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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서 라면 먹던 그들이 온라인 코리아 주역으로

  • 박병록 기자 abyss@khan.kr
  • 입력 2009.11.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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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인 소수개발에서 100명 이상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로 성장 … 유력 게임사별 색깔 있는 개발조직으로 지구촌 게임시장 선도


최근 영화계는 2006년 ‘괴물’ 이후 3년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해운대’의 등장으로 떠들썩하다. 제작비 130억 원을 자랑하는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 ‘해운대’는 질 높은 컴퓨터 그래픽과 감동적인 에피소드로 흥행에 성공, 개봉 33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130억 대작 영화 ‘해운대’, 이처럼 제작비는 대작의 범주를 나누는 가장 기본적인 수치로 활용된다.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블루홀이 개발하고 NHN이 퍼블리싱하는 차세대 플래그쉽 MMORPG ‘테라’의 공식적인 개발비는 320억으로 ‘해운대’ 제작비에 2.5배에 달한다. ‘아크로드’, ‘SUN’, ‘제라’ 등으로 개발비 100억 시대를 개척한지 3년, 온라인게임 개발이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에 버금가는 규모로 성장한 것이다.


1990년대 지하 단칸방에서 3~4명의 소수 인력으로 게임을 개발하던 태동기를 넘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한 개발자들의 열정, 그 격동의 역사를 돌아본다.



온라인게임의 역사는 1980년 중·후반에 개발되기 시작한 머드게임(Multi User Dungeon : 다중 접속자 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텍스트를 기반으로 개발된 머드게임은 미국 주요 공과대학 소속의 1인 혹은 2인에 의해서 개발됐으며, 무료로 서비스됐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초에 해외 유명 머드게임을 번역하는 형태로 소개돼, 1990년 중반 ‘단군의 땅’, ‘쥬라기공원’ 등의 상용 머드게임들이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을 통해서 서비스됐다. 이때의 상용 게임들은 기획자와 프로그래머로 구성된 5인 가량의 극소수에 의해서 개발 및 서비스됐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머그(MUG : Multi User Graphic) 게임이 등장하면서, 2D 도트 그래픽 전문가가 개발팀에 합류하게 됐다. 머그게임의 대표주자는 ‘네버윈터 나이츠’로 온라인게임에 대한 인식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1990년대 열정이 가장 큰 무기]
세계 최초의 그래픽 기반 온라인게임은 ‘바람의 나라’로 넥슨을 설립한 김정주(현 넥슨홀딩스 대표)와 송재경(현 XL게임즈 대표) 두 사람에 의해서 개발됐다.  넥슨(1994년 12월 설립)에서 1995년 12월 공식 발표된 ‘바람의 나라’는 허름한 개발실에서 극소수의 개발진에 의해서 개발됐다. 이후, 송재경은 1996년 아이네트의 인터넷 게임 개발팀에서 ‘리니지’ 개발을 시작, 소수의 개발팀을 이끌고 1997년 엔씨소프트에 입사해 ‘리니지’를 세상에 내놓았다. ‘바람의 나라’, ‘리니지’ 이후 다수의 개발사들이 온라인게임 사업에 뛰어들었고 당시 벤처 열풍에 동승하면서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 온라인게임 업계를 지배했던 키워드는 ‘벤처’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개발자들은 게임을 통해 현실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자부심과 더불어, 개발에 성공하면 대박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으로 열악한 개발 환경을 극복했다. 온라인게임이라는 단어가 생소했던 그 시절 10명 이상으로 구성된 개발팀은 호사였고, 1명이 기획, 시나리오, 프로그래밍, 그래픽 디자인 등의 1인 다역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때문에 송재경, 이원술, 김학규, 남인환, 최연규, 김태곤 등의 1세대 개발자들이 높게 평가받고 있다.


당시, 온라인게임 개발은 PC 패키지 시장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때문에, 온라인 게임 개발 완료 후 초기 개발자가 라이브 게임에 계속해서 참여하는 경우가 적었고, 다른 프로젝트를 위해서 퇴사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개발사로 이직이 많았다.


게임업계 전문가들은 “당시 라이브 시점에 개발자가 대거 이탈해 원활한 서비스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며, “온라인게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서비스 영속성이라는 사실이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던 시절이기 때문이다”라고 당시 개발자들의 가치관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음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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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초·중반 개발 프로세스 확립]
2000년 초·중반은 개발 환경이 좋아지고, 게임 개발 프로세스가 정립된 시기이다.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은 엔씨소프트로 2003년 공개된 ‘리니지2’를 통해서 기본적인 개발 프로세스를 정립했다. 기획, 프로그램, 그래픽, 사업, QA, 운영 등의 개발 파트가 조직화됐으며, 최초 기획단계에서 라이브 단계까지의 개발 프로세스가 확립됐다. 특히, 엔씨소프트는 당시 외주 인력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운영파트를 인정, 공식적인 개발 및 서비스 파트 조직에 포함시켰다.


넥슨도 비슷한 시기에 내부 개발 스튜디오 데브캣을 구성했다. 데브캣은 새로운 콘텐츠를 구상하고 기획하는데 중점을 두는 개발 초기 단계와 이후 안정적인 라이브(서비스) 체제로 전환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독창성을 중시하는 콘텐츠로 국내 개발 스튜디오 중 가장 충성도 높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2000년도 초반에는 온라인게임을 개발하는데 기술적인 장벽이 존재했지만, 2005년이 넘어가면서 기술적 장벽이 해체되고 신생 개발사도 일정 수준의 MMORPG를 개발할 수 있는 시기에 접어든다. 이런 움직임은 엔씨소프트와 넥슨, 그라비티, 웹젠 등의 주요 게임개발자들이 이동하면서 가속화됐다. 이때, NHN의 ‘아크로드’, IMC의 ‘그라나도 에스파다’, 웹젠의 ‘SUN’, 넥슨의 ‘제라’, 조이맥스의 ‘실크로드’, CCR의 ‘RF온라인’ 등이 개발, MMORPG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더불어, 대작 프로젝트들이 주목받으며, 개발비 100억 시대를 열었다.


MMORPG의 황금시대는 소위 빅3의 참패로 침체기를 겪었고 FPS 명가 ‘드래곤플라이’의 등장으로 FPS 장르를 비롯한 캐주얼 게임 시대를 맞이했다. ‘드래곤플라이’는 당시 국내 시장에서 성공이 불투명했던 FPS 장르의 ‘카르마’, ‘스페셜포스’를 개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드래곤플라이’는 이후 개발스튜디오를 내부로 흡수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결정하고 외부 개발 스튜디오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효율적인 개발 프로세스를 확립했다.



[2000년 말 효율성과 개발사 특징 발생]
2000년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개발자들의 이직률이 상승하고, 다수의 신생 게임 개발사들과 중견 기업들의 게임산업 진출로 인력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이에 주요 게임사를 중심으로 개발자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고 게임인재 양성을 위한 전문 교육기관이 속속 생겨났다. 더불어, 게임사들의 게임 콘텐츠의 퀄리티를 높이고 개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이 연구되기 시작했다.


엔씨소프트는 신규 프로젝트 경쟁 체제를 도입해 초기 핵심 인력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들이 게임을 기획, 내부 경쟁을 통해 동료 개발자와 경영진의 지지를 얻어 생존한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프로세스를 갖췄다. 엔씨소프트 관계자에 따르면, 엔씨소프트 핵심 임원들만이 내부 개발 프로젝트를 모두 알고 있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다. 현재 엔씨소프트는 1,600여명의 직원들이 있으며, 이 중 개발자는 60% 수준인 1,000명 내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1,000명의 개발 인력 중 라이브게임에 650여명이, 신규 프로젝트에 350여명이 분포되어 있다.



넥슨은 개발팀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처우를 향상시키고, 관리 효율을 극대화 하고 있다. 넥슨의 독립 개발 스튜디오는 본사와는 구분되는 별도의 보상, 복지 체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넥슨토릭을 설립해 클래식RPG로 대표되는 ‘바람의 나라’, ‘테일즈위버’, ‘아스가르드’, ‘어둠의 전설’, ‘일랜시아’ 등의 올드 게임들의 서비스 영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개발에서 라이브 서비스로 이어지는 효율적인 관리 프로세스를 보다 강화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엠게임은 자사 기술력을 집중해 개발력을 높이고, 개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2000년대 말부터 ‘개발혁신프로세스’를 손승철 회장 주도하에 구축했다. 이를 통해서 개발기간이 단축되고 기획력이 향상되는 등 개발 리스크를 감소시키는 한편, 게임의 흥행성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 시스템을 기반으로 제작된 1기 게임인 ‘아르고’, ‘발리언트’ 등의 시장 공개를 앞두고 있다.


개발팀이라는 조직이 부담스러웠던 1990년대 머드게임부터 효율성과 경제성이 주요한 개발 가치로 떠오른 2009년 ‘테라’까지 대한민국의 온라인게임 개발은 성장해왔다. 온라인게임의 태동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변치 않은 것이 있다면,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자들의 게임에 대한 ‘애착’과 ‘열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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