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가수 : 앤(Ann)] "자기 색깔 완벽히 낼 줄 아는 가수될 터"

  • 김수연
  • 입력 2004.04.26 17:54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LA에서 가족들과 여유롭게 보냈어요. 친구들도 만나고 음악작업도 하면서 지냈어요”

2녀 중 장녀인 앤은 미국 LA에서 나고 자란 재미동포다. 유창한 한국어 실력은 한국문화를 귀히 여기시는 할머니와 엄한 부모님 덕분이다.

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신 부모님은 그 시대 한국정서를 그대로 유지한채 30여 년을 살아 오셨다. 사대부집안에서 자라 옛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사셨던 것.

때문에 예의범절 깍듯한 앤의 모습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또래들 보다 더 한국적이다. 식사시간에도 자신보다 연장자가 있으면 절대로 먼저 수저를 드는 법이 없으며 누구를 만나든 깍듯이 인사한다.

다만 나이가 들어 한국 행을 선택한 탓에 문화적 차이는 다소 극복하기 힘들다고. “공항에 내리자마자 숨이 막혀요. 길거리엔 차가 너무 막히고 사람들은 늘 ‘빨리빨리’라고 말하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표정이에요.”

여전히 한국의 타이트한 정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미국에선 문을 여 닫을 때 뒤에 사람이 오면 문을 잡아주는데 한국 사람들은 예의 없이 휙 닫아버리고 가요.” ||앤은 어릴 적부터 예술적 끼가 다분했다.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미술도 곧 잘했다. 학창시절 수영선수로 활동할 만큼 운동에도 소질이 많았다. 무엇보다 음악감상을 즐기시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얼마 전에 안 사실인데 이모할머니께서 이북에서 유명한 가수셨다고 들었어요. 제 음악적 재능이 유전인가 봐요.” 그녀는 교포들 사이에서 꽤 알려진 뮤지션이었다. “1집 때 회사 사장님이 미국에서 엔지니어로 활동하셨는데 그 분의 권유로 가수생활을 하기 위해 한국으로 왔었어요.”

부모님은 그녀가 변호사가 되길 바라셨다. 굳이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평범한 인생을 살라며 가수 활동을 반대하셨다. 한국에서 1집 활동을 시작했을 때 동료 뮤지션들이 ‘한국 사람들이 가지지 못하는 톤’을 지녔다며 극찬했다.

특히 높아지는 고음에서는 목소리 톤이 굵고 펑 뚫린 느낌이라는 평을 받았다. 김조한 윤도현 성시경 등의 가수들도 공통적으로 그녀의 보이시하고 독특한 개성에 높은 점수를 줬다.||소속사의 홍보 부족으로 1집 활동이 아쉬운 막을 내렸다. 그녀에게 솔이나 R&B 레슨을 받고 싶다는 가수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음악작업을 위해 고향인 LA로 떠났다. 1집 때엔 소속사의 의도대로 클래식한 분위기라 대중화가 힘들었다.

이번 2집에서는 앤의 작사 곡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자신의 색깔을 듬뿍 담아냈다. “제 개성과 분위기가 묻어나는 앨범이라 더욱 애착이 가요. 대부분이 LA에서 솔리드 정재윤 씨와 작업한 곡들이에요.”

앤은 자신이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주변에 칭찬해주고 도와주는 분들이 너무 많다는 것. “미국에는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어하는 교포가수들이 너무 많아요. 하지만 부모와 떨어져 한국에 왔다가도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다반사에요. 저는 운이 좋은 케이스죠.”

그녀는 자신의 색깔을 완벽히 낼 줄 아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음악활동을 하는 사람들 중 아직까지 동양인 스타는 한 사람도 없어요. 그 몫을 제가 하고 싶어요.” 그녀의 야심찬 바람이 꼭 이뤄지길 바래본다.

사진=유영민기자|youmin2001@kyunghyang.com

저작권자 © 경향게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