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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돌컴의 거칠 컬럼(16회)] 내 고집에 대한 소회(所懷) 1.

  • 경향게임스 khgames@kyunghyang.com
  • 입력 2007.06.2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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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의 일이다. “실장님 전화요~!” “받았으니 끊으세요.” 4시를 넘어 거의 모든 사원들이 퇴근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갈 무렵,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목소리로 짐작하건데 40대 중반 정도의 아주머니인 것 같다. 본인이 애니메이터로 20여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 지원해도 괜찮겠냐는 내용이었다. “전 컴퓨터를 전혀 모르는데 상관없을까요?” “클린업이니까 괜찮을 거예요.” 작감보로 모집하는 것이기 때문에 PC작업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아주머니, 뭐가 그리도 걱정이 되는지 계속해서 30여 분간 전화로 물어 보신다. “작감보라고 했는데, 그럼 작감하시는 분은 경력이 어느 정도 되나요?” “원래 만화가 하시던 분인데... 한 7년 될 거에요.” “그럼 이름을 좀 알 수 있을까요?” “죄송하지만 그런 사항은 면접을 오셔서 말씀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약간 불쾌해진다. 벌써 재보기인가.

애니메이션이라는 걸 만들기 시작한 뒤, 시간이 흐르면서 느낀 것은 이 바닥도 게임 바닥과 그다지 다를 바 없이 고집과 독선이 가득 찬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크리에이터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게임 개발자들은 소위 정치라던가, 게임이 아닌 온라인 컨텐츠를 제작하는 일에만 집착해서 그런 것이 필요 없다고 느끼는 것이지만 말이다. 나만의 고집과 독선으로 게임 개발을 시작한지 2년이 다 돼간다. 하지만 지금의 트렌드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생각으로 게임 개발을 진행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에는 ‘휠택시’라는 게임이 있었다. 처음에는 PS2로 뭔가 만들고 싶은 마음에 개발을 시작했지만, 국가가 주도하는 개발 사업이고 회사는 이미 돈을 받았기 때문에 해야 된다는 강압에 못 이겨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국비로 2억원이 넘는 돈을 받은 것 같은데 정작 나에게 주어진 예산은 거의 없었다.

MMORPG가 여전히 대세고, 시장에 신규 진입한 웹젠의 ‘뮤’가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던 시절이었기에 모든 온라인게임은 ‘뮤’와 같은 MMO가 돼야 한다고 모두가 목청을 높이던 시절. 한국은 반드시 판타지만이 먹혀 들어간다는 여론이 분분할 때, 나는 모두의 생각과 거꾸로 가고 싶었다. 기왕 만들 거라면 좀 더 캐주얼하고 아동틱하면서도 개성 넘치게 하고 싶었다. 당시 그래피커는 원화를 겸하고 있던 L씨 한명이었는데, 그의 원화가 무척 개성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밀고 나갔다. 회사 내부에서 이걸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여럿 있었지만(심지어 사장까지도) 한번 결정된 정책은 바꾸지 않는다는 모토 하에 제작을 진행한 것이다. 좀 더 재미있게 만들어 보자는 발상에 아이템전(戰)을 강화했다. 미사일도 넣고, 지뢰도 뿌렸다. 다 만들고 나니 회사가 넘어가게 돼 모두가 판타그램으로 이직(移職)한다고 들었을 때는 약간 처참한 기분이었지만 팀장이었던 놈도 그대로 가줘야겠다는 반 강압적인 지시에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따라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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