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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패치 제작과정 총정리] 한글 패치를 말하다 우리 앞에 까막눈 은없다! <1>

  • 윤영진 기자 angpang@kyunghyang.com
  • 입력 2006.04.1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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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들의 힘 앞에 언어의 벽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내용조차 알지 못한 채 진행해왔던 롤플레잉은 감동적인 스토리라는 멋 떨어진 옷으로 갈아입었다.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 진격했던 전략 시뮬레이션은 제대로 된 브리핑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액션은 목적과 당위성을, 스포츠 게임은 보다 쉬운 이해와 몰입도로 무장한 채 우리 앞에 다가왔다. 어디 이뿐이랴. 최근에 등장한 한글화 패치는 단순한 한글화가 아닌 한국화로 불릴 만큼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유저들 앞에 원어는 설 곳을 잃었다.

원 포 올의 기치를 올리다
유통사가 포기한 한글화가 유저들의 손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소설책 수십 권 분량에 달하는 ‘엘더 스크롤3: 모로윈드’의 영문 텍스트조차 100% 한글화가 이뤄졌다. 한글화 패치가 제작됐던 지난 3년간 비공식적인 참여 유저 수만 무려 4천명에 달한다. 대규모 프로젝트가 자율적으로 진행된 셈이다. 유저들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잔인한 게임성 등으로 인해 국내에 발매조차 될 수 없었던 ‘그랜드 쉬프트 오토(이하 GTA)’ 시리즈 ‘바이스 시티’와 ‘산안드레스’ 역시 한글 타이틀로 재탄생되기에 이르렀다. 어디 이뿐이랴. ‘위닝일레븐 9 라이브웨어 에볼루션(이하 위닝9)’ 역시도 완벽한 한글화로 유저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승전보는 우연히 얻어진 결과물이 아니다. 특히나 게임의 소스를 변형하는 까닭에 스스로를 드러낼 수조차 없으며, 이력에 한줄 추가할 수 없음에도 이들은 오늘도 외국어와 씨름을 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유통사들이 손익분기와 발매시기를 들어 한글화에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명작들이 발표되지만, 이 중 한글화 타이틀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자연 제대로 된 게임성을 만끽하기에는 무리수가 따르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유저들 스스로가 한글화 패치를 제작하는 결정적 이유가 있다.

현재 ‘문명4’의 한글화 패치를 제작하고 있는 KP팀의 최호식 팀장은 힘주어 말한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노라고. 언제까지 유통사에 기댈 수만은 없는 일이었노라고. 완성 후 느껴지는 뿌듯함과 성취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노라고. 수많은 유저들이 게임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게임을 즐길 수밖에 없는 현실에 정면으로 칼을 빼어든 유저라는 이름의 한글화 팀들. 그들에게 있어 직접 참여하는 한글화는 더 이상 옵션이 아닌 필수였다.

꺼지지 않는 한글화 열정
한글화 패치의 기원은 지난 1992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코에이사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3’가 발매됐을 당시, 국내에서의 인기는 가히 열병에 가까웠다. 당시 4대 통신망뿐만 아니라 014XY망을 통한 BBS들을 통틀어 DOS_V(일본어 지원 운영체제)가 인기 유틸리티 1위를 장기간 석권했으며, 게시판은 온통 ‘삼국지3’ 이야기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이 같은 놀라운 인기는 한글화 팀 창설의 밑거름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때 처음으로 등장한 한글화 패치는 일본어를 제외한 한문만을 한국어로 바꿔주는 형태였으나, 곧이어 100% 한글화 패치가 등장했다. 1997년 발매된 미소녀연애시뮬레이션 ‘동급생2’의 한글화 패치로 인해 유저들의 관심은 최고조에 이른다.

그로부터 수년 뒤. 에뮬레이터가 등장하며 에뮬레이터 롬에 대한 한글화가 진행됐다. 대표적인 게임 타이틀로는 판매로까지 이어졌던 ‘파이날판타지5’와 무료 배포된 ‘파이날판타지6’, ‘4차 슈퍼로봇대전’ 및 ‘로맨싱사가3’ 등 주로 슈퍼패미컴의 명작게임들이 초창기 주류를 이뤘다. 이때를 기해 한글화 패치는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게 된다. 크게 일반 게임과 미소녀 연애시뮬레이션 게임, 에뮬레이터 게임으로 삼두마차 형태의 기틀이 완성됐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무려 1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저들의 축적된 한글화는 노하우를 밑거름으로 진일보 하고 있다.

인기 회귀의 원동력
발매 된지 수년이나 지난 게임들이 한글화 패치를 통해 다시금 높은 인기를 얻게 됐다. 추억의 명작들과 관련된 커뮤니티가 줄을 잇듯 재탄생하고, 관련 팬 사이트는 활력을 얻기 시작했다. 또한 수많은 명작들에 대한 한글화 패치 요구가 관련 홈페이지를 수놓으며, 새로운 한글화 팀들을 창설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유저들의 절대적인 성원 앞에 유통사들로서도 제재를 가할 필요성이 전무했다. 이미 후속작에 후속작까지 발매된 상황에서 수익성을 잃은 게임에 대한 한글화 패치는 유저들로 하여금 차기작에 대한 기대치를 높일 수 있었던 까닭이다.

유저들에게도, 유통사들에게도 결코 실보다 득이 많았던 한글화 패치는 게임 산업의 또 다른 순기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특히 국내에 정식으로 발매될 수 없었던 게임들까지도 한글화가 이뤄져 게임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보다 풍성함을 가져왔다.

점차 빠른 속도로 완성된 한글화 패치는 정식 발매 후 곧 한글화 패치가 등장할 만큼 속도적인 측면에서도 메리트를 가져왔다. 이는 유통사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동시에 실제 판매량에도 상당 부분 기여했다는 사실은 한글화 패치가 가진 또 다른 힘이 아닐 수 없다.

국내에서 PC패키지 게임 유통을 담당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한글화로 인한 판매량의 증가는 확인키 어려우나 상당 부분 일조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한글화 패치는 정식 발매되지 않은 게임들의 불법 다운로드를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눈물과도 같은 노력의 산물
‘폴아웃’ 한글화팀 사이트의 운영자 백인덕씨는 한글화 패치와 관련해 장인 정신의 산물이라고 정의 내렸다. ‘엘더스크롤3: 모로윈드’의 한글화에 참여했던 김명식씨 또한 비슷한 의견을 게재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온 느낌이었노라고.

이처럼 오랜 시간 공을 들이는 한글화 기간은 게임 장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 롤플레잉 게임의 경우, 약 6개월에서 2년 정도의 시간이 할애되며, 전략 시뮬레이션이나 액션 RPG는 6개월 전후가 소요된다. 액션 게임은 대부분 이미지 폰트(편지지나 배경에 등장하는 간판 등)를 사용하는 까닭에 텍스트 내용이 적더라도 6개월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

어려움은 이 외에도 산재해 있다. 우선 번역이나 프로그램 파트를 담당하던 유저들의 급작스러운 활동 중단이 적지 않으며, 이로 인한 차질은 불가피하다. 이 경우, 새로운 팀원을 선발하고 중단된 부분에서부터 재개발이 이뤄진다. 한글화 패치 작업시에도 게임이 2바이트를 지원하지 않거나, 자체 폰트를 사용할 경우에는 한글화에 상당 부분 애를 먹기 마련이다.

현재 ‘폴아웃2’ 한글화 팀의 총감독 박혜석씨는 “번역의 양이 많을뿐더러, 게임 자체가 흔히 사용치 않는 영어 단어들로 구성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을 통해 유저들이 보다 풍성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한글화 팀들은 한글화 패치가 새로이 시작될시 대다수 팀원들이 팀을 이탈하는 경우가 잦아 노하우 축적이나 팀워크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성토했다.

전문가 수준에 맞먹는 고퀄리티
한글화 패치의 발전은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초창기 등장한 한글화 패치는 텍스트를 한글화 시키는 수준에 불과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게임을 진행하는 데 별다른 무리는 없었으나, 몇몇 게임의 경우, ‘아ㄴ녀ㅇ하세요(안녕하세요)’ 형태로 한글화가 제작되는 등 완성도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후 등장한 한글화 패치는 보다 알아보기 쉬운 편안한 폰트와 제대로 된 한글 표기 등 진일보된 형태를 드러낸다. 비속어 등에 대한 번역도 의역 수준을 넘어 게임의 분위기를 드높임과 동시에 국내 실정에 적합한 단어들로 채워졌다. 초창기만 해도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이미지 폰트 역시 거의 완벽한 형태로 한글화됐으며, 최근 등장한 ‘위닝9’의 한글화 패치의 경우, 붉은 악마의 응원가 등 사운드 부문까지도 게임에 녹여내는 쾌거를 일궈냈다.

유저들의 한글화 패치는 점차 ‘이해하고 알아보는 수준’에서 ‘완벽함’이라는 새로운 코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발전은 지금 이 시각에도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어, 국내 한글화 패치의 완성도는 점차 높아질 전망이다. 이에 대해 관련 전문가들은 대부분 독자적으로 진행됐던 한글화 패치팀들이 협력 및 통합을 통해 보다 높은 전문성을 띨 수 있었던 까닭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표적인 한글 패치 게임들
‘미행3’, ‘둥지 짓는 드래곤’, ‘카논’, ‘은색’ 등 미소녀 연애시뮬레이션들의 완벽한 한글화가 발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PC패키지 역시 ‘영웅전설6’, ‘매니악맨션’, ‘신장의 야망: 창천록’과 ‘무림군협전’ 등 명작 게임들의 한글화 작업이 완료 혹은 진행 중에 있다. 에뮬레이터 롬 파일 역시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와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성검전설’ 등 한글화 작업이 이뤄진 게임들만 해도 100여 작품에 다다른다.

■ 한글 패치 제작 과정
1. 게임 선정 : 유저들의 요청이 많으며, 커뮤니티가 형성된 명작 게임들이 주요 대상이 된다.
2. 확인 작업 : 이미 다른 킴에서 한글화를 진행하고 있는가 여부를 진단한다.
3. 1차테스트 : 한글화가 가능한지를 검토한다.
4. 2차테스트 : 팀의 한글화 실력 및 기간 등, 기술적 부분 및 기타 요소들을 살펴본다.
5. 사이트개설 : 커뮤니티 운영자 혹은 직접 관련 홈페이지를 개설해 다른 팀의 중복 참여들 막는다.
6. 기획 작업 : 개발 기간 등 개발 기획을 수립한다.
7. 팀원 모집 : 커뮤니티 혹은 홈페이지를 통해 모집된다. 일반적으로 번역 파트에 20여명 내외가, 프로그램 파트에 3~5명 정도의 인원이, 이미지 폰트 작업을 위한 그래픽 파트에 1~2명과 홍보 및 전체를 총괄하는 팀장을 마지막으로 팀이 구성된다. 이후 메신저나 연락처 교환등을 통해 원활한 커뮤니티의 근간으로 삼는다.
8. 분담작업 : 번역물에 대한 번역 파트의 분담 과정이 이어진다.
9. 번역 : 번역 파트 팀원들의 번역이 진행된다.
10. 프로그래밍 : 번역된 내용들을 실제 한글화 시킨다. 주로 Multilizer와 eXeScope 등 리소스 핵 관련 프로그램들이 사용된다.
11. 게임 실행 여부 테스트 : 게임 실행에 무리가 없는지 살펴본다.
12. 교정 및 교열 : 잘못된 표기나 맞춤법을 교정한다. 또한 지명이나 유닛 명을 통일하는 작업도 병행된다.
13. 단계별 배포 : 보통 100% 한글 패치에 앞서 20~30% 단위로 끊어 배포한다.
14. 의견 수렴 : 유저들의 의견을 수렴해 패치에 적용 시킨다.
15. 완성 단계 : 100% 완료된 버전을 발표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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