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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식] 재미창조 대표이사

  • 경향게임스
  • 입력 2002.04.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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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온라인 게임산업이 봄을 맞은 듯하다. 짧은 시간을 감안한다면, 그 풍요로움은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벚꽃처럼 탐스럽다. 그 놀라운 성장에 혹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낸다. 냄비근성을 말하며, 너도나도 온라인게임에 뛰어든 탓이라고도 말하고, 또 위험이 너무 높음을 말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몇 몇 게임의 시장진입 성공을 언급하며, 잠재력을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왠지 아쉽다. 상춘객이라면, 그저 그 흐드러진 풍요로움을 잠시 감상하면 그만이지만, 게임을 만든다는 이유로 태풍 한가운데 서 있다보니 봄 벚꽃 같은 지금의 만개가 곧 지지는 않을까라는 우려도 쉽게 지울 수 없다.
얼마 전 포럼에 참가한 일이 있다. 온라인게임에 대한 얘기를 해달라고 불려간 자리였다. 온라인게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컴퓨터와 네트워크의 특성에 적합하게 재미를 창조하는 것' 이라는 짧은 대답을 전했다. 포럼이 진행되는 동안 알지 못할 답답함이 커져간 것은 워낙 주어진 시간이 짧아 할 얘기를 다 못한 탓도 있었지만, 오히려 너무 쉽게 컨텐츠라는 단어를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수백억, 수천억을 들여 하드웨어를 포함해 인프라를 구축하더라도, 요체는 컨텐츠에 대한 정수를 체득하지 못하고서는 극단적으로 말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절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현상을 온라인 게임산업 분야에서도 자주 목격한다.
온라인 게임을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컨텐츠의 핵심은 바로 재미에 있다. 그 간단한 사실을 이해하고 동의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것을 생산하는 일은 단기간에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한마디로 블랙홀을 탐험하는 것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다. 많은 대기업들이 이 분야에 진출하면서 시행착오를 겪는 가장 큰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막대한 자본으로 시설, 설비를 확보하면 컨텐츠쯤은 자본으로 해결한다는 안이한 발상이 문제였다. 비용대비 수익률의 잣대로 한 편의 작품을 공들여 제작하기보다 그저 싸게 수입해오면 된다는 발상들이 만연했다. 고작 제작에 참여했다하더라도, 그저 구색 맞추기 아니면, 돈 되는(?) 제작을 찾는데 만 급급했다.
물론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작품은 늘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런 얘기를 전하면, 그런 사실은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더 환장할 노릇이다. 이 기본적인 사실은 잘 알고 있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깨달아 체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속된 말로 컨텐츠에 대해 수익성과 더불어 쟁이(?)로서의 근성을 체득하고 있지 않다면 올바른 컨텐츠를 생산하는 시스템은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 이름을 대면 다 아는 한 영화사의 사장은 다른 영화사에서 기획실장으로 일하던 시절, 사장이 반대하던 외국 영화를 고집스럽게 수입해 왔던 적이 있다. 전해지는 과정에서 다소 과장은 섞였겠지만, 사장의 반대를 꺾기 위해 영화가 실패하면 모든 일을 책임지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의 판단을 관철시켰다.
물론 이 분야에서도 나름대로 재미를 만드는데 스스로 매니아를 자처하며 일가견이 있다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이 전문가임을 인정받기 위해 과거의 오랜 경력을 말하기도 하고, 또 밤낮 없이 그 일에 매진해온 자신의 열정을 내세우기도 한다. 더 한심하고 답답하다. 제작자나 개발자에게 있어서 재미를 만드는 일은 마치 신앙생활과 같다. 신을 섬기는 신자가 이정도면 내가 신에게 충실했다고 자부하는 순간, 그건 엉터리 신앙이 아닐까?
누가 이렇게 만들면 어떨까라고 한마디 거들면, 광분한다. 세계적인 게임에서는 어쩌고저쩌고 또 자신의 경험과 온갖 논거들을 받아들여 맞부딪힌다. 현실에서 완전한 신앙이 없듯이, 완전한 창조란 없다. 그 불완전함이 제작자와 개발자의 숨통을 날마다 조른다. 하지만,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는 순간, 그리고 수익이라는 현실에 백퍼센트 동조되어 장인의 고집을 꺾는 순간 제작자는 존재할 수 없다.
온라인 게임산업에서 분명 우리나라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기술적인 노하우와 그 발전속도는 모두 이 분야에 종사해 온 사람들의 노고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 자만하거나 자족해서는 안된다. 우리에겐 새로운 과제가 있다. 바로 재미를 창조하는 일이다. 너도 나도 판타지 풍의 재미와 상상력에 얽매여 있는 현실이 개발자의 안이함과 자만심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날마다 순교해야 한다. 그런 정도의 마음이 이 분야에서 생겨나야 게임산업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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