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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ove Korea] 국내 게임업계의 외국인노동자를 만나다 <1>

  • 유양희 기자 y9921@kyunghyang.com
  • 입력 2005.08.0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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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코리아 게임’에 자부심 느끼는 벽안의 사람들
"웰컴 투 코리아!" 순수 국내 개발사 게임의 성공적 해외시장 진출·'메이드 인 코리아' 게임들에 대한 인지도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는 뉴스는 '들을 때마다' 기분 좋아지는 소식이다. 단순히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때도 적잖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한국인이라서 느끼는 긍지나 자부심 이상으로, 이 같은 소식을 즐거워하는 외국인이 있다면? 바로 국내 개발사에 몸담고 있는 외국인 직원들일 것이다. 국내 게임의 해외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해외인력을 고용하는 게임 개발사들이 속속 눈에 띄고 있다. 게임의 현지화를 위한 시장조사는 물론, 현지화를 위한 기획과, 마케팅, 개발의 핵심인력으로까지 외국인 직원들의 활약은 다양하다. 대한민국 게임업계에 몸담고 있는 외국인들, 이들이 말하는 좌충우돌 한국 생활을 들여다 보자.

≫ [그라비티] 해외사업팀 아키코 나카타니 (中谷 亞紀子) : “그라비티 ‘나 대리’, 일본 유저들 보면 ‘뿌듯’”
그라비티의 해외사업팀 아키코 나카타니 대리(30). “일본과 관련된 행사나 일본측과 회사의 입장을 중간에서 전달하는 일이 주된 임무입니다”. 약간 서툴지만 꽤 능숙한 한국말로 ‘또박또박’ 자신의 소개를 하는 나카타니 씨. 그라비티 해외사업의 핵심 국가가 일본인만큼 나카타니씨가 맡고 있는 일은 ‘다채롭다.’ 일본 관련 각종 행사나 미팅, 다양한 마케팅 사업까지 그녀가 일본 유저들과 한국 그라비티의 중간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카타니 씨가 그라비티와 연을 맺은 것은 2002년 말께다.

그라비티 3년 차, 그녀는 일이 익숙해지면서 슬슬 재미에 가속도가 붙는 시점이라고 설명한다. 그간 사내 직원들과 함께 생활하며 정이 많이 든 것도 당연지사다. 그라비티 내에서 그녀는 ‘나 대리’로 불릴 만큼 ‘익숙한’ 존재다.

“처음 한국에 와서, 특히 회사에 입사해서 가장 놀랐던 건 모든 업무 절차가 굉장히 ‘스피디’ 하다는 거였어요.” 그녀가 한국 그리고 그라비티에 갖는 첫 번 째 이미지는 ‘빠른 속도감’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빨리빨리 병’이 나 대리에게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비친 모양이다. 모든 업무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게 본인의 성격과 ‘딱 맞는다’고.

단순히 일 처리에서의 속도감뿐이 아니다. 동그란 눈을 신기하다는 듯이 굴리며 그녀는 설명을 이어갔다. 나 대리는 “게임, 특히 온라인 게임에 있어서 한국만큼 빠르게 발전하고, 유저들의 반응이 즉각적인 곳은 없는 것 같다”며 “잘 나가는 한국 온라인 게임 산업에 몸담고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설명했다. 그녀가 무엇보다 보람을 느끼는 때는 일본 현지에서 ‘라그나로크 페스티벌’을 비롯한 실제 유저들과의 만남을 가질 때다.

“일본 내에서 ‘라그나로크’의 열혈팬들을 만날 때, 그분들을 보면 참 즐겁고 감사하고 내 일에 대해서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설명한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압구정동 그라비티 사옥에 무작정 찾아오는 ‘라그나로크’ 일본팬들이 있다. 그럴 때 그들을 맞이하는 것도 당연히 나 대리의 몫. 그녀는 “외지에서 동포를 만나는 기쁨 이상의 반가움이, ‘라그나로크’를 통해 생겨난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한국과 연을 맺은 것은 지난 98년도다. 일본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던 그녀는 교환학생으로서 대전의 충남대학교에 10개월 간 머물렀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학업을 마쳤지만, 마음 어느 구석에서는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 그때부터 천천히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 학교를 졸업하고 헤드헌터로도 2년여 가량을 일한 나카타니 씨. 한·일 월드컵과 한류열풍이 서서히 불기 시작하면서, 한국행 결심을 하게 됐다.

“월드컵 때 한국에 몇 번 왔다 갔다 하면서, 한국 사람들의 에너지에 대한 매력을 더 강하게 느꼈어요. 한국정서가 끌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외국인인 내가 이 곳에 와서 과연 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들었고. 그래도 지금까지는 모든 게 그저 재미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의 정착이 쉽지는 않았다. 언어도 식생활도, 회사 문화도 모든 게 새로웠다. 새롭게 변하는 생활들이 한편으로는 스트레스가 되는 법 .

하지만 이제는 웬만한 한국 사람들보다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로 한국 생활과 일에 재미를 느끼고있는 나카타니 씨. “짬짬이 시간을 내서 한국 친구들과 지방 맛집 찾아다니는 게 가장 재미있어요. 얼마 전에 안동에 내려가서 찜닭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며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는 ‘나 대리.’

올 해 안으로 그녀에게는 단기적 목표가 한 가지 더 있다. “한국에서만 할 수 있는 뭔가 특별한 취미”를 갖고 싶다는 것이다. 한국 전통음식과 붓글씨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 고민중이다. 향후 계획에 대해 “물론 생각할 게 많은 나이지만, 지금 현재 모든 생활들이나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당분간은 현재에 충실하기로 했다”고 설명하는 그녀.

‘나 대리’는 이어 “한국 사람 대부분 이성친구가 있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웃음(직접 웃는 표정을 지으며)으로 넘기던데요. 많은 계획 중에 남자친구에 대한 계획이 없을 리가 있나요”라며 결혼 계획에 대한 살짝 짓굳은 질문에 너스레를 떤다. ‘한국인 특유의 능청스러운’ 재치가 몸에 뱃을 만큼 나 대리는 이미 한국사람 다 됐다.

≫ [컴투스] 서비스 기획운영팀 본 월리스(Vaughan Wallis) : “아내 사랑으로 머나먼 코리아까지…”
“영국은 영어.” 컴투스 입사 2년차인 본 월리스(29)씨가 어느날 한 중학생을 만나 겪은 한 에피소드다. 벽안의 월리스 씨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그 중학생은 “영국은 어떤 언어를 쓰나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한 자존심’하는 영국 신사 월리스 씨는 잠깐 할 말을 잃었지만, 이내 이성을 찾고 또박또박 대답해줬다고 한다. “‘영’국? ‘영’어.” 이 짤막한 에피소드에 말문이 트였다. 한국과 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7년 째, 한국생활이 익숙해진 만큼 외국인으로서 겪는 ‘에피소드가 생활이 된’지도 오래다.

월리스 씨의 한국 이력은 ‘화려하다.’ 2002년께 국내에서 발행됐던 IT·경제관련 전문잡지 「뉴코리아」에서 1년 반 정도를 기자로 활동했고, 이후 1년 간은 국내 모 온라인 게임 개발사에서 근무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한국 IT산업, 특히 게임분야에 대한 막강한 파워를 새삼 느꼈다”고 설명하는 월리스 씨. 한국 게임업체에 입사한 계기가 됐다. 기자였을 당시 박지영 사장과 서면인터뷰를 통해 기사를 쓴 적도 있다.

“당시 왑게임 ‘러버’에 대한 해외진출계획을 위주로 기본적 질문들을 던졌던 기억이 있다”고 멋쩍은 웃음을 짓는 월리스 씨. 현재 컴투스 게임의 영국과 유럽을 비롯해 영어권 국가에 대한 업무를 총체적으로 맡고 있다. 유럽 이통사에 컴투스의 게임을 공급하는 과정, 해외홍보, 해외 고객지원, 시장조사와 한국 게임의 현지화에 대한 기획까지, 그야말로 ‘바쁜 사람’이 월리스 씨다.

“뚝아일랜드(뚝섬)에 사랑스런 아내 그리고 10개월 된 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의 생에 첫 직장생활은 한국에서 시작됐다. 그만큼 월리스 씨가 느끼는 영국과 한국 생활의 심리적 차이는 더 크다. “영국에서는 여유를 가질 시간이 많았는데, 한국에서 치열한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소중한 첫 아이까지 얻으면서 많은 게 변했다”고 설명하는 월리스 씨. 그는 한국에 지난 98년 전공 논문을 위해 처음 방문했다.

일본과 중국·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3학년이 되면 의무적으로 세 나라 중 자신이 원하는 나라에 논문을 준비해야 했다. 그렇게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지만, 그 이면에는 그의 한국인 아내의 영향이 컸다. 학생 시절 영국 유학 중이던 아내를 만나게 됐고, 이어 연인사이로 발전했다. 아내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시점에, 한국 논문을 준비하기로 한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결정이었다. “전공을 마치고 아내가 있는 한국에 와서 소중한 첫 아들까지 얻었죠. 다이나믹한 한국생활이 이젠 너무 익숙해졌습니다.” 퇴근 후면 한국음식을 요리하고 10개월 된 아들을 돌보는 것이 요즘 그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다. 가족에 대한 그의 생각이 사뭇 한국인들이 말하는 ‘정(情)’과 사뭇 닮아있음은 왜일까.

처음 ‘중학생에 관한 짤막한 에피소드’로 말문을 연 월리스 씨. 그가 ‘오징어’와 ‘미역’에 관한 한 가지 에피소드를 더 꺼냈다. 처음 한국에 온 월리스 씨에게 가장 ‘충격적’ 이었던 건 마른 오징어였다. “서양 사람들 중에 오징어나 문어를 즐기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더더군다나 마른 오징어는 처음 봤어요(웃음).” 어느 호프집에 갔다가 서비스로 나온 새우깡을 보고는, 오징어 소재일지도 모른다고 심각하게 고민하다 나온 적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미역’ 역시 서양인에게 그다지 친근한 음식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생활 7년차인 월리스 씨, 요즘 오징어 튀김을 먹는 수준까지 발전한 데 이어, 아내의 산후조리에는 직접 미역국을 끓여 대령할 정도가 됐다. 그가 이런 에피소드를 꺼낸 데는 단순한 우스개 소리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가 처음 한국에 정착한다고 했을 때, 주변 친지의 반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북인가 남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전쟁발발의 위험이 있는 분단국가라 위험하지 않겠냐’라는 걱정은 차라리 ‘심도 있는’ 걱정이었다. ‘한국이 어디 있는가’라는 질문까지, 그가 한국에 오기까지 많은 지인들이 그를 걱정했던 것. 그만큼 현지의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인식과 인지도가 많이 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확신했던 것은 한국 IT산업, 그 중에서도 게임분야에 대한 발전 속도와 아내에 대한 확고한 사랑 때문이었다. 양쪽의 문화가 ‘서로를 모른다’는 데서부터 차분한 마음으로 시작할 각오를 했던 것.

“한국 게임, 특히 모바일 게임이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지 게이머들을 위한 현지화가 핵심”이라고 월리스 씨는 강조한다. 유저 선호도가 그만큼 다르다는 얘기다. 한국 모바일 게임사업이 놀랄 만큼 앞서가고 있고 그 중에서도 원버튼에 귀여운 그래픽을 가진 게임들이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이를 그대로 해외시장에 적용시켜서는 ‘안 먹혀 들어간다’는 것. “서양 유저들은 좀 거칠고 어두운 분위기나 혹은 액션 장르의 게임들을 선호합니다.

컴투스 뿐 아니라 한국 많은 개발사들의 모바일 게임에 대한 개발력이, 해외 현지화 되고 집중되는 데 많은 노력이 상당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월리스 씨는 힘주어 말했다. 한국인·한국식 생각·한국어·한국음식에 있어 누구보다도 ‘한국인스러워진’ 월리스 씨. 그의 바람은 유럽에 한국의 이미지가 유럽에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것이다. 든든한 민간외교관 월리스 씨의 웃음이 사뭇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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