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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모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다

  • 윤영진 기자 angpang@kyunghyang.com
  • 입력 2006.05.0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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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모임(이하 현모)은 그 뿌리를 찾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자생적으로 발생한 우리네 사회의 단면이며, 지금 이 순간 끊임없이 발전, 변화하는 문화의 일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발전 속도는 더디기 짝이 없다. 누가 술을 더 잘 먹는가 내기를 하듯, 밤을 새며 술을 마시고 아침에 해장술을 하는 것으로 대다수의 성인 현모들은 막을 내린다. 필자 역시 이렇게 생각했다. 최소한 세비지3 클랜과 에이크랙 클랜의 연합 현모에 참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난 4월 13일. ‘워록’을 즐기는 30대 유저 클랜 두 곳이 4월 15일 연합 현모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소식을 접한 직후, 30대라는 사실보다는 장소에 보다 큰 관심이 쏠렸다. 이들의 모임 장소가 다름 아닌 무주 종합수련원이었던 까닭이다. 당일 부랴부랴 짐을 챙겨 무주로 향한 덕분에 생각보다 이른 오후 5시경 약속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순간, 각 클랜 마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자신의 아이디가 적힌 명찰을 찬 클랜원들 사이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연출됐다. 무려 17명에 달하는 아이들과 20여명에 달하는 이들의 부모가 바로 클랜원들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들은 이번 현모를 가족모임으로 승화시킨 것이었다. 자연 분위기는 유할 수밖에 없었고, 꽤나 가족 같은 느낌이 잔뜩 서리어 있었다. 7시경 저녁식사를 시작으로 현모의 첫 번째 행사가 치러졌다.

전문 레크레이션 강사를 초빙해 클랜원들과 이들의 가족이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었던 ‘열림의 장’은 잠시도 웃음이 떠나가지 않았다. 각기 다른 클랜이었음에도 하나로 어우러진 이들의 훈훈한 모습은 참으로 인상 깊었다. 더불어 클랜원들 스스로가 이번 현모를 빛내기 위해 제각기 선물들을 준비해왔기에 레크레이션 시간동안 선물 수여에만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됐다. 현모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판단한 찰나. 급작스레 5~6명의 남자들이 조용히 자리를 이탈했다. 이미 숱하게 봐온 현모의 참여 경험상 술 생각이 그리워 먼저 일어선 것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는 크나 큰 오판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들은 잠시 뒤 진행될 바비큐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미리 출발한 선발대였던 것이다. 물론 이들 역시 다른 클랜원들과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고 함께 웃고 싶었을 것은 당연지사. 그럼에도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한 채 모든 이들을 위해 일어선 아름다운 청년(아저씨)들임에 분명했다. 오후 9시경. 정해진 순서대로 캠프파이어가 이어졌고, 곧이어 어느 클랜원이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직접 담아왔다는 구수한 막걸리가 클랜원들의 갈증을 달래고 화합을 도왔다. 이후 서로 간의 그리움을 달래기 위한 짧디 짧은 술자리를 마지막으로 당일날의 일정은 모두 마무리됐다. 가족들이, 아이들이 함께 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3개월 전부터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진행해온 수뇌부의 노력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다음날인 4월 16일. 아침식사를 마치기 무섭게 모두들 어디론가 급하게 향하고 있었다. 약 10여분 정도 걸었을까. 눈앞에 페인트 볼 서바이벌 게임장이 들어왔다. ‘워록’으로 하나 된 두 클랜답게 서바이벌 게임을 하이라이트로 준비해둔 것이었다. 군복 등의 장비를 차려입고, 두 팀으로 나뉘어 총 3번의 결전을 펼치기까지. 약 2시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오후 4시반. 벌써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실상 아래로는 해남에서부터 위로는 충청도와 강원도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인 이들이었기에 이별 또한 여느 현모와는 달리 초저녁 이른 시간일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몇몇 클랜원들이 보따리를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동대문에서 옷장사를 한다는 클랜원은 백여벌에 달하는 청바지와 티셔츠를 선물로 증정했으며, 볼펜회사를 경영한다는 어느 클랜원은 건강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고가의 시제품을 선물 보따리로 내놓았다. 대다수 처음 만남이었음에도, 결코 이들 속에 남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게임은 나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게임은 위험한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게임은 저급문화라고. 하지만 이들은 다르게 말한다. 게임은 정녕 좋은 것이라고. 어떻게 즐기는가에 따라 달리할 뿐이라고. 게임에 대한 학문적 연구나 분석에 몰두하는 학자들도, 부처간 밥그릇 싸움에만 몰두하는 정부 관련부처까지도,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해하는 게임사들마저도 해내지 못한 일. 아니 해낼 수 없었던 일. 이를 그들은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게임을 가족애를 살리는 촉매제로 삼고, 함께 즐기는 이들과의 교두보로 활용하며, 끈끈한 우정을 확인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들로 인해 게임산업은 또 하나의 순기능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지독한 편견일까. 게임 산업이 아무리 어두운 곳으로 흘러들어갈지라도 독야청청할 것임을 다짐하는 두 클랜원들. 이들과 같은 이들이 있기에 게임계는 이만큼 발전해왔고, 또한 저만치 발전할 것임에 분명하리라. 더불어 우리가 이들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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