. 한푼 두푼 모아 너무나 갖고싶었던 게임을 사서 몇번이고 엔딩을 보는 즐거움도 이와 많이 다르지 않다. 어째서 게임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스스로 그 즐거움을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걸까?||게임을 정품으로 사자는 것이 단지 개발사와 유통사의 이익을 위한 이기적인 주장이라고 매도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학생시절, 일본 유학중에 '삼국지' 라는 게임을 만났다. 밤을 하얗게 새면서 중국을 평정했을 때 내가 느꼈던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 느낌을 한국에도 전하고 싶어 비스코라는 회사를 세우고 삼국지를 내 손으로 번역해 처음으로 한국에 유통시켰다. 물론 당시는 자료공유라는 것이 그렇게 활성화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게이머들이 정품을 구입한다는 사실은 내 게임이 제대로 평가받고 있다는 증거였고, 그 때 느꼈던 보람은 지금까지 게임유통을 계속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게이머들은 개발사와 유통사가 돈 되는 게임만 만들고 유통하면서 게이머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이용만 한다고 비난한다. 개발사와 유통사는 게이머들이 자신들의 노력을 외면한 채 공짜로 게임을 즐기면서도 사사건건 목소리만 높이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불신과 반목이 너무 안타깝다. 단순한 오락수단으로 인식됐던 게임이 이제 막 '문화' 로 대접받기 시작하고 '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벌써 PC게임 시장은 죽어간다고들 한다. 대가를 지불해도 아깝지 않을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고 끊임없는 서비스와 진심어린 배려로 신뢰를 얻는 유통사, 그리고 개발사와 유통사가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게이머. 게임사업을 바로 세울 이런 '잘 생긴 삼각형'을 만드는 것은 어느 일방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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