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 엑스트라에서 정상에 서기까지
[이종수] 엑스트라에서 정상에 서기까지
  • 김수연
  • 승인 2002.06.24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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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도 닮지 않은 이종수 식 연기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7년의 연기생활 뒤 3년 간의 엑스트라 경력을 지닌 그는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며 연기력은 경력과 연륜에 따라 좌우된다고 말한다. 하루 4천5백원부터 1만2천원이 하루 꼬박 고생하고 받은 출연료의 전부였지만 카메라 너머 배우들을 보면서 연기를 배워나갔다. “지금은 내가 저 사람 뒤에 있지만 언젠가는 내가 저 주인공 자리에 서겠다고 다짐했죠.” 매 작품마다 극중 배역과 자신이 하나되는 연기를 위해 그 동안 연기해 낸 모든 배역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연기생활 7년 동안 수많은 작품을 해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로 MBC 4부작 특집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다. 대본연습 도중에도 출연자들이 눈물바다를 이뤄 대본연습도 제대로 못했을 정도로 슬프고도 아름다운 작품이었다고. ||어려서는 ‘대통령’이 꿈이었다는 그는 자신의 어렸을 때 모습이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 ‘검프’와 같았다고 말한다. “육상선수로 활동했었는데 잘하는 게 달리기밖엔 없었죠.”
그런 그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연기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공부엔 별 관심이 없었고 엑스트라로 이곳 저곳 촬영장을 기웃거렸다. 소위 8학군이던 학교 수업을 빼먹고 촬영장을 드나드는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반에서 꼴지 한 적도 있어요. 52등이 핸드볼부 운동선수였고 제가 꼴지 53등이었죠.” 출석처리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결석일수가 위험수위에 다 달았고. ‘학교의 수치’라며 타 학교로의 전학을 권유받았을 정도였다. 그의 성적표 행동발달 사항은 모조리 ‘다’를 차지하고 있고 ‘학습의욕 없고 생각이 딴 데 가 있다’는 담임의 글이 주를 이룬다. 그렇게 학교에서조차 ‘문제아’로 낙인찍힌 그는 ‘꼭 성공하리라’ 수백 번 다짐했다. 그는 2001년에 단국대 연영과에 입학했다. “95년부터 해마다 대입에 실패했죠. 생활기록부가 그 지경인데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떨어지는 게 당연하죠.” 번번이 대학시험에 낙방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를 만날 때마다 고3 담임선생님은 ‘미안하다’며 펑펑 울음을 터트린다. ‘네가 대학가면 우리 학교 전교생이 다 대학 간다’고 말씀하신 분이 그 분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든 한가지 재주는 타고나는 법입니다. 그 재능을 발견해 내는 일이 중요하죠.”||이종수는 이 세상에서 ‘거짓말’과 ‘정의사회구현에 역행하는 자’가 가장 싫다고 말한다. ‘기본적인 도덕의식을 비롯해서 정의사회구현에 거꾸로 역행하는 이는 두고볼 수 없다!’는 게 그의 생활신조다.
지금의 매니저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다. 그 친구가 군대 갔다가 휴가를 나오던 날, 친한 친구들끼리 술을 마시다가 싸움이 벌어진 적이 있다. 포장마차가 난장판이 된 광경을 바라보던 그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참으로 어이없지만 친구들이 보는 ‘이종수’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면허시험장 입구에서 영업(?) 중인 야바위꾼들을 보고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전화한지 30분이 지나도 출동을 안하더군요. 다시 전화했죠. ‘지금 내 아버지 같으신 분들이 지갑을 다 털리고 있는데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이 출동 안하고 뭐하냐’고요.”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충고를 아끼지 않는 그는 보기와는 다르게 지킬 것은 지키는 ‘바른 생활 사나이’다. 꼼꼼하고 디테일한 성격으로 정리정돈에 있어서는 그의 자릴 넘볼 자가 없을 정도다. ||모 방송국 토크쇼에 출연해 그 동안 공공연히 알려진 바 있는 핑클 이효리에 대한 마음을 공개적으로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핑클 데뷔 때부터 이효리를 좋아했고 국민대 입학 면접에서 ‘왜 이 학교를 지원했느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핑클의 이효리 때문이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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