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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세 게임 매니아 김길수 할아버지] “내가 이것저것 해봤지만 거상만한 게 없더만”

  • 윤영진 기자 angpang@kyunghyang.com
  • 입력 2005.04.1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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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즐기는 유저층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10~30대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자연 이들의 취향에 맞춘 게임들이 개발, 뫼비우스의 띠처럼 비주류 연령대 유저들은 더욱 게임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고정관념에 불과했던 것일까. ‘게임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71세의 초고수 유저 김길수 할아버지를 만나봤다.

프롤로그
지금껏 필자가 만나본 최고령 유저는 60 초반의 노인이었다. 이 역시 기획기사를 위해 수 주간 물색한 끝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71세의 노인이라니.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게임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또한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기차에 몸을 싣고 김길수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시흥으로 향했다.

내게 있어 게임은 취미 이상의 의미
약속한 장소. 손을 흔들며 밝은 미소로 맞은 김길수 할아버지는 결코 노인이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정정했다. 그의 손에 이끌려 집 안에 들어서자 아들 내외와 할머니, 손자 2명이 있었다. 인사를 나누는 사이를 못참고 할아버지는 이미 컴퓨터에 앞에 앉아버렸다. 익숙한 모습. 집 앞 약국 앞에 오는 그 사이에도 게임을 즐겨왔음이 분명했으랴. 게임이 그리 좋냐는 물음에 웃음으로 화답한 김길수 할아버지의 눈엔 활기가 돌았고 마우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을 만큼 점차 빨라졌다.

사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름 모를 슈팅 게임을 즐겨왔고, ‘디아블로2’에서는 최종 목적지인 99레벨을 돌파할 만큼 매니아틱한 기질이 다분했다. 물론 할머니와 함께 즐기기 위해 ‘한게임 고스톱’도 오래도록 즐겨왔다. 다양한 게임 경력이 있음에도 ‘거상’만을 즐기는 이유가 궁금했다.

“아들 따라 강남 온 게지”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큰아들(43)이 ‘디아블로2’를 즐기는 것을 보며 재미있겠다 싶었다는 김길수 할아버지.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접하기 수개월. 아들의 레벨을 넘어버렸다.

그러나 PK와 욕설은 더 이상 게임에 흥미를 잃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118억 원이 넘는 사이버머니를 소유한 ‘한게임 고스톱’ 역시 사이버머니 매매 등 현거래를 보며 게임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 그러던 중 첫째 아들이 새롭게 게임을 시작했다. ‘거상’. 또다시 김길수 할아버지의 모험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다시한번 가족들의 간곡한 만류가 이어졌다. 한번 게임을 잡으면 최하 5~6시간은 즐겨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내 고집은 아무도 못 꺾지. 나라님도 못 꺾어(웃음)”. 게임도 만족스러웠다. PK도 존재하지 않았고 욕 역시 필터링을 통해 대다수가 전해지지 않았다. 지난 2003년 말부터 그렇게 시작된 거상과의 인연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하루 평균 10시간씩 게임을 즐겨왔지만 최근 건강상의 이유로 하루 3~4시간 정도만 게임을 즐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그의 레벨은 만렙에 가까운 138. 아들을 또다시 역전했다. 큰 아들 왈 “저렇게 열심히 하시니 따라갈 수가 없죠(웃음).” 처음에는 단 한 대뿐인 컴퓨터로 인해 함께 PC방을 찾는 일이 많았다. 비용도 아까웠고 담배 연기도 썩 유쾌하지 않았다. 결국 할아버지의 요구에 의해 컴퓨터를 새로이 구입했지만 여느 가정과 달리 손자들 대신 할아버지 차지가 돼 버렸다.
그의 ‘거상’ 내 아이디인 ‘아리원’은 비호 서버의 명물이 아닐 수 없다.

고구려 상단의 행동대장 답게 무력 수치가 최고수에 달함을 필두로, 상단 자체의 독특함에도 있다. 최소 30세 이상만 가입될 수 있는 가입 조건 때문이다. 물론 이 안에서도 ‘어르신’으로 불린다. 아들과 함께 가입한 상단이지만 언제나 현모는 아들만이 나간다. 혹 부담을 주지 않을까 싶어서다. “내가 나가면 제대로나 놀 수 있겠어(웃음)”.

만렙을 찍은 후엔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엔 눈을 흘긴다. “이보게 젊은이 만렙을 찍으려면 지금까지 내가 한 만큼 해야 하네. 나한테 좀 배워야겠어”.이젠 웬만큼 키보드에 익숙한 김길수 할어버지. 그는 게임을 즐김에 있어 단 하나만 인지하고 있으면 즐거울 수밖에 없다며 매니아로의 지름길을 귀띔한다. “내 주변에도 500만원 이상 부분유료화를 결제하는 사람들이 있어. 다 부질없는 짓이야. 뭐 개인적으로 만족한다면야 나도 할 말 없지”.

할아버지의 말이 이어진다. “욕심을 버려. 끝이 없거든. 그 자리. 그 위치에서 적당히 즐기라고. 그게 게임을 사랑할 수 있는 비결이지. 암 그렇고 말고”. 밤늦은 시각. 할아버지는 또다시 모니터를 힐끔 쳐다본다. 그 사이에 게임을 즐기고 싶은 게다. 천상 매니아라는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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