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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돌컴의 거칠 컬럼(31회)]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下)

  • 경향게임스 khgames@kyunghyang.com
  • 입력 2007.10.0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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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개발사에서 창출한 부(富)는 게임 개발사에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 부가 게임 개발사에 돌아가지 않고 아이템 중개상에 돌아가게 만든 것 역시 게임 개발사다. 온라인게임 산업 초기에 현질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화되는 것을 확인했다면,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 하고 보다 게임의 본질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했어야 한다. 개정된 법망을 피하기 위해 아이템 중개상들과 암묵적인 합의를 맺고 현질을 조장하는 쪽으로 게임을 개발한 것은 개발사로서의 도의(道義)를 저버린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굳어져, 어느 순간부터인가 현질이 조장되지 않는 게임은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가 힘들게 돼버렸다.

일본이나 미국과 달리 한국의 게임 개발자들이 존경받지 못하고, 스타 개발자들이 탄생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파이널 판타지’를 개발한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시나리오성과 게임 시스템으로 사랑 받았고, 미야모토 시게루는 전 세계 사람들을 매료시킨 그 만의 게임성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한국형 온라인게임을 만든 개발자들은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과 그 외 후진국 유저들에게 한국형 온라인게임의 중독성만을 안겨 주었을 뿐이며, 선진국 유저들에게는 게임의 재미를 어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9년에는 문화관광부 관계자들과 한국 온라인게임 업계 고위층이 모여 샴페인을 터뜨리며 2005년까지 세계 게임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이들은 일본의 소비자 트렌드나, 미국의 게임개발 트렌드는 한 물 갔다고 자평하며 의기양양했지만, 2007년에는 다시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2010년까지 세계 게임 시장의 10%를 차지하자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보며 시대의 안일함을 느꼈다.

 이우진(34), 예명 이돌컴
1993년, 방년 19세에 게임잡지 기자로 게임계에 입문해 디지털캠프, 판타그램 등에서 개발자로 활약.
일본 프롬 소프트웨어에 입사해 아머드코어 시리즈의 프로듀스 역임 .
이후 모바일게임 회사로 자리를 옮겨 ‘대장금’등 10여종의 인기 모바일 게임을 개발. 세가코리아를 마지막으로 2006년 12월 게임업계 은퇴를 선언했다. 현재는 각종 집필활동과 UCC 창작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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