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 규모가 올해 1조 3천억 원(1조 3,242억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매년 200%에 가까운 성장세를 가져온 셈이다. 이처럼 비약적인 성장 발전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조차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인프라의 확산을 온라인 게임 발전의 초석으로 삼는가하면, 놀이문화의 결핍을, 게임에 대한 인식 전환을 주요 이유로 손꼽는 등 명쾌한 해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처럼 분분한 분석 속에서도 한 가지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바로 유저들의 성향에 맞춘 게임 장르의 다변화가 그것이다. 온라인 게임의 장르 변화를 중심으로 온라인 게임 산업의 역사를 함께 짚어봤다.
≫ [1990] 롤플레잉 천하
지난 1994년 국내 최초의 머드(Multi User Dungeon, Multi-User Dialog) 게임 ‘쥬라기 공원’이 PC통신망을 통해 상용화되며, 온라인 게임의 첫 신호탄을 터트렸다. 당시 영화 ‘쥬라기 공원’을 모티브로 제작됐던 ‘쥬라기 공원’은 비용부담이 높은 전화선을 통해 접속됐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그래픽이 전무한 채팅 위주의 텍스트 중심 게임 진행이 한 장르로 평가 받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또한 유저들의 폭발적인 반응은 중독성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함께 게임이 최초로 사회적 이슈화되는 사례를 남겼다. 이와 더불어 온라인 게임 산업의 상업성에 대한 성공 가능성 또한 예견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픽이 전무한 채 임기응변식 대응이 전부임에도 높은 인기를 얻었던 ‘쥬라기 공원’의 성공 사례는 ‘단군의 땅’과 ‘퇴마요새’ 등의 머드게임들이 탄생하는 배경이 됐다. 이후 4대 PC 통신망이었던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와 유니텔 등 대형 BBS들이 경쟁적으로 머드 게임을 서비스하기 시작했고, 1999년 상반기 기준으로 머그 게임 개발사는 40여개, 서비스된 게임 수는 총 100여종을 넘어섰다. 이후 머그 게임은 95년을 넘어 96년까지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게 된다. 이 당시 등장했던 머그 게임들은 어드벤처를 동반한 롤플레잉 장르 외에는 찾아 볼 수 없었다.
■ 장르 다변화의 가능성 대두
머그게임으로 시작된 온라인 게임은 3년 만에 새로운 형태의 머그(Multi User Graphic) 게임으로 진화하기에 이른다. 포화상태에 빠진 머그 게임 시장을 공략하려했던 게임 개발사 넥슨은 그래픽 버전의 온라인게임 개발, 세계 최초의 그래픽 지원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를 탄생시켰다. ‘바람의 나라’가 그래픽 위주의 머그게임으로 MMORPG(Massively Multi 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의 기원을 연 이후, 머드 게임은 점차 마니아 위주의 게임으로 전락한 반면 머그 게임들은 97년 이후 전성기를 맡게 됐다.
당시 개발됐던 온라인 게임으로는 ‘영웅문’과 ‘스타체이서’, ‘워바이블’과 ‘미르의 전설’, ‘레드문’과 ‘배틀 드래곤’, ‘마제스티’와 ‘리니지’, ‘어둠의 전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게임은 무협과 판타지 등 배경만 달리했을 뿐, 모두 롤플레잉 장르에 국한돼 있었다.
특히 1998년 9월 상용화에 돌입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가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불과 다음 해 12월 동시접속자 1만 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자, ‘온라인 게임=롤플레잉’이라는 공식이 성립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1999년 개발됐던 CCR의 ‘포트리스’가 간단한 조작과 귀여운 캐릭터를 등에 업고 국민 게임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함과 동시에 같은 해 1월 퀴즈게임 열풍을 일으켰던 넥슨의 아바타 육성게임 ‘퀴즈퀴즈’의 성공 사례는 장르 다변화 바람을 예견케 했다. 한편 지난 1999년 개발됐던 온라인 게임 수는 총 12편에 불과했다.
≫ [2000] 독보적인 롤플레잉
■ 3D MMORPG 시대 활짝
2000년대에 들어 한국의 온라인 게임 개발 능력과 서버 기술은 세계 수준에 다다랐다. 이 당시 개발, 서비스됐던 온라인 게임으로는 ‘네오다크세이버’와 ‘천년’, ‘일렌시아’와 ‘라그나로크 온라인’, ‘라그하임’과 ‘뮤 온라인’, ‘천상비’와 ’조선협객전‘, ‘드래곤라자’와 ‘게임 에버랜드’ 등으로 롤플레잉 장르가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이 중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 온라인’은 당시 서비스됐던 무겁고 어두웠던 온라인 롤플레잉 장르와는 달리 밝고 귀여운 분위기를 토대로 한 독창적 게임성을 등에 업고 유저들의 사랑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2D 온라인 게임들 또한 변혁을 맡게 됐다. 온라인 게임의 새로운 역사 창조에 나선 웹젠의 ‘뮤 온라인’이 대표적인 사례. 당시 ‘리니지’ 등 일부 2D기반의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들이 높은 인기를 얻게 되자, 아류작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3D 온라인 게임 시장은 새로운 시장 가능성을 선보이기에 충분했다. ‘뮤 온라인’을 통해 불게 된 3D MMORPG시대는 그래픽을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외산 게임의 그래픽을 능가하기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온라인 게임 강국으로 급부상 되는 순간이었다.
■ 수출입 되는 온라인 롤플레잉
외산 게임들의 움직임도 활발했다. 지난 90년대 후반 ‘울티마 온라인’을 시작으로 불기 시작했던 외산 온라인 게임들의 유입은 이니엄의 ‘스톤에이지’를 필두로 국내 시장을 선점할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이때까지만해도 세계적으로 성공했던 외산 온라인 게임들 중 성공 사례를 이끈 게임은 전무했다. 이와는 반대로 국내 온라인 게임들의 해외시장 개척 역시 박차가 가해졌다.
지난 1998년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로 해외 수출의 물꼬를 튼 이후, 가시화되기 시작한 온라인 게임 수출은 대한민국을 게임 수입국에서 수출국 반열에 올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대다수 게임들은 대만과 일본 등 아시아를 위주로 수출됐으며, 수입된 온라인 게임들 중 대다수가 이들 국가들에 국한돼 있었다. 이중 해외에 수출된 게임 장르들은 모두 롤플레잉 장르였으며, 수입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수출액은 1억 150만 불에 달했다. 한편 이 당시 게임 플랫폼별 비중은 아케이드가 59.3%로 가장 높았으며, 그 뒤를 이어 온라인 게임이 26.7%를 차지, 최초로 PC게임 비중을 초월하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